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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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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9-10-07 14:40 조회3,8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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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여행

 지난 추석날 새벽 고향 가는 KTX 열차를 타러 서울역에 나갔더니 3층 KTX 전용 입구에 개찰구가 사라지고 없었다. 약 7개월 전 1월 26일 구정에도 아무 통제가 없었지만 개찰구는 남아 있었는데 그마저도 철거한 거였다. 세상은 빨리 변하고 있었다. 같이 모시고 간 삼촌은 “10년 전 일본에 가보니 개찰구가 없었는데 우리나라도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하셨다.

기차 안에서 왔다갔다하는 여승무원도 차표 보자는 소리를 일절 하지 않았다. 휴대 전화에 찍힌SMS 메시지도 보자는 사람이 없었다. 고향 역 출구에도 개찰구는 없었다. 검표를 예상하며 차표를 꺼내 들고 만지작거리던 나이든 승객들은 아직까지도 약간은 어리둥절하고 약간은 서운한 듯 했다. 

변한 것은 개찰구뿐만이 아니다. 명절 전후의 인터넷 기차표 예매가 그것이다. 표를 구하지 못해 역으로 달려가고, 사방으로 수소문하며 눈치를 보던 우리가 방안에 앉아 인터넷으로 표 사냥을 할 수 있고, 운만 좋으면 명절 당일에도 차표를 예매할 수 있다. 이런 변화가 바로 민주화다.

필자가 초등학생 시절에는 기차표 확보하기가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여서 겨우 입석 차표를 구해 기차를 타보면 열차 복도에 서서 몇 시간이나 버티며 가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서있는 사람도 불편하고, 눈높이에 입석 승객의 엉덩이를 보아야 하는 앉아가는 승객도 거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바로 옆에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서 계시면 젊은 놈이 자리를 양보해야 하나? 노인 공경도 좋지만 5시간 이상을 서서 가? 끝없는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고속도로가 생기자 추풍령에서 한 번 쉬어가는 재미에 귀성이나 귀향 길이 좀 쉬워지기는 했지만 차표를 구하는 일은 여전히 그리 유쾌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70년대 중반 대학 졸업 후 필자는 군 생활을 청와대 경호실에서 하게 되었고, 거기서 대통령 경호관들이 쓰는 파란 패스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패스는 원래 취지가 대통령 경호 업무를 위해 급한 이동이 필요할 때 경호관들이 차표 예매 없이 임의로 모든 기차를 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으나 가끔씩 사적인 용도로도 쓰이고 있었다. 필자도 경호실 행정처에서 한두 번 패스를 얻어 검표원이 있는 개찰구를 통과해 새마을 호를 탄 후 식당 칸에서 병 맥주를 마시며 고향으로 내려가는 특권을 누렸던 기억이 난다.
검표원이 차표를 보자고 할 때 거들먹거리며 그 패스를 내보이면 그들은 빈자리로 안내해 주기도 했다. 그 패스는 바로 특권과 권위주의의 상징이었다. 약 10년 후 경호실에 남아있던 친구로부터 그 패스 제도가 진작 없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기차표의 인터넷 구매도 전자정부(e-government)의 일부라고 한다면 이는 곧 민주화를 의미한다. 돈이 있어도 차표를 사지 못해, 정당한 절차를 밟지 못하고 철도청의 눈치를 보던 시절을 지나 인터넷 화면으로 차표의 향방을 빤히 볼 수 있는 투명한 시대가 온 것이다. 최근 철도청 직원들이 직원 신분을 이용해 차표 몇 백장을 빼돌렸다가 적발되는 사건도 있었지만 세상은 이미 크게 민주화되었다. 우리나라 만세!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인터넷 만세! 민주주의 만세!!             
 



 

 
 
 

곽중철 (2009-10-14 12:12:49) 
 
지하철도 변해있었다. 며칠 전 교통카드 겸용 신용카드를 두고 와 차표를 사려했더니 500원 보증금을 받고 근사한 1회용 플라스틱 카드가 자판기로 부터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단추를 잘못 눌러 100원이 모자라는 금액으로 카드를 받고 내리는 역에서 나오지 못해 근무자를 불렀더니 100원을 받으며 500원은 되돌려준다. 아, 이렇게 차표가 바뀌었구나... 아날로그 세대에게는 약간 복잡해졌지만 그렇게헤서 그 수많은 종이 차표의 낭비를 없애며 반 영구적인 플라스틱 카드를 공동으로 사용하는구나... 세상은 참 빠르고도 합리적으로 변하고 있다. 어지럽다. 지구여 멈춰라, 내리고 싶다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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