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어를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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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5-08-20 12:58 조회5,14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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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어를 고발한다
최용식 지음
넥서스
2005년 7월
pp 265-272
국가 슬로건과 IT
현재 우리나라에는 한국의 브랜드 마케팅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사설 컨설팅 단체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국무총리 산하의 국가 이미지위원회의 민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외대XX대학원 XXX 교수가 설립한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이 눈에 띄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이 단체는 2004년 초 자사의 인터넷 웹사이트www.coreaimage.org 공모를 통해 한국의 국가 브랜드 슬로건으로 적합한 작품을 발표했다. 이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 IT's Korea!였고 장려상엔 e-topia Korea가 뽑혔다.
그런데 사설 연구소가 치열한 고민 없이 국가의 브랜드 슬로건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정부의 정책결정자나 일반 국민들에게 쓸데없는 선입견을 심어준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잘못된 일이고 아주 위험천만한 일이다.
사실 이 두 작품은 모두 콩글리시라고 봐야 한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더라도 조금만 신중하게 생각해 보면 왜 그런지 바로 알 수 있다. 또한 Dynamic Korea의 대안을 찾기 위해 제시된 작품이라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보다도 훨씬 조악한 수준이다.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은 문구에 잔뜩 자의적 해석만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작품 모두 한국이 IT 분야에서 '세계 최강'이라는 자부심에서 출발했지만 이것은 '우물 안 개구리'식의 사고에 불과하다. 이제 그 이유를 살펴보자.
IT's Korea!
IT's Korea! 란 슬로건은 한국이 IT 강국임을 연상케 하는가 하면 It's Korea!(바로 한국이야)라는 복합적인 뜻도 담고 있다는 것이 연구원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IT's Korea!는 대전시가 내세운 It's Daejeon(잇츠 대전)의 콩글리시 오류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it은 대명사로 뭔가를 지칭하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결국 문법적으로도 틀리고 아무 내용도 없는 문장(그것이 한국이다)을 대상으로 뽑아놓은 것이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정말 묻고 싶을 따름이다.
그뿐 아니라 여기서 IT는 한국의 Innovation & Tradition(혁신과 전통), 한국의 Information Technology (IT 기술), 한국의 Integration & Transformation(통합과 변화), 한국의 International Traders(국제 무역인)을 가리키며 한국을 대표하는 총체적인 이미지의 결정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자의적 논리는 무지에서 나온 궤변이다. IT's Korea!는 당연히 '잇츠 코리아'로 읽지 대문자 IT라고 해서 '아이티스 코리아'로 읽을 사람은 거의 없다. '아이티'로 읽는다고 해도 IT's Korea를 접하는 모든 사람들을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이것은 한국의 IT 기술, 혁신과 전통, 통합과 변화, 국제 무역인을 의미하는 약어'라고 설명할 수는 없다.
한편 IT가 Ignorant & Treacherous(무지하고 배신하는)나 Insight & Temptation(통찰력과 유혹)처럼 부정적인 개념을 가리킬 수도 있다. 대충 약어를 만들어 놓고 아전인수식 해석을 붙여 마케팅 슬로건을 만들면 만든 사람밖에 모른다. 이것은 결국 GS그룹의 오류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인터넷 분야에서 세계 최고라고 치더라도 그것은 우리의 관심사일 뿐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우수한 인터넷 문화가 외국 사람들에게 득이 될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로 된 웹사이트에 들어와서 카페를 만들어 동호회 활동을 할 것도 아니고 한국어로 된 정보를 검색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설사 우리나라의 영문 사이트에 방문한다고 해도 오류 투성이에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알고 오히려 실망할 수도 있다.
만약 프랑스가 '세계 최고의 와인 생산 국가'라는 문구를 슬로건으로 선전한다면 이것은 프랑스 와인에 대해 구매 욕구나 소비의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이를 접하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 강국 코리아'와 같은 자기과시용{?} 슬로건은 '그래서 뭐?' '그랬어? 그런데!' 정도의 무관심 내지 냉소적 반응이 고작일 것이다.
유럽이나 호주, 미국에는 인터넷이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발달되어 있지는 않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터넷이 없이도 여유롭게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사실 한국이 인터넷 보급망이 세계 최고이든 최하이든 그것은 그들의 관심 밖이다. 한마디로They don't care!
