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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2001년 통역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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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8-11 08:42 조회8,525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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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 전쟁                           20011월 씀

 

1 17일 아침에 터진 걸프전은 전세계 언론의 '보도전쟁'을 불러 일으켰고, 한국의 두 TV 방송사 간에는 통역 전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미국이 그 시간에 기습 공격을 감행할 줄 예상 못 했고, 또 미국의 CNN 방송기자들이 바그다드 현장에서 이를 생중계하게 될 줄은 더욱 몰랐던 방송사들은 이에 대비하지 못해 또다른기습'을 당한 것이다.

 

전쟁 발발에서부터 '특종'을 계속한 CNN 방송을 그대로 중계해야 했던 두 방송사에서는 이를 동시 통역하여 영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 청자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급박한 과제를 안게 되었다.

 

양 방송사는 우선 사내에 있는 통역 가능 인력을 찾았을 것이다. 그 들은 먼저 외신이나 국제 협력 부서에 있는 인재를 찾아 방송에 투입했다.

 

KBS에서는 모 여기자가 마이크를 잡아 100% 통역은 아니지만 자 신이 알아들은 일부 내용을 기자 답게 숨가쁘게 해설 형식으로 방송하 면서 급한 불을 꺼주는 큰 공헌을 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통역을 할 때 그 내용을 알고 언론 보도의 감()을 잡아 그것을 실감나게 전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반면에 MBC 외신부의 모 기자는 용감하게 동시 통역에 나섰으나 그가 전달해 준 내용은 10%에 불과했고 넉살 좋게 현장의 감을 둘러대지도 못해 도중 하차한 것 같다.

 

시간이 좀 지나자 KBS에서는 매일 새벽 위성 뉴스의 통역을 담당하는 인력을 투입했다. 그들은 전문 통역사 답게 기자들보다는 충실하게 통역을 해 나갔지만, 내용 전달에 급급한 나머지 숨가쁜 전쟁의 분위기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그들의 단조롭고도 주눅이 든 듯한 힘없는 목소리는 시청자들의 불만과 항의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MBC는 국제 협력부의 직원과 영어 회화 시간을 담당하는 외국어 학원장(민병철)까지 동원해 보았으나 여의치 않았다. 가장 뜨거운 뉴스인 정쟁 발발 사실을 알리는 속보성과 화면을 통한 생생한 현장 중계에서 두 TV 방송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정확한 통역에 대한 의미 전달이 관건이 되자, 서울에 있는 모든 통역 가능 인력에 대한 탐색이 이루어지고 접촉이 된 인력들은 방송국으로 달려와 방송실의 마이크 앞에 앉았다.

 

        통역사 세계에서 방송국에서의 생방송 동시 통역은 가장 어려운 통역으로 간주되고 있다. 아무리 많은 국제 회의에서 동시 통역을 한 경험을 가진 중견 통역사라도 방송국에서의 생방송 통역은 기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는 다음과 같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방송국에서의 동시 통역 업무는 그 여건이 아주 불리한 가운데서 이루어진다. 방송실에서는 따로 통역 부스가 없고 아나운서들이 앉는 의자에 앉아 좁은 책상 위에 놓아주는 작은 흑백 TV를 보며 그나마 한쪽 귀에 꽂은 작은 이어폰을 통해 위성중계의 음향을 들으며 통역해야 한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집에서 보는 TV의 음향보다 잘 들리지 않기 때문에 일단 잘 들어야 좋은 통역을 할 수 있는 통역사들에게는 큰 어려움이 아닐 수 없다.

 

        어떤 경우에는 뉴스 앵커들과 같은 스튜디오의 한쪽 구석에 앉을 때도 있는데 이때는 강렬한 조명과 카메라, 걱정스레 바라보는 방송 관계자들의 시선에 더욱 주눅이 든다.

 

        자신이 통역해야 하는 연사는 TV 화면에 나타날 뿐인데, 보이지 않는 전국의 시청자들을 향해 통역을 해야 하니 평소 회의 통역시에 느끼는 긴장과 공포감의 몇 배를 느끼는 것이다.

 

혹시 통역이 잘못되면 전국 시청자들의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고 방 송 관계자들의 불만스런 비판을 받아야 하는 '도마 위의 고기'로서 통 역사들은 엄청난 부담을 느낀다. 그래서 방송 통역은 잘하기가 정말 힘들고 문자 그대로 '잘해야 본전인 것이다.

 

돈 얘기가 나왔으니, 이 어려운 통역에 대한 방송사들의 사례는 보통 그렇게 많지 못하다. '출연료'를 기준으로 받을 때는 명목상의 금액이요, '통역료'로 받아 보아도 고생을 한 대가로는 너무 적은 것이 현실이다.

 

방송 관계자들은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런 대우를 받고 다음 기회에도 방송국으로 쫓아올 통역사는 많지 않을 것이다.

 

18일 계속된 위성 중계 방송에서는 KBS L기자가 나와 동시 통역을 담당했는데, 그는 나름대로 영어 공부를 한 덕분인지 약 50% 이상의 내용을 전달하면서 기자다운 끼를 발휘하여 그를 아는 사람들을 경탄 시켰다.

 

반면에 서울 도처에서 연락을 받고 출동한 전문 통역사들은 잘 들리 지 않는 음향을 작은 이어폰에 의지하여 그 의미를 파악하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통역하느라, 전쟁의 그 생생한 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시청자들을 졸리게(?) 했다.

 

통역사들의 애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청자들은 숨가쁘게 넘어가는 미국 기자들의 보도 내용을 같은 감흥으로 전달받기를 원했기 때문에 만족하지 못했던 것이다. 걸프전 같은 역사적 대사건이 자주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고 또 일어나서도 안 되겠지만, 우리 TV 방송국들도 이제 녹화 중계'가 아닌 진짜위성 중계의 통역에 대비해야 하겠다. 이왕 CNN 같은 미국의 대방송사 신세를 앞으로도 져야 한다면 이 방송을 완벽하게 통역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이번 보도 전쟁에서 볼 수 있었듯이 기자 '정신'이나도 있으며 외국어에도 소질이 있는 인력을 양성할 때, 앞으로 일어날 방송국 사이 보도 전쟁이나 통역 전쟁은 수준 높은 현대전이 되어 그 승부를 가리기 힘들어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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