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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LE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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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5-06-09 17:56 조회3,7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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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le 7 (쌀르 쎄뜨)란 불어로 <7호 교실>이라는 말입니다. 1980-1983년, 제가 유학했던 파리의 통역학교, ESIT의 입구에 있는 약 50평 크기의 제일 큰 교실입니다. 2001년 별세한, 20여년 에지트 원장을 역임했던 여 교수의 이름을 부쳐 Danica Seleskovitch Hall로도 불리고 있었습니다.

그 건물이 옛 NATO 본부여서 그 때 쓰던 동시통역 부스 3개를 그대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방은 특히 입학 초부터 졸업까지, 에지트의 통역학부 학장이 통역부 학생 전체를 모아놓고 통역을 강의했습니다.

당시 학장은 Chistopher Thiery라는 큰 덩치의 프랑스 교수로 영어와 불어의 Bilingual 이었는데 2년동안 통역입문 과정부터 동시통역까지 가르치면서 날카로운 비평으로 악명높았습니다. 그 시간만 되면 모든 학생이 공포에 떨었습니다. 당시 모국어인 한국어를 인정받지 못하고 불어를 영어로 순차 통역하는 C-B통역으로만 평가받아야했던 특별 경우의 학생(Special Case) 중 한 사람이었던 저도 그 수업에 참석해 한 달에 한 번쯤 통역 평가를 받았습니다. 학기말이 가까와 오면 ㄷ자 모양으로 배치된 책상들 중앙에 통역자 책상과 걸상을 놓아 거기에 앉혀놓고 통역을 시켰기에 무대 공포증은 더 컸습니다.       

이 교실은 동시통역 졸업시험 장소이기도 한데 저는 1983년 6월 13일 맨 오른쪽의 부스에 홀로 앉아 티에리 학장을 비롯한 4명의 시험관 앞에서 한영 동시의 졸업시험을 쳤고, 천신만고 끝에 20점 만점에 18점을 받아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기적같은 결과였습니다.

지난 주, 세계통대협회(CIUTI) 총회 참석 차 파리에 갔을 때 월요일 회의에서 제가 <한국의 통번역 시장>을 소개한 것도 바로 이 교실이었고, 금요일 총회 기념으로 열린 학술 대회에서 한국 대표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의 TV 통역>이란 주제 발표를 한 것도 이 교실이었습니다. 특히 금요일 발표 때는 1983년 6월 같이 졸업한 현 에지트 통역부 학장 Clare Donovan이 좌장을 맡아 저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22년만에 한국의 통대 대표 자격으로 처음으로 참석한 CIUTI 총회 장소가 이 교실이었고, 그 기념으로 열린 학술대회의 워크샵 4개 중 제가 주제발표를 한 통역관련 워크샵 장소가 또 이 교실이었고, 그 좌장이 저와 동기생이라는 사실이 제게는 꼭 우연의 일치로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이 설명을 들은 역시 에지트의 번역부 출신인 이화여대 통대의 최미경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은 일종의 숙명(fatality)>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과연 그런 숙명이란 것이 있을까요?

22년 만에 들어가 본 Salle 7는 개보수로 더 깨끗해졌지만 공포에 떨었던 22년 전보다는 어쩐지 좀 작아진 느낌이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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