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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 대한 글들(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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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4-06-16 00:00 조회4,1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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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번역이 가져 온 부끄러운 역사 | 칼럼(문화/역사) 2004/05/29 09:34

http://blog.naver.com/im21abc/140002850954

오역을 지적하는 ‘잔인한 서평’

잘못된 번역이 가져 온 부끄러운 역사




(0) 정치 칼럼과 뉴스를 지향하는 정치포탈로서 서프라이즈와 독자들에게는 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글을 하나 올릴까 한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반드시 그렇지 만도 않다. 좀 인내하면서 읽어주시면, 왜 이런 글을 썼을까 하는 숨은 의도를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어쩌면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언론 집단, 보수 기득권 세력의 왜곡된 논리가 어떻게 이 나라를 지배할 수 있는 정치 문화적 풍토를 만들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실예일 수 있을 것이다.




꼭 있어야 할 것이 빠져있는 듯한 우리의 상황에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고전 읽기’에 대한 관심이 우후죽순 격으로 자라나는 것은 이 땅의 척박한 인문학적 풍토에서 보면 바람직한 일일 수 있다. 그것이 서양의 신화, 문학, 철학에 관련된 것이라도 좋고, 동양의 고전에 관련된 것이라도 좋다.




더구나 “인문학의 죽음”이 몰고 올 사태가 예견되는, 그래서 오랜 가뭄에 모낼 땅마저 농부의 손바닥처럼 갈라지기 시작한 저반(底盤)에, 비록 멀리지만 잔뜩 수증기를 머금은 먹구름이 몰려오는 징조가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큰 서점이나, 도회지 이곳저곳에 자리 잡고 있는 서양식 쇼핑몰이라도 가보라. 책을 파는 곳이면 아이들이 몰려 앉아 헬라스-로마 신화에 관련된 만화책을 펴놓고 읽는 풍경을 쉽게 발견하곤 한다. 장차 나라의 동량(棟梁)이 될 우리의 아이들이 저렇게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다니, 그것도 소화하기엔 적지 않은 무게를 가진 내용을 담고 있는 서양 고전, 신화에 관련된 책들이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그 중에서도 〈헬라스-로마 신화〉에 관련된 책들이 하루가 다르게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어떤 책을 선정해서 읽어야 서양 사상의 토대가 되는 헬라스-로마 신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이 들기도 한다.




아무리 양보해서 들어준다고 해도 이윤기가 서양 신화의 전문가가 되고, 이문열이 호메로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얘기한다는 것은 잘못되었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딱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바르게 지적될 사항이겠지만, 이 잘못된 현상의 상당부분은 어쩌면 고전을 공부하는 이 땅의 학자들 자신이 짊어질 몫인지도 모른다. 이 잘못된 현상을 어떤 식으로 따져 보고, 이를 통하여 그 점을 올바르게 지적하는 일은 고전학자들의 책임이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그렇게 많이 책방에 쌓여 있는 그쪽 방면의 책들이 서양인에 의하여 쓰였고, 이 땅에서 출판된 것은 한낱 번역서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 땅에는 서양 고전에 관한 전문가가 그렇게도 없다는 말인가? 이것은 혹시 정치적 식민지를 넘어 문화적 식민지까지 보여주는 자랑스럽지 못한 현상은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여기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에서 번역되어 출간된 헬라스-로마 신화에 관련된 고전문학, 신화, 미술, 건축 등에 관련된 번역서들을 꼼꼼히 검토하여 어떤 점에서 잘못된 번역인지를 지적하고 나선 고전학자가 있다. 그가 바로 「서울대 고전학 합동 과정」의 강대진 박사이다. 호메로스의 전공자인 그는 서평자로서의 뛰어난 안목과 언어학적 능력을 가진 젊은 학자이다.




그의 뛰어난 서평자로서의 참모습은 「서울대 고전학 합동 과정」의 서평란(http://plaza.snu.ac.kr/~hermes/)에 들어가 보면 알게 된다. 헬라스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이름에 대한 표기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깊은 내용에 이르기까지 조목조목 어떤 점에서 잘못된 번역을 하고 있는지를 지적하고 있다.




