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 곽중철의 인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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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07-08 20:47 조회69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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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터뷰] 대한민국 제1호 통역사 곽중철의 인생 이야기 < 데스크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LG헬로비전 (lghellovision.net)
곽중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명예교수
[윤터뷰] 대한민국 제1호 통역사 곽중철의 인생 이야기
대한민국 통역계의 살아 있는 전설, 제1호 통역사. 곽중철 전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장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영어가 좋아서, 영어를 잘해서 한 평생 통역의 길을 걸었다는 그는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통역 일을 하며 후학 양성에 열정을 쏟고 있다. 기자 초년병 시절 그를 부장으로 모셨던 필자가 25년 만에 그를 종로 사무실에서 만났다.
윤경민: '대한민국 제 1호 통역사'라는 명칭은 공식 타이틀인가요?
곽중철: 그건 한겨레신문에서 붙여준 겁니다. 제가 한국외대 통역대학원 1기거든요. 1기가 한 50명 졸업했는데, 그중에 저를 포함해서 통역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이 사실 다 1호 통역사라고 봐야죠.
윤경민: 한국외대 통역대학원이 언제 생긴 겁니까?
곽중철: 1979년 9월에 개원했어요. 영어과가 20명, 불어과가 10명, 독일어과가 5명, 아랍어과 등 도 총 50명 정도 동기생들이 입학했죠.
윤경민: 중도 포기자는 없었나요?
곽중철: 거의 다 졸업했죠.
윤경민: 그분들이 다 통역의 길로 가셨나요?
곽중철: 아니요. 교수가 된 사람도 있고 각자 자기 살길 찾아갔죠. 전문 통역사가 된 사람은 몇 명 안 돼요. 그러니까 1호 통역사에 해당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봐야죠. 그때는 통역대학원이 한국외대가 유일했지만 지금은 여러 군데 생겼잖아요. 그래서 통역사가 과잉공급되는 게 문젭니다. 과잉공급되다 보니까 엉터리 통역사도 생기고 자기들끼리 그냥 통역비 덤핑치고 난리도 아닙니다. 그래서 정작 실력 있는 통역사들이 피해를 보고 있어요.
윤경민: 영어 통역뿐 아니라 불어 통역도 하시잖아요. 한국외대 통역대학원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가셨죠?
곽중철: 최완복 총장 (당시 5대 학장)이라고 아주 혜안이 있는 분이 계셨어요. 그분이 이미 그때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개최하게 될 것을 예견하고 그에 대비해서 영어와 불어를 동시에 할 수 있는 통역사를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셨죠. 올림픽 행사에서는 영어와 불어가 공식 언어였으니까. 근데 제가 졸업시험에 1등을 해버렸거든요. 그러니까 날 더러 파리로 가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여학생 3명과 함께 파리로 가게 된 거예요.
윤경민: 파리 어느 대학으로 유학을 간 겁니까?
곽중철: 파리3대학에 통역대학원이라고 에지트, ESIT가 있어요. 거기서 머리에 쥐 나게 공부했죠.
윤경민: 그리고 파리에서 귀국하셔서 실제 올림픽조직위원회로 직행한 겁니까?
곽중철: 네, 1983년에 귀국해서 올림픽 조직위원회에 들어갔어요. 그때 조직위원장이 노태우 씨야. 그래서 그때부터 노태우 씨와 죽 한 10년 동안 함께 했죠.
윤경민: 아, 그래서 노태우 조직위원장이 대통령이 되니까 바로 청와대 비서관으로 가신 거군요?
곽중철: 네. 올림픽을 끝내고 공보비서관 겸 통역관을 했고 마지막 1년은 춘추관장을 했지요.
윤경민: 노태우 대통령 통역을 전담하셨군요?
곽중철: 숫자로 말하면 노태우 씨가 14번 해외 순방을 했는데 내가 12번 따라갔어요. 대통령 특별기 타고.
윤경민: 가장 기억에 남는 통역은?
곽중철: 1992년도인가 UN총회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했는데, 나는 총회장 위 부스에 올라가서 영어로 통역하고 있었죠. 대통령은 한국말로 연설하고. 근데 연설 맨 마지막에 뭘 자꾸 찾으면서 뜸을 들이면서 결론을 안 맺는 거야.
윤경민: 원고가 없어졌었나 보죠?
곽중철: 원고가 앞 장에 딱 달라붙었는데 이 분이 육사 시절 럭비 하다가 손가락을 다쳐가지고 서류 넘기는 걸 잘 못했어요. 그걸, 다음 원고를 못 찾으니까 그냥 대충 알고 있던 내용으로 결론을 맺은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야, 노태우가 물태우인 줄 알았는데 워낙 꼼꼼해 가지고 연설을 다 외웠구나 이런 거야. 내가 그래서 그건 아니다. 그때 원고가 없어져 가지고 대통령이 대충 마무리했지만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연설문 원고 보고 압축적으로 통역해서 마무리한 거다. 이렇게 된 거죠. 그때 노태우 대통령이 연설 끝나고 단상에서 내려오면서 이병기 비서관(나중에 주일대사, 대통령비서실장, 국정원장 등 역임) 한테 어떻게 됐나, 통역 잘 됐나 이렇게 물어보더랍니다.
