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관 홍순언: 6월16일(토) 밤8시10분1TV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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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7-06-17 20:21 조회3,99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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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밤 우연히 KBS 1 TV에 신설된 [한국사傳] 첫회 "인연, 조선의 운명을 바꾸다 - 역관 홍순언"편을 보게되었다. 우리 학교의 한중과 2학년이 503호실에서 조선시대의 통역 교재로 연습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내가 지난 5월 해외출장 중 찍었다 한다. 좀 사전 홍보가 됐으면 많이들 보고 토론도 할 수 있었을텐데... 관심있으면 웹사이트에서 <다시보기>를 보아도 좋을 듯하다.
"조선왕조 200년의 숙원사업, 종계변무 해결! 명나라의 임진왜란 파병을 이끌어낸 인물! 역관 홍순언!!" 이라는 예고편에 걸맞게 내용이 재미있었지만 내가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지난 500여년간 바뀌지 않은 역관, 즉 통역사의 사회적 지위와 사회의 인식이다.
한마디로 <역관>이라는 이름 자체에 약간의 경멸의 분위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시대, 서울 중간 지역에 살던 중인(中人) 계급으로 북쪽에 살던 양반들의 멸시를 받았고, 외국어 등 공부를 많이해 엄격한 시험을 거쳐 역관이 된 후에도 계속 공부를 해야했다는 점이 지금과 놀라울 정도로 같다. 통역 뿐 아니라 해외무역 업무도 맡았기 때문에 조선시대 최대 갑부가 되기도 했다는 사실도 놀랍다. 그러나 통역이 고소득 직종이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맞지 않다. 열심히 동시통역을 해야 연 소득이 1억원 정도 될 수있는데, 최근에는 수억대의 연봉을 받는 직종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이왕 존경받지 못하는 직종이라면 수입이라도 높아야 인간답게 살 수있을 텐데...
또 조선시대, 벼슬에서는 오를 수 있는 한계가 종3품이었다는 것도 서글프다. 홍순언도 선조가 더 높은 직급을 하사했으나 주위의 시기와 모함으로 강등 당했단다. 지금도 마찬가질까? 필자는 청와대에서 부이사관(별정직 3급)까지 하고 2급으로 오르기 6개월 전에 퇴직 당한 경험이 있다. 대통령 공보비서관으로 임명되기 전에도 <통역사가 통역만 하면 되지 비서관 자리가 필요있나?>는 분위기였다.
필자는 지금까지 통역사의 사회적 인식을 다음과 같이 시사한 바 있다.
1. 통역사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지는 몰라도 존경 받지는 못한다.
2. 통역사는 소방수와 같다. 불이 나면 모든 사람이 찾고 불을 꺼주면 칭찬 받지만
불이 꺼진 후에는 곧 잊혀진다.
3. 소방수가 어린이들의 장래 희망 직종 중 늘 상위에 드는 점과
통역사가 여고생이나 여대생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점도 유사하다.
4. 통/번역 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순간 평생을 따라다니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
필자는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통역시장에 뛰어들자 말자 그런 <낙인>의 가능성을 느끼면서
조직에 들어갔고, 그 이후에는 <통역사>의 낙인를 지우기 위해 노력하면서
다른 사람과 같은 입장에서 경쟁하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경쟁자들은 <그는 통역사>라고 하면서 경쟁대상에서 제외하려했다. 서울 올림픽 조직위에서는 수석 통역사로 영입된 지 6개월 만에 신설된 통역안내과장(서기관 급) 자리를 놓고 외무부 파견 서기관과 경합 벌이기 한 달여만에 <올림픽은 각계의 전문가가 맡아야한다>는 인사담당관의 놀라울만큼 확고한 믿음 덕분에 필자가 과장이 되었는데 몇 년 지난 후 외무부 인사를 밀었던 상관이 <곽중철의 통역안내과장 발령이 옳았다>고 실토했었다.
24시간 뉴스채널 YTN에서도 국제부장이 되기가 그만큼 더 어려웠다. "역관이 어떻게 수십명의 기자를 거느리는 언론사 부장이 될 수 있나?"는 공공연한 모함... 그러나 필자는 부장 직을 훌륭히 수행한 후 후배기자들의 칭송을 받으며 모교로 왔다고 자부한다. "국제뉴스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문구의 감사패까지 받으며...
학교에서도 그런 분위기는 감지된다. "통대 교수들이 연구와 학교일은 게을리하고 외부에 나가 부수입을 많이 올린다, 학교 여타 부서와 따로 논다, 통대가 학교의 간판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둥 말들이 많다.
통역과 번역은 실무를 해본 사람이 강의도 해야한다는 것은 구미에서는 상식이다. 통대 교수들 보고 통번역을 하지 말라고 함은 음대 교수보고 노래하지 마라, 미대 교수보고 그림 그리지 마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이미 우리 통대 교수들은 강의, 연구, 학교 일에 쫓겨 통번역 실무를 많이 할 시간도, 힘도 없다. 벌어봐야 얼마를 벌겠는가?
이왕 전문대학원으로 만들었으면 전문성을 인정하고 더 격려해야하는데 우리 사회는 앞서나가는 꼴을 못 본다. <같이 잘 살자>는 게 아니라 딴지를 걸면서 <같이 못 살자>는 거다. 고교평준화, 수능강화, 특목고 차별 등 하향 평준화 정책이 다 그런 데서 나온다.