거기에는 한국에서 번역 출판된 20여 저작에 이르는 서양 고전과 신화에 대한 번역서들을 일일이 짚어가면서 오역된 번역서를 해부하고, 때로는 원 저자의 무지를 지적하면서 친절하고도 자세하게 해설해 주고 있다. 그의 친절한 번역서의 수정만을 읽어도 서양 신화, 예술, 조각에 관련된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획득할 수 있는 친절함을 베풀고 있다.




강 박사의 번역서에 대한 <잔인한 서평>은 번역자로 하여금 수치심을 유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늘 번역자의 노고에 대하여 감사하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번역자가 상처를 입지 않도록 번역을 극구 칭찬하고 나서 정중히 오역을 지적하는 일은 힘들다.




대개의 번역가들은 자신의 오역을 지적당하는 것을 감사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서평자로서의 미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번역가라면 늘 상처받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강 박사의 깐깐한 지적들이 역자들의 마음을 얼마나 괴롭히고 있을지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기도 한다.




불란서에서의 잔인한 서평의 예; 번역과 죽음




(1) 오역을 지적하는 강박사와 같은 뛰어난 서평자의 안목과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별 흥미를 끌지 못하겠지만, 어쩌면 나 같은 사람에게나 어울릴 성싶은 흥미진진한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최근에 얼른 눈에 잡히는 하나의 책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것은 정말 우연이다.




내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려면 도서관 일층에서 엘리베이터를 잡아타야만 하는데, 그다지 많은 사람이 이용하지 않는 엘리베이터인지라, 아주 잠깐만 기다리면 된다. ‘잠깐’이라는 시간이 때때로 재미난 경험을 가져다주기도 하는데, 그 연유는 잠시 멈춰서 기다려야 하는 그 장소에 도서관에 들어오는 신간 서적들이 늘 꽂혀 있기 때문에 그렇다.




오늘도 막연히 책 제목을 죽 훑어보다가, 재빠른 손놀림으로 몇 권의 책을 순식간에 뽑아 훔쳐 넣듯 내가 있는 공간 속으로 가지고 올라가, 늘상 해대는 버릇처럼 책상 위에 신간 서적을 늘어놓고, 목차와 내용을 빠른 속도로 읽어가면서 책의 요지를 파악하곤 하는데, 바로 오늘 재수 없이 걸린 볼멘소리를 집어삼키는 책들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책이었다. 주인을 제대로 못 만난 셈인데, 그건 그 책을 자세히 읽을 심산을 가지고 있지 않은 독자를 만났으니 말이다.




 (2) 이 책(『번역과 오역을 지적하는 자』(쓰지 유미 지음/ 이희재 옮김, 「번역사 산책」, 궁리)을 통해서 내가 간단히 소개하려는 내용은 ‘번역 역사’와 관계된 몇 가지 흥미로운 주제들이다. 이 책은 프랑스어 번역가인 일본 저자의 책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프랑스에서의 번역의 역사를 고대로부터, 중세 유럽 10세기경의 아랍어를 라틴어로, 또 번역의 시대라 할 수 있는 12세기와 르네상스를 거쳐 20세가 초반에 이르기까지의 번역 작업에 얽힌 프랑스 내의 여러 사건들을 통하여, 어떤 사람이 활동하였고, 번역 상에 어떤 논쟁이 있었고 하는 등등의 문제들을 반드시 학문적이고 이론적인 범주에 한정하지 않고 개략적으로 보고함으로써 프랑스 번역의 역사를 설명해주고 있는 저작이다.




거기에는 호메로스와 로마 시대의 저작들을 불어로 번역하는 과정과 번역과 관계된 역사적으로 논쟁이 되었던 문제들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계기들이 - 비록 전문적인 문제들에 관해서는 아니더라도 - 여러 측면에서 주어지고 있다. 우리에게도 이런 문제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의 번역사를 정립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될 수 있을 듯도 하다.




 (3) 하나의 예는 이런 것이다. 에타엔 돌레(1509-1546)라는 사람은 고전학자이면서, 라틴어 연구로 꽤 명성을 얻었다고 얘기되는 번역 학자인데, 그는 「번역론」으로 다섯 가지 원칙을 내세웠다고 한다.