호주 총리 주최 만찬 (곽중철 교수 제공)
윤경민: 재미있는 해프닝이었군요. (웃음) 혹시 그런데 같은 경상도 분이라서 대통령의 말을 못 알아듣거나 이런 건 없었나요?
곽중철: 좋은 질문이네요. 정상 간에 대화하다가 농담도 나오는데, 한 번은 대통령이 오래 잘 살려면 담배도 끊어야 되고 술도 끊어야 되고 뭐 다 끊어야 된다 이런 말이 있다고 하니까, 상대방이 재치 있게 "what are you living for?" 하고 받아치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제가 웃으면서 경상도 사투리로 "와 사노?"라고 통역했죠. 그랬더니 대통령도 "하하" 하며 웃더라고.
윤경민: 혹시 오역을 하거나 그런 사례는 없었어요?
곽중철: 오역은 딱 하나 있는데, 심각한 오역이 있었던 게 뭔가 하면 1985년인가, 서울올림픽 TV 방영권이 결정이 됐어요. 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미국 NBC 방송에 방영권을 주면서 받는 돈이 3억 달러로 타결됐어요. 3억을 영어로 해보세요. 그게 헷갈린다고.
윤경민: 저도 숫자는 헷갈려서 영어로 말할 때 매번 헤매요.
곽중철: 3억 하면 쓰리 헌드레드 밀리언이에요. 근데 김포공항 귀빈실에서 노태우(대통령), 사마란치(IOC위원장) 이영호 체육부장관이 앉아 있고 제가 통역했는데 사마란치가 방영권이 쓰리 헌드레드 밀리언 달러로 최종 결정됐다고 하길래 내가 순간 헷갈려서 3천만 달러로 통역을 한 거예요. 그게 아주 헷갈리거든.
3천만 달러하고 3억 달러는 10배 차이인데. 그랬더니 체육부장관이 그 자리에서 정정을 해주더라고.
나중에 사람들이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더니 하며 막 놀리더라고. (웃음) 그래서 숫자를 통역하기가 제일 힘든 거예요.
헝가리 총리 청와대 공식 만찬 통역 (곽중철 교수 제공)
윤경민: 대통령은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인데 그분을 계속 수행하면서 상대국 정상이나 주요 인사들과의 회담을 통역할 때는 굉장히 긴장이 될 것 같아요. 땀도 나고.
곽중철: 땀은 안 나는데, 긴장은 되죠. 통역사들은 다 긴장합니다. 몸이 경직돼 있어요. 얼굴도 이렇게 찡그리고. 왜냐하면 집중해야 하니까. 나도 그런 게 많아요. 항상 웃는 얼굴이 없어요. 통역 경험이 아무리 30년, 40년 해도 할 수 없는 거야. 집중해야 하니까. 그게 제일 힘들죠.
청와대 공식 환영식 통역 (곽중철 교수 제공)
윤경민: 통역사가 대통령을 수행하면서 순차 통역을 하는 거죠?
곽중철: 맞아요. 그런데 요새 큰 변화가 있는 게 뭔가 하면 통역사가 옆에 앉지 않고 회담장과 별도로 설치된 부스에 들어가서 마이크로 통역하고 그 통역이 대통령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 들어가서 동시통역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요. 통역사가 현장에 보이지 않게 되는 거죠.
윤경민: 그런데 수행통역을 할 때 만약 우리 정상이나 상대 정상의 소리가 잘 안 들릴 수가 있잖아요. 약간 뒤에 있잖아요.
곽중철: 뒤에 있으면 잘 안 들려요. 그러니까 뭐 인상을 찌푸리며 잘 들으려고 집중하는 거지. 그런데 사실 정상들의 통역이 어렵진 않아요. 왜냐하면, 디테일이 없잖아요. 대충 큰 틀만 얘기하거든. 그러니까 그건 다 사전에 공부해서 아는 내용인 거죠. 그러니까 혹시 뭐 하나 안 들려도 큰 오역을 하지는 않아요.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 주최 만찬 통역 (곽중철 교수 제공)
윤경민: 공동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정해져 있지 않은 질문을 할 경우가 있잖아요. 저도 그런 질문을 해 봤지만 파악이 안 된 내용을 기자가 질문하고 대통령이나 상대 정상이 답변하는 경우도 있을 텐데 그럴 때 흠칫 놀라거나 긴장한 경험은 없습니까?
곽중철: 뭐 그런 경우가 있겠죠. 있는데, 그 정도는 커버해야 대통령 통역관이지. (웃음)
윤경민: TV 생중계 통역은 어떻습니까? 대통령 수행 통역과 비교하면?
곽중철: TV 통역은 제일 어려운 통역이에요.
윤경민: 아, 왜 그래요?