통역사들이여, 통대 학생들이여, 이제 뭘 보고 통역을 하고, 공부를 할까? 수입도 특출하지 못하고, 존경도 받지 못하는데... 그렇다. 통역을 천직으로 알고, 평생 배우는 재미로 살고, 험한 세상에 다리 되는 사명감으로 하는 수 밖에....
"조선왕조 200년의 숙원사업, 종계변무 해결! 명나라의 임진왜란 파병을 이끌어낸 인물! 역관 홍순언!!" 이라는 예고편에 걸맞게 내용이 재미있었지만 내가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지난 500여년간 바뀌지 않은 역관, 즉 통역사의 사회적 지위와 사회의 인식이다.
한마디로 <역관>이라는 이름 자체에 약간의 경멸의 분위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시대, 서울 중간 지역에 살던 중인(中人) 계급으로 북쪽에 살던 양반들의 멸시를 받았고, 외국어 등 공부를 많이해 엄격한 시험을 거쳐 역관이 된 후에도 계속 공부를 해야했다는 점이 지금과 놀라울 정도로 같다. 통역 뿐 아니라 해외무역 업무도 맡았기 때문에 조선시대 최대 갑부가 되기도 했다는 사실도 놀랍다. 그러나 통역이 고소득 직종이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맞지 않다. 열심히 동시통역을 해야 연 소득이 1억원 정도 될 수있는데, 최근에는 수억대의 연봉을 받는 직종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이왕 존경받지 못하는 직종이라면 수입이라도 높아야 인간답게 살 수있을 텐데...
또 조선시대, 벼슬에서는 오를 수 있는 한계가 종3품이었다는 것도 서글프다. 홍순언도 선조가 더 높은 직급을 하사했으나 주위의 시기와 모함으로 강등 당했단다. 지금도 마찬가질까? 필자는 청와대에서 부이사관(별정직 3급)까지 하고 2급으로 오르기 6개월 전에 퇴직 당한 경험이 있다. 대통령 공보비서관으로 임명되기 전에도 <통역사가 통역만 하면 되지 비서관 자리가 필요있나?>는 분위기였다.
필자는 지금까지 통역사의 사회적 인식을 다음과 같이 시사한 바 있다.
1. 통역사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지는 몰라도 존경 받지는 못한다.
2. 통역사는 소방수와 같다. 불이 나면 모든 사람이 찾고 불을 꺼주면 칭찬 받지만
불이 꺼진 후에는 곧 잊혀진다.
3. 소방수가 어린이들의 장래 희망 직종 중 늘 상위에 드는 점과
통역사가 여고생이나 여대생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점도 유사하다.
4. 통/번역 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순간 평생을 따라다니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
필자는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통역시장에 뛰어들자 말자 그런 <낙인>의 가능성을 느끼면서
조직에 들어갔고, 그 이후에는 <통역사>의 낙인를 지우기 위해 노력하면서
다른 사람과 같은 입장에서 경쟁하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경쟁자들은 <그는 통역사>라고 하면서 경쟁대상에서 제외하려했다. 서울 올림픽 조직위에서는 수석 통역사로 영입된 지 6개월 만에 신설된 통역안내과장(서기관 급) 자리를 놓고 외무부 파견 서기관과 경합 벌이기 한 달여만에 <올림픽은 각계의 전문가가 맡아야한다>는 인사담당관의 놀라울만큼 확고한 믿음 덕분에 필자가 과장이 되었는데 몇 년 지난 후 외무부 인사를 밀었던 상관이 <곽중철의 통역안내과장 발령이 옳았다>고 실토했었다.
24시간 뉴스채널 YTN에서도 국제부장이 되기가 그만큼 더 어려웠다. "역관이 어떻게 수십명의 기자를 거느리는 언론사 부장이 될 수 있나?"는 공공연한 모함... 그러나 필자는 부장 직을 훌륭히 수행한 후 후배기자들의 칭송을 받으며 모교로 왔다고 자부한다. "국제뉴스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문구의 감사패까지 받으며...
학교에서도 그런 분위기는 감지된다. "통대 교수들이 연구와 학교일은 게을리하고 외부에 나가 부수입을 많이 올린다, 학교 여타 부서와 따로 논다, 통대가 학교의 간판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둥 말들이 많다.
통역과 번역은 실무를 해본 사람이 강의도 해야한다는 것은 구미에서는 상식이다. 통대 교수들 보고 통번역을 하지 말라고 함은 음대 교수보고 노래하지 마라, 미대 교수보고 그림 그리지 마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이미 우리 통대 교수들은 강의, 연구, 학교 일에 쫓겨 통번역 실무를 많이 할 시간도, 힘도 없다. 벌어봐야 얼마를 벌겠는가?
이왕 전문대학원으로 만들었으면 전문성을 인정하고 더 격려해야하는데 우리 사회는 앞서나가는 꼴을 못 본다. <같이 잘 살자>는 게 아니라 딴지를 걸면서 <같이 못 살자>는 거다. 고교평준화, 수능강화, 특목고 차별 등 하향 평준화 정책이 다 그런 데서 나온다.
통역사들이여, 통대 학생들이여, 이제 뭘 보고 통역을 하고, 공부를 할까? 수입도 특출하지 못하고, 존경도 받지 못하는데... 그렇다. 통역을 천직으로 알고, 평생 배우는 재미로 살고, 험한 세상에 다리 되는 사명감으로 하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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