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민 문화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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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7-04-23 17:43 조회4,19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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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김범일 대구시장과의 인연을 소개한 며칠 전 이 게시판 글에 등장했던 김종민 전 관광공사 사장이 문화관광부 장관이 되었습니다. 김 장관은 저를 만나면 <곽 교수는 내 룸메이트>라고 주위에 소개합니다. 서울 올림픽 시절 김종민 장관은 위원장 비서실장으로, 저는 통역관으로서 같이 일했기 때문에 해외 출장을 가면 상관의 호텔 옆방을 함께 썼거든요.
그런 출장을 2-3번 같이 갔는데 조직위 다른 고위 간부가 해외 출장을 나가며 유능한 수행원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하면 당시 김종민 비서실장이 <곽 과장을 데려가라. 그는 당백(當百)이다>라며 강추해 저는 타기 싫은 비행기를 몇 번 더 타기도 했습니다.
한일월드컵 조직위 사무총장을 지낸 문동후 씨와 김 장관은 고시 및 총무처 (현 행자부) 동기이고, 그 두 분의 2년 후배가 김범일 시장으로 그 세 사람은 <총무처의 3인방>으로 불렸습니다. 세 분 다 영어 실력이 뛰어나 특히 국제업무에 능했습니다. 세 분은 다 서울대를 나왔지만 김 사장은 경기고를, 나머지 두 사람은 경북고 출신입니다.
김 사장은 올림픽 후 총무처로 복귀해 요직을 거치다가 YS 청와대의 비서관으로 근무한 후 96년에 문화부 차관이 되었습니다. DJ로 정권이 바뀌고 한림대 초빙교수가 된 것은 아마 그의 공직생활에서 가장 한직이었을 겁니다. 그 때 늦게 외대 교수가 된 제가 논현동의 한림대 부속 건물에서 그와 재회했습니다. 그는 갑작스런 한직을 즐기는 듯 했지만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곧 2001년 도자기엑스포 조직위원장이 되어 제게 통역사 추천을 부탁해 우리 외대 통대 졸업생들이 덕분에 많이 활동할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당시 손학규 씨가 경기도 지사였지요. 김 장관은 2001년에 경기 관광공사를 창립해 2004년까지 초대 사장을 지낸 후 여세를 몰아 한국 관광 공사 사장이 되었을 때 저는 내 일처럼 기뻤습니다. 2005년 외대 통대가 CIUTI 서울 총회를 주최했을 때 총회 외국인 포함 참석자 50명에게 플라자 호텔에서 오찬을 베풀어주어 그들을 모두 한국 팬으로 만들면서 원장인 제 체면도 세워주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한국의 새 관광 브랜드를 <Korea, Sparkling>으로 바꾸는 창의성과 저력을 보였습니다. 실력 있는 분이 역시 제 자리로 간 것이요, 그의 실력을 세상이 알아 준 것이요, 민심이 천심인 겁니다. 공사사장 2년만에 대망의 문화부 장관이 되신 거지요. 1998년 문화부 차관직을 떠났으니 꼭 9년 만에 금의환향했습니다.
저는 이렇듯 훌륭한 공무원 선배들과 잠시나마 함께 일하는 행운을 누렸는데 김 장관의 행로를 지켜보면서 그에게는 공무원에 꼭 필요한 <관운>도 좋다고 느낍니다. 관운이 있는 사람은 앞 이마가 빛이 난다는 말도 있고…
공교롭게도 제 홈피 게시판에 최근 각광을 받는 공무원 세분과의 인연을 소개할 수 있어 자랑스럽지만 저렇게 승승 장구하는 선배들을 보면 부러워서 제 엉덩이도 들썩거림을 느낍니다. 그러나 전 고시 출신도 아니니, 통역을 천직으로 알고 교수직을 지켜야겠지요.
그런 출장을 2-3번 같이 갔는데 조직위 다른 고위 간부가 해외 출장을 나가며 유능한 수행원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하면 당시 김종민 비서실장이 <곽 과장을 데려가라. 그는 당백(當百)이다>라며 강추해 저는 타기 싫은 비행기를 몇 번 더 타기도 했습니다.
한일월드컵 조직위 사무총장을 지낸 문동후 씨와 김 장관은 고시 및 총무처 (현 행자부) 동기이고, 그 두 분의 2년 후배가 김범일 시장으로 그 세 사람은 <총무처의 3인방>으로 불렸습니다. 세 분 다 영어 실력이 뛰어나 특히 국제업무에 능했습니다. 세 분은 다 서울대를 나왔지만 김 사장은 경기고를, 나머지 두 사람은 경북고 출신입니다.
김 사장은 올림픽 후 총무처로 복귀해 요직을 거치다가 YS 청와대의 비서관으로 근무한 후 96년에 문화부 차관이 되었습니다. DJ로 정권이 바뀌고 한림대 초빙교수가 된 것은 아마 그의 공직생활에서 가장 한직이었을 겁니다. 그 때 늦게 외대 교수가 된 제가 논현동의 한림대 부속 건물에서 그와 재회했습니다. 그는 갑작스런 한직을 즐기는 듯 했지만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곧 2001년 도자기엑스포 조직위원장이 되어 제게 통역사 추천을 부탁해 우리 외대 통대 졸업생들이 덕분에 많이 활동할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당시 손학규 씨가 경기도 지사였지요. 김 장관은 2001년에 경기 관광공사를 창립해 2004년까지 초대 사장을 지낸 후 여세를 몰아 한국 관광 공사 사장이 되었을 때 저는 내 일처럼 기뻤습니다. 2005년 외대 통대가 CIUTI 서울 총회를 주최했을 때 총회 외국인 포함 참석자 50명에게 플라자 호텔에서 오찬을 베풀어주어 그들을 모두 한국 팬으로 만들면서 원장인 제 체면도 세워주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한국의 새 관광 브랜드를 <Korea, Sparkling>으로 바꾸는 창의성과 저력을 보였습니다. 실력 있는 분이 역시 제 자리로 간 것이요, 그의 실력을 세상이 알아 준 것이요, 민심이 천심인 겁니다. 공사사장 2년만에 대망의 문화부 장관이 되신 거지요. 1998년 문화부 차관직을 떠났으니 꼭 9년 만에 금의환향했습니다.
저는 이렇듯 훌륭한 공무원 선배들과 잠시나마 함께 일하는 행운을 누렸는데 김 장관의 행로를 지켜보면서 그에게는 공무원에 꼭 필요한 <관운>도 좋다고 느낍니다. 관운이 있는 사람은 앞 이마가 빛이 난다는 말도 있고…
공교롭게도 제 홈피 게시판에 최근 각광을 받는 공무원 세분과의 인연을 소개할 수 있어 자랑스럽지만 저렇게 승승 장구하는 선배들을 보면 부러워서 제 엉덩이도 들썩거림을 느낍니다. 그러나 전 고시 출신도 아니니, 통역을 천직으로 알고 교수직을 지켜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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