우리의 인터넷 문화나 정보통신기술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좋다. 그러나 이것만을 국가 마케팅의 중심개념으로 활용하는 것은 미국에 가서 한국이 세계 축구의 4강이라고 자랑하는 것이나 브라질이나 유럽에 가서 박찬호를 '코리안 특급(Korean Express)'이라고 홍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언젠가는 다른 나라도 우리나라 정도의 인터넷 문화에 도달할 수도 있고 능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첨단기술에 IT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소한 개념이지만 한국 정부에서는 이미 차세대 성장동력 기술로 '6 T사업'을 선정 했는데 IT 이외에 NT(Nano Technology: 나노기술), BT(Bio Technology: 생명공학기술), CT(Culture Technology: 문화기술), ST(Space Technology: 항공우주 기술, 그리고 ET(Environment Technology: 환경기술)를 의미한다 또한 황우석 교수도 있다.
결국 IT's Korea! (그것이 한국이다)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콩글리시는 단순히 영어 문법이 틀리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상대는 이해하지 못하는데 자기의 입장만 강조하는 의사소통의 불일치 상태를 의미한다.
e-topia Korea
장려상을 수상한 e-topia Korea는 '유토피아(utopia)'란 단어에 IT 또는 IT산업 전반을 뜻하는 'e-'를 붙여 만든 합성어로 역시 한국이 'IT 이상향' 'e-이상향'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게 연구원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e-topia Korea는 국가 슬로건의 후보에 올라서도 안 되는 작품이다.
도대체 e-topia라는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가 슬로건을 만드는 데 생전 처음 본 신조어를 사용해서 누구에게 어떤 이미지를 심어준다는 말인가? 만약 신조어 만들기 경연대회라면 고려해 볼 만하지만 이렇게 생소한 신조어로 어떻게 한국을 제대로 알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작품은 서울시의 보조 슬로건인 dreams@Seoul보다도 수준이 한참 떨어진다. 적어도 서울시의 작품에는 '꿈'이라는 일반적인 명사가 있어 '서울'과 어우러지면서 특정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e-topia는 한국에 대해 어떠한 상상력도 불러오지 못한다.
그런 식이라면 요즘 한참 뜨고 있는 '유비쿼터스(ubiquitous)'라는 알듯 말듯한 전문용어를 이용해 u-topia로 써도 좋다는 논리가 된다. 하지만 이 신조어를 '유토피아'의 오타로 생각하지 '유비쿼터스'와 '유토피아'의 합성어라고 생각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정보통신부 산하의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서는 u-Korea라는 모토 표현을 쓰고 있다.
그리고 필자는 현재 한국이 'IT 이상향'이나 'e-이상향'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고 믿고 있다. 인간적인 측면은 고려하지도 않고 신기술만 강조하는 한국에 무슨 매력이 있을까?
접두사 'e'나 'i'를 붙이는 방식은 90년대 말 닷컴 붐이 일면서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던 기업이름 작명방식이었다. 하지만 신경제의 거품이 꺼지고 닷컴산업이 철퇴를 맞으면서 이러한 작명법은 이미 업계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다. 철 지난 브랜딩 방식을 적용한 슬로건 작품을 수상작으로 골랐다는 것은 주최기관이 그만큼 전문성을 결여했다는 것을 반증할 뿐이다.
사실 e-topia는 일반 기업의 브랜드 슬로건으로 쓰기에도 유치한 수준이다. 한때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에서 technology(기술)와 utopia(이상향)를 합해 '테크노피아'라는 브랜드 슬로건을 내세운 적이 있었다. 1985년의 일이다. 지금 만약 LG전자에게 e-topia LG률 사용해 보라고 하면 아마 그렇게 긍정적인 대답을 얻기는 힘들 것이다. 하물며 대한민국의 '얼굴로는 더더욱 아니라는 말이 된다. 생소한 약어 표현이나 철학적 상징, 또는 족보도 없는 신조어가 들어간 어려운 슬로건은 아예 만들 이유가 없는 것이다.
Korea's IT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에서는 대상으로 뽑은 IT's Korea!를 응용해 Korea's IT라는 문구를 만들었다. 이 표현은 연구원이 자체 제작한 한국관련 홍보영상물의 제목으로 쓰이고 있다. 연구원 측의 설명에 의하면 Korea's IT(코리아스잇)이란 '이제는 한국 차례야!, 한국이 화제의 나라야!' 라는 뜻이며 동시에 '한국의 IT'를 의미한다고 한다.