1. 번역자는 자기가 옮기는 책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2. 원어와 번역어에 대한 지식이 모두 깊어야 한다.




3. 단어 하나 하나를 그대로 옮겨놓는 식의 번역은 하지 마라. 언어에는 특유의 구조가 있다. 원문과 역문의 단어와 단어, 행과 행, 시구와 시구를 대응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라.




4.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라틴어에서 들어온 별로 쓰이지 않는 단어는 피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일상어를 써라.




5. 웅변술을 본받아 머리만이 아니라 귀도 만족시킬 수 있는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문체를 구사하려고 애써라.




당시에는 라틴어 구문을 그대로 프랑스어로 베껴놓은 듯한 축자적 형태의 번역문이 유행했기 때문에 ‘원문을 베끼려고 하지 마라’는 말은 획기적인 주장으로 받아들여졌던 모양이다. 이 주장이 나중에 ‘원문의 언어와 역문의 언어 지식’ 중 어느 것이 우선해야 하는가 하는 논쟁의 초점으로 등장하게 된다.




결국 이 논쟁은 번역가의 능력이 무엇이어야만 하는가 라는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 즉 언어의 능력인가 아니면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인가? 오늘날도 이 문제는 얼마든지 논쟁거리가 될 수 있는 사안이겠다.




이 사람은 플라톤의 위작으로 알려진 『앗시오코스』와 『히파르코스』를 번역하고, 또 번역을 잘못했다는 죄명으로 나중에 교수형을 당하고 화형에 처해졌다고 하는데, 산채로 불에 태워지는 것보다 약한 처벌이라고 한다.




화형에 처해진 이유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소크라테스가 설득하는 『악시오코스』의 한 대목에서 ‘무로 돌아간다(rien du tout)’라는 세 마디의 번역어 때문이라는 것이다. 파리 대학 신학부의 결의서에는 이 세 마디의 말은 ‘그리스어 판에도 라틴어 판에도 없으며 플라톤의 의도에 반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이단으로 단죄되었다는 것이다.




 (4) 『일리아스』 번역에 관련해서도 여러 일화가 보고되고 있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해 드리면 다음과 같다.




안 다시에라는 여자 번역자는 『일리아스』를 산문으로 번역했는데, 그 이유는 운문으로 옮기려면 아무래도 가감 첨삭이 불가피하여 원문의 참뜻과 아름다움은 산문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는 그녀의 신념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이러한 생각은 당연히 운문은 운문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사람들에게 도전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당대의 라 모트라는 사람은 운문으로 번역하였는데, 그는 헬라스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번역도 근본적으로 ‘시대적 가치관의 반영’이라는 하나의 예인 셈이다. 라 모트는 『일리아스』가 거대한 줄거리로 이루어진 것은 틀림없지만, 지루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삽화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쓸데없는 부분을 빼버리면 남는 것은 원문의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안 다시에는 호메로스를 옹호하여 이에 반대하는 긴 글을 남겼다고 하는데, 이것은 고대와 새로운 현실과의 가치 논쟁인 셈이고, 호메로스를 어떻게 읽고, 어떻게 볼 것인가에 관련된 재미난 논쟁인 셈이다. 다시 말하여 역사란 진보하는 것인가에 관련된 문제이다. 옛 것이냐 오늘의 것이냐? 이 두 사람간의 논쟁을 통하여 우리가 호메로스 문학을 두고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일반적 분위기를 읽어내면서 흥미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5) 한 가지 더 소개하고픈 이야기는 번역과 오역에 관련된, 즉 번역자와 오역을 지적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의 양태에 관련된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외국 문학, 역사, 철학을 비롯한 번역을 하는 사람들에게 따라 붙는, 그러나 결코 떼 놓을 수 없는 감정적 사안이기도 하다. 그 책에 있는 글을 그대로 옮기기로 하겠다.