곽중철: 일단 3D예요. 3D. difficult, dangerous, dirty. 힘들고 잘못하면 개망신당합니다. 더티하다는 건 왜냐하면, 이게 말이야. 막 통역실도 잘 안 갖춰놓고 무조건 들어가 하라 그러고 시끄럽고 어떨 때는 위성 화면이 잘 안 들어오고 지지직 소리 나고 그게 더티하거든요. 그리고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평가자들이 많아요. 뭐 하나 실수하면 엉터리라고 지적질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방송이 전국 방방곡곡에 다 나가잖아.
윤경민: 네, 저도 도쿄에서 열린 한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을 TV에서 생중계할 때 일본 총리의 발언을 스튜디오에 앉아서 동시통역한 일이 있었는데 어렵더라구요. 내가 통역하는 말소리에 헤드폰으로 들어오는 일본 총리 목소리가 묻혀서 안 들려서 애먹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그래서 통역사들이 소곤소곤 통역하는구나' 하고 깨달았죠. 그런 요령을 알았더라면 완벽한 통역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웃음)
곽중철: 그래서 경험이 중요한 거죠. 영어 실력은 좋지만 TV에 나온 걸 생중계로 동시통역을 한다는 건 해보지 않으면 잘할 수 없죠.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통역 (곽중철 교수 제공)
윤경민: 가장 기억에 남는 TV 통역은 뭐였어요?
곽중철: 음...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 장례식 통역이 생각나네요. 그때 무슨 배짱인지 이대섭 보도국장(당시 YTN 보도국장)이 너 혼자 들어가라고 하더라고. 그때 기자가 모자랐는지, 하여튼 뭐 옆에서 해설을 같이 도와줄 사람도 없었고 나는 통역으로 들어갔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남잖아. 어떨 때는 그냥 소리 없이 그냥 쫙 차량 행렬만 보여주고 그러잖아. 그래서 화면을 보면서 애드리브를 쳤지. 차량 행렬이 런던시내를 통과하는데 런던에서 제일 교통량이 많은 거리다. 이 장례행렬이 앞으로 어디 어디를 지나갈 예정이다. 이걸 사전에 공부했기에 활용해서 막 떠들었지. "런던에서 가장 교통량이 많은 하이드파크 코너를 돌고 있습니다" 뭐 이런 식으로 하니까 이대섭 국장이 좋아하더라고.
그렇게 3시간을 쉬지 않고 CNN 생중계를 통역했는데 그러고 나서 한 10분을 남겨놓고 동안 끊어버렸네. 정규 방송 때문에, 그러니까 시청자들, 특히 주부들 항의전화가 많이 와서 그걸 왜 끊느냐고 했다고 하더라구요.
윤경민: 그때 3시간 동안 화장실도 못 가시고 애드리브 치시랴, 통역하시랴 고생 많으셨겠군요. 뉴스 동시통역이 특별히 다른 통역보다 어려운 이유가 뭘까요?
곽중철: 첫째는 정해진 연설문이 없다. 무슨 말을 할지 모른다. 그다음에 언제 화면 수신 상태가 안 좋아져서 안 들릴지 모른다는 점이죠. 그리고 이게 잘못하면 완전히 망신당하니까 걱정들을 많이 하죠.
윤경민: 그래도 방송이니까 발음은 표준어를 구사하니까 알아듣기 쉽잖아요?
곽중철: CNN도 여러 악센트를 쓰는 사람들이 나와요. CNN 런던 특파원하고 서울특파원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특파원에 앵커도 다 악센트가 달라요. 그래서 통역하려면 엄청나게 공부를 하는 거예요. 한 달 전쯤 통역이 정해지면 해당 분야를 죽도록 공부하는 거야 그냥. 신문 다 보는 거지. 그리고 통역해야 할 사람이 등장하는 비디오 영상을 다 찾아보는 거예요. 트럼프다 그러면 트럼프가 나온 영상을 유튜브에서 다 찾아보는 거야. 그 사람의 말버릇, 발음에 익숙해져야 하니까.
대선 토론회다 그러면 트럼프 상대방은 누구고 사회 보는 앵커는 어디 출신이고 그 사람은 평소 말버릇이 뭔지, 발음 특징은 어떤지 다 찾아보고 공부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그 공부하는 기간이 힘들고 아주 불쾌해요.
윤경민: 그래도 일단 통역이 끝나면 후련하고 또 보람도 있겠죠?
곽중철: 아 그렇지, 그렇지. 통역료가 보통 하루 6시간 기준으로 100만 원이거든요. 그런데 방송에 나갈 경우엔 10분을 하더라도 200만 원이에요. 200만 원이 그게 많이 받는 게 아닌 게 자꾸 사람들이 되돌려보기로 보잖아. 그러니까 지적재산권이 침해되는 거예요. 근데 아직까지는 200만 원까지 받고 있어요.
2017년 나토 사무총장 방한 수행 통역 (곽중철 교수 제공)
2017년 나토 사무총장 방한 수행 통역 (곽중철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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