영어와 불어로 제작된 이 영상물은 휴대폰, 인터넷, 자동차 등 현대 첨단 산업과 한글, 금속활자, 측우기 등 전통 문화를 함께 대비시키며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가운데 한국 사회와 문화를 소개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한복 입고 지휘하는 정명훈,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세계 최초로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한 황우석 박사 그리고 잇따라 세계 영화제를 휩쓴 대중문화 스타들도 등장한다.
Korea's IT(코리아스잇)이란 표현의 뉘앙스는 생활영어에서 자주 사용하는 that's it(바로 그거야. 그 점이야, 이제 끌장이다)을 떠올리면 된다. 그런데 영어에서 '댓츠잇'을 제외하고 something is it(뭔가가 바로 그거다)이란 말은 거의 사용하지도 않고 특별한 매력도 없는 진부한 표현이다.
코카콜라도 1982년부터 85년까지 Coke Is It(코카콜라가 답이다)라는 브랜드 슬로건을 사용했고 이 문구를 이용한 재미있는 TV광고도 많았다. 생필품과도 같은 코카콜라 브랜드를 아주 쉬운 문구로 해석해 관심을 유발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미국인들뿐 아니라 다른 영어권 국가의 성인들 가운데 Coke Is It 이란 표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다 좋은 제목을 다 놔두고 굳이 코카콜라와 비슷한 형식의 제목을 선택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영어권 국가의 어린이들이 자주 하는 놀이 가운데 태그(tag)라는 놀이가 있다. 그저 마구 뛰어다니면서 상대를 손으로 치면(tag) 그 사람이 술래가 되어 다른 사람을 치는 놀이다. 이 때 태그하면서 하는 말이 바로 you are it(이제 너야, 네가 술래야)이다.
이렇게 어린이들의 놀이에 단골로 등장하던 표현을 국가적 이벤트와 관련해 사용해서인지 아무래도 격이 떨어지는 느낌이고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굳이 한국이 IT 분야에서 뛰어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억지로 Korea's IT(이제 한국 너야)를 끼워 맞춘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카콜라는 왜 굳이 Coke Is It을 슬로건으로 채택했을까? 그것은 어린이들이 코카콜라를 마시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차피 콜라 브랜드는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밖에 없고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Coke Is It은 '둘 가운데 이게 정답' 이라고 강하게 호소하는 형식이 된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몇 개인지도 모르는 숫자의 국가들이 있다. 그런데 아무 근거도 없이 갑자기 '한국이 정답이다' '한국 네 차례다' 라고 주장하면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
한편 연구원의 지적대로 Korea's IT를 '코리아스 아이티'로 읽으면 '한국의 IT'를 가리키게 된다. 사실 아무 선입견 없이 Korea's IT라는 문구를 본다면 백의 구십구는 '한국의 IT'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Korea's it이 아니라 Korea’s IT 라고 it을 대문자로 쓰기 때문이다.
따라서 홍보 비디오의 제목은 '한국의 IT'인데 실제 내용은 한국의 IT 기술을 총정리 하는 게 아니라 엉뚱하게도 한국의 역사와 전통문화 뿐 아니라 백남준이나 정명훈 같은 인물을 소개하고 있으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난처할 따름이다. 잔뜩 한국의 정보기술산업의 현주소를 기대하고 있는데 춤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한류 안내 비디오가 된 셈이다.
이 연구원에서 국가 이미지 브랜드의 제고를 위해 많은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혀 설득력 없는 슬로건 작품을 우리나라의 국가 브랜드의 대안인 양 제시해 잘못된 여론을 조성하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하지 않은 처사다. 외국어 실력과 마케팅 지식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어찌 보면 국가 브랜드 사업은 나라의 미래가 달린 사업인데 전문성도 의심스러운 사설 연구단체가 함부로 나서다 보면 오히려 국가의 이미지를 망쳐 놓을 수도 있다. 정말 걱정된다.
곽중철 (2005-08-20 13:00:32)
상기 저서의 일독을 권합니다.