“번역가에게 오역을 지적당하는 것은 얼마나 견디기 힘든 일인가. 라르보는 하나의 일화를 유머를 섞어가며 들려준다. 어떤 번역가는 자신이 번역한 원고를 읽어 주었다. 정확하고 훌륭한 번역이라고 본인도 자신만만한 얼굴이었지만 딱 하나의 오역이 있었다. 사소한 부주의로 인한 오역, 그것을 말해야 할까 말까. 인쇄에 들어가기 전이니까 아직 시간은 있는데... ... 결국 상대가 상처를 입지 않도록 번역을 극구 칭찬하고 나서 정중히 오역을 지적했다.”




그 번역가는 자신의 오역을 지적당한 것을 감사히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얼마가 지나 오역을 지적당한 번역가로부터 자신이 번역한 책에서 번역의 오류를 지적하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는데, 거기에는 ‘파렴치한 말도 안 되는 오역!’이라고 쓰여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라르보는 그 번역가에게 감사하다는 편지와 원 저자에게 그 대목이 어떤 뜻인지를 묻는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그 원저자로부터 오히려 그 번역가가 틀렸다는 편지를 보내 왔지만, 이번에는 그 번역가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이 이어진다.




“자기 일에 애정을 가진 진지한 번역가일수록 상처받기 쉬운 법이라고 라르보는 말한다. ‘오역을 지적당한 번역가의 낭패, 원한, 이번에는 지적한 상대의 오류를 잡아내서 앙갚음하고 싶다는 유혹, 그런 감정은 자기가 하는 일에 무관심한 저급한 노동자, 날림으로 번역을 하는 사람은 좀처럼 느끼기 어렵다.’(182-183쪽)”




번역에 대한 깐깐한 지적들이 번역자들의 마음을 얼마나 심히 괴롭히고 있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메워져온다. 난 차라리 그들도 누구와 같이 아무리 상처를 줘도 상처받지 않는, 영혼을 도둑맞은 가슴에 ‘털 난 사람’이기만을 바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와 같이 ‘자기네 하는 일에 무관심한 저급한 노동자, 날림으로 번역하는’ 사람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혹시 어려운 고전을 붙들고 씨름하다가, 아니면 고전을 번역하다가 머리가 아프고 좀 막혀 있다싶을 때 재미 삼아 이 책을 읽어 봐주시기를..... 한 두 시간, 속독하는 사람은 반시간 가량이면 어렵지 않게 죽 훑어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다.




『번역의 빈곤이 낳은 비극적 해프닝; “악법도 법이다”』 (김주일)




 (6) 소크라테스라고 하면 떠올리는 말이 ‘악법도 법이다’(dura lex, sed lex)란 말이다. 이 말은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말인가는 서구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었든 모양이다. 부유크릭(Bujuklic, Z.)에 따르면 이 말은 서기 2세기 경 활약했던 로마의 법률가 도미누스 울피아누스(Dominus Ulpianus)의 말이라고 한다. 이 말이 울피아누스의 저술집에 나오는 “quod quidem perquam durum est, sed ita lex scripta est”에서 발췌된 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연유에서 소크라테스가 하지도 않은 이 말이 정설처럼 굳어져 중고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려 있었을까? 박정희 정권 유신시대에는 반민주주적 헌법 자체를 긍정하고 수용하는 법의 정신 옹호자로 소크라테스가 둔갑되는 아이러니도 있었다. 언제 누구로부터 이런 헛소문이 국내에 유포되기 시작한 것일까?




1929년 10월 5일자 동아일보에는 탈옥을 권하는 크리톤에게 소크라테스가 ‘나의 양심이 육체보다 귀하다’란 이유로 탈옥을 거부하는 장면을 전하고 있다. 해석의 여지는 있으나, ‘악법도 법이다’란 말로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또한 1930년 3월 6일자 《매일신보》에는 어린이 코너에 「희랍의 성인 쏘크라데스」라는 제목의 기사로 소크라테스를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크리톤』의 한 장면을 소개하면서 소크라테스가 크리톤의 권유대로 탈옥을 하지 않으면서 내 세우는 이유가 ‘악법도 법이다’란 통념과는 다르다. 그는 ‘내게는 다만 정의가 있을 뿐 죽음을 두려워하랴. 인생의 참된 집이 영혼에 있음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했다고 한다. 이를 보아서 이 당시에는 ‘악법도 법이다’란 통념이 적어도 아주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추측할 수 있다.