통역 전공자들이 꼭 숙지해야할 내용이 많은 책입니다.
최용식 지음
넥서스
2005년 7월
pp 265-272
국가 슬로건과 IT
현재 우리나라에는 한국의 브랜드 마케팅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사설 컨설팅 단체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국무총리 산하의 국가 이미지위원회의 민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외대XX대학원 XXX 교수가 설립한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이 눈에 띄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이 단체는 2004년 초 자사의 인터넷 웹사이트www.coreaimage.org 공모를 통해 한국의 국가 브랜드 슬로건으로 적합한 작품을 발표했다. 이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 IT's Korea!였고 장려상엔 e-topia Korea가 뽑혔다.
그런데 사설 연구소가 치열한 고민 없이 국가의 브랜드 슬로건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정부의 정책결정자나 일반 국민들에게 쓸데없는 선입견을 심어준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잘못된 일이고 아주 위험천만한 일이다.
사실 이 두 작품은 모두 콩글리시라고 봐야 한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더라도 조금만 신중하게 생각해 보면 왜 그런지 바로 알 수 있다. 또한 Dynamic Korea의 대안을 찾기 위해 제시된 작품이라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보다도 훨씬 조악한 수준이다.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은 문구에 잔뜩 자의적 해석만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작품 모두 한국이 IT 분야에서 '세계 최강'이라는 자부심에서 출발했지만 이것은 '우물 안 개구리'식의 사고에 불과하다. 이제 그 이유를 살펴보자.
IT's Korea!
IT's Korea! 란 슬로건은 한국이 IT 강국임을 연상케 하는가 하면 It's Korea!(바로 한국이야)라는 복합적인 뜻도 담고 있다는 것이 연구원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IT's Korea!는 대전시가 내세운 It's Daejeon(잇츠 대전)의 콩글리시 오류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it은 대명사로 뭔가를 지칭하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결국 문법적으로도 틀리고 아무 내용도 없는 문장(그것이 한국이다)을 대상으로 뽑아놓은 것이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정말 묻고 싶을 따름이다.
그뿐 아니라 여기서 IT는 한국의 Innovation & Tradition(혁신과 전통), 한국의 Information Technology (IT 기술), 한국의 Integration & Transformation(통합과 변화), 한국의 International Traders(국제 무역인)을 가리키며 한국을 대표하는 총체적인 이미지의 결정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자의적 논리는 무지에서 나온 궤변이다. IT's Korea!는 당연히 '잇츠 코리아'로 읽지 대문자 IT라고 해서 '아이티스 코리아'로 읽을 사람은 거의 없다. '아이티'로 읽는다고 해도 IT's Korea를 접하는 모든 사람들을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이것은 한국의 IT 기술, 혁신과 전통, 통합과 변화, 국제 무역인을 의미하는 약어'라고 설명할 수는 없다.
한편 IT가 Ignorant & Treacherous(무지하고 배신하는)나 Insight & Temptation(통찰력과 유혹)처럼 부정적인 개념을 가리킬 수도 있다. 대충 약어를 만들어 놓고 아전인수식 해석을 붙여 마케팅 슬로건을 만들면 만든 사람밖에 모른다. 이것은 결국 GS그룹의 오류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인터넷 분야에서 세계 최고라고 치더라도 그것은 우리의 관심사일 뿐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우수한 인터넷 문화가 외국 사람들에게 득이 될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로 된 웹사이트에 들어와서 카페를 만들어 동호회 활동을 할 것도 아니고 한국어로 된 정보를 검색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설사 우리나라의 영문 사이트에 방문한다고 해도 오류 투성이에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알고 오히려 실망할 수도 있다.
만약 프랑스가 '세계 최고의 와인 생산 국가'라는 문구를 슬로건으로 선전한다면 이것은 프랑스 와인에 대해 구매 욕구나 소비의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이를 접하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 강국 코리아'와 같은 자기과시용{?} 슬로건은 '그래서 뭐?' '그랬어? 그런데!' 정도의 무관심 내지 냉소적 반응이 고작일 것이다.
유럽이나 호주, 미국에는 인터넷이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발달되어 있지는 않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터넷이 없이도 여유롭게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사실 한국이 인터넷 보급망이 세계 최고이든 최하이든 그것은 그들의 관심 밖이다. 한마디로They don't care!
우리의 인터넷 문화나 정보통신기술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좋다. 그러나 이것만을 국가 마케팅의 중심개념으로 활용하는 것은 미국에 가서 한국이 세계 축구의 4강이라고 자랑하는 것이나 브라질이나 유럽에 가서 박찬호를 '코리안 특급(Korean Express)'이라고 홍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언젠가는 다른 나라도 우리나라 정도의 인터넷 문화에 도달할 수도 있고 능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첨단기술에 IT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소한 개념이지만 한국 정부에서는 이미 차세대 성장동력 기술로 '6 T사업'을 선정 했는데 IT 이외에 NT(Nano Technology: 나노기술), BT(Bio Technology: 생명공학기술), CT(Culture Technology: 문화기술), ST(Space Technology: 항공우주 기술, 그리고 ET(Environment Technology: 환경기술)를 의미한다 또한 황우석 교수도 있다.
결국 IT's Korea! (그것이 한국이다)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콩글리시는 단순히 영어 문법이 틀리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상대는 이해하지 못하는데 자기의 입장만 강조하는 의사소통의 불일치 상태를 의미한다.
e-topia Korea
장려상을 수상한 e-topia Korea는 '유토피아(utopia)'란 단어에 IT 또는 IT산업 전반을 뜻하는 'e-'를 붙여 만든 합성어로 역시 한국이 'IT 이상향' 'e-이상향'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게 연구원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e-topia Korea는 국가 슬로건의 후보에 올라서도 안 되는 작품이다.
도대체 e-topia라는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가 슬로건을 만드는 데 생전 처음 본 신조어를 사용해서 누구에게 어떤 이미지를 심어준다는 말인가? 만약 신조어 만들기 경연대회라면 고려해 볼 만하지만 이렇게 생소한 신조어로 어떻게 한국을 제대로 알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작품은 서울시의 보조 슬로건인 dreams@Seoul보다도 수준이 한참 떨어진다. 적어도 서울시의 작품에는 '꿈'이라는 일반적인 명사가 있어 '서울'과 어우러지면서 특정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e-topia는 한국에 대해 어떠한 상상력도 불러오지 못한다.
그런 식이라면 요즘 한참 뜨고 있는 '유비쿼터스(ubiquitous)'라는 알듯 말듯한 전문용어를 이용해 u-topia로 써도 좋다는 논리가 된다. 하지만 이 신조어를 '유토피아'의 오타로 생각하지 '유비쿼터스'와 '유토피아'의 합성어라고 생각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정보통신부 산하의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서는 u-Korea라는 모토 표현을 쓰고 있다.
그리고 필자는 현재 한국이 'IT 이상향'이나 'e-이상향'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고 믿고 있다. 인간적인 측면은 고려하지도 않고 신기술만 강조하는 한국에 무슨 매력이 있을까?
접두사 'e'나 'i'를 붙이는 방식은 90년대 말 닷컴 붐이 일면서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던 기업이름 작명방식이었다. 하지만 신경제의 거품이 꺼지고 닷컴산업이 철퇴를 맞으면서 이러한 작명법은 이미 업계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다. 철 지난 브랜딩 방식을 적용한 슬로건 작품을 수상작으로 골랐다는 것은 주최기관이 그만큼 전문성을 결여했다는 것을 반증할 뿐이다.
사실 e-topia는 일반 기업의 브랜드 슬로건으로 쓰기에도 유치한 수준이다. 한때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에서 technology(기술)와 utopia(이상향)를 합해 '테크노피아'라는 브랜드 슬로건을 내세운 적이 있었다. 1985년의 일이다. 지금 만약 LG전자에게 e-topia LG률 사용해 보라고 하면 아마 그렇게 긍정적인 대답을 얻기는 힘들 것이다. 하물며 대한민국의 '얼굴로는 더더욱 아니라는 말이 된다. 생소한 약어 표현이나 철학적 상징, 또는 족보도 없는 신조어가 들어간 어려운 슬로건은 아예 만들 이유가 없는 것이다.
Korea's IT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에서는 대상으로 뽑은 IT's Korea!를 응용해 Korea's IT라는 문구를 만들었다. 이 표현은 연구원이 자체 제작한 한국관련 홍보영상물의 제목으로 쓰이고 있다. 연구원 측의 설명에 의하면 Korea's IT(코리아스잇)이란 '이제는 한국 차례야!, 한국이 화제의 나라야!' 라는 뜻이며 동시에 '한국의 IT'를 의미한다고 한다.
영어와 불어로 제작된 이 영상물은 휴대폰, 인터넷, 자동차 등 현대 첨단 산업과 한글, 금속활자, 측우기 등 전통 문화를 함께 대비시키며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가운데 한국 사회와 문화를 소개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한복 입고 지휘하는 정명훈,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세계 최초로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한 황우석 박사 그리고 잇따라 세계 영화제를 휩쓴 대중문화 스타들도 등장한다.
Korea's IT(코리아스잇)이란 표현의 뉘앙스는 생활영어에서 자주 사용하는 that's it(바로 그거야. 그 점이야, 이제 끌장이다)을 떠올리면 된다. 그런데 영어에서 '댓츠잇'을 제외하고 something is it(뭔가가 바로 그거다)이란 말은 거의 사용하지도 않고 특별한 매력도 없는 진부한 표현이다.
코카콜라도 1982년부터 85년까지 Coke Is It(코카콜라가 답이다)라는 브랜드 슬로건을 사용했고 이 문구를 이용한 재미있는 TV광고도 많았다. 생필품과도 같은 코카콜라 브랜드를 아주 쉬운 문구로 해석해 관심을 유발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미국인들뿐 아니라 다른 영어권 국가의 성인들 가운데 Coke Is It 이란 표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다 좋은 제목을 다 놔두고 굳이 코카콜라와 비슷한 형식의 제목을 선택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영어권 국가의 어린이들이 자주 하는 놀이 가운데 태그(tag)라는 놀이가 있다. 그저 마구 뛰어다니면서 상대를 손으로 치면(tag) 그 사람이 술래가 되어 다른 사람을 치는 놀이다. 이 때 태그하면서 하는 말이 바로 you are it(이제 너야, 네가 술래야)이다.
이렇게 어린이들의 놀이에 단골로 등장하던 표현을 국가적 이벤트와 관련해 사용해서인지 아무래도 격이 떨어지는 느낌이고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굳이 한국이 IT 분야에서 뛰어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억지로 Korea's IT(이제 한국 너야)를 끼워 맞춘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카콜라는 왜 굳이 Coke Is It을 슬로건으로 채택했을까? 그것은 어린이들이 코카콜라를 마시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차피 콜라 브랜드는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밖에 없고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Coke Is It은 '둘 가운데 이게 정답' 이라고 강하게 호소하는 형식이 된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몇 개인지도 모르는 숫자의 국가들이 있다. 그런데 아무 근거도 없이 갑자기 '한국이 정답이다' '한국 네 차례다' 라고 주장하면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
한편 연구원의 지적대로 Korea's IT를 '코리아스 아이티'로 읽으면 '한국의 IT'를 가리키게 된다. 사실 아무 선입견 없이 Korea's IT라는 문구를 본다면 백의 구십구는 '한국의 IT'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Korea's it이 아니라 Korea’s IT 라고 it을 대문자로 쓰기 때문이다.
따라서 홍보 비디오의 제목은 '한국의 IT'인데 실제 내용은 한국의 IT 기술을 총정리 하는 게 아니라 엉뚱하게도 한국의 역사와 전통문화 뿐 아니라 백남준이나 정명훈 같은 인물을 소개하고 있으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난처할 따름이다. 잔뜩 한국의 정보기술산업의 현주소를 기대하고 있는데 춤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한류 안내 비디오가 된 셈이다.
이 연구원에서 국가 이미지 브랜드의 제고를 위해 많은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혀 설득력 없는 슬로건 작품을 우리나라의 국가 브랜드의 대안인 양 제시해 잘못된 여론을 조성하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하지 않은 처사다. 외국어 실력과 마케팅 지식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어찌 보면 국가 브랜드 사업은 나라의 미래가 달린 사업인데 전문성도 의심스러운 사설 연구단체가 함부로 나서다 보면 오히려 국가의 이미지를 망쳐 놓을 수도 있다. 정말 걱정된다.
곽중철 (2005-08-20 13:00:32)
상기 저서의 일독을 권합니다.
통역 전공자들이 꼭 숙지해야할 내용이 많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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