현재 확인된 바로는 국내나 일본에서 ‘악법도 법이다’란 말과 소크라테스를 연관 지은 가장 오래전 학자는 오다카 도모오(尾高朝雄)이다. 『실정법질서론』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이 학자는 일본의 법철학자로서 1930년 경성제국대학 교수로 승진하여 해방 전까지 재직하다, 해방 후에는 일본 동경대학교 법학부 교수로 재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다카는 1937년 출판한 『(개정)法哲學』에서 실정법주의와 소크라테스를 연결하고 있다. 먼저 유택성에 따르면 오다카는 이 책에서 “惡法도 法이기 때문에 一應 지켜야 하며 惡法이라는 것을 國民에게 널리 弘報하여 正當한 立法節次에 따라서 그 惡法을 改正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290~291 쪽에서는 바로 ‘악법도 법이다’란 경구를 “악법도 법으로서 냉엄한 적용을 받아 질서유지를 위한 강제효과의 필연성이 무엇보다도 중요시되는 것으로 된다. 실정법의 정당성을 절대의 전제로 한다면 정의는 확고부동의 ‘질서 그 자체’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 속에서 소개하고 있다.




또한 같은 책에서 오다카는 “이와 동시에 그는 국가의 실정법에 복종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따라야 할 시민의 의무로서 설하고 선량한 시민이 나쁜 법에 복종하는 것은 나쁜 시민이 좋은 법을 배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道를 위해 탈주를 권하는 친구나 제자의 간원을 물리치고 무실무당하게 그에게 가해진 사형의 판결을 중하게 여겨서 아테네의 감옥에서 순순히 독배를 받았다.




즉 소크라테스는 실정하는 법을 초월한 정의의 객관성에 대한 신념과 실정한 법에 내재한 질서의 확실성의 존중을 그 비극적인 궁행실천 안에서 종합해서 보여준 것이다.”라고 해서 실정법주의와 소크라테스를 확실하게 연결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바로 이 오다카 도모오가 ‘악법도 법이다’란 경구도 최초로 국내에 소개하고, 이 경구를 소크라테스와 관련짓기도 처음 한 사람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는 경성제대의 법학부 교수로서 한국인 제자들을 많이 양성했다.




해방 이후 한국 법학계의 중심인물인 황산덕과 이항녕은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학자로 알려졌다. 특히 황산덕은 오다카의 책 몇 권을 편집하여 자신의 「법철학」을 만들었다고 한상범은 밝히고 있다. 게다가 이 오다카 도모오는 한국 내에서 일본의 한국 지배를 정당화하고 징병에 찬성하는 논문을 발표한 “반민주적·식민주의적 파쇼사상”을 가진 인물이라고 한상범은 밝히고 있다.




오다카 도모오에 의해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란 맥락에서 소개가 되었다고 해도 오다카가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했다”라고 한 것은 아니다. 이런 생각은 법학계를 중심으로 퍼져 있기는 했을 테지만, 해방 이후에도 일반인의 상식이 된 것은 아닌 듯하다.




예를 들어 1957년에 《새싹회》에서 낸 위인전에도 소크라테스에게 탈옥을 권하는 크리톤에게 답하면서 “나라의 법이 지금 나더러 죽으라고 했네. 나는 국법에 반대할 수 없네. 거기 설령 옳지 못한 것이 있다하여도 그것에 반대하려고 옳지 못한 일을 하고 싶지 않네.”라고 말한다고 되어 있다. 이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했단 뜻으로 새길 수는 있을지언정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했다 고 하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지 않은 증거다.




그런데 1973년 9월 25일자 조선일보에는 최명관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인사가 그런 말을 했고, 대학생들도 종종 그런 답을 적는다고 하면서 ‘악법도 법이다’란 말은 소크라테스가 한 적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뒤집어 보면 이미 그때는 그런 상식이 공공연하게 유포되어 있었다는 소리인데, 그럼 그 시점과 출처는 어디일까?




1950년 이해남 저서의 『세계 문화사』 중등과정 교과서에는 “비록 그 법이 불의하다고 할지라도 국법을 거역할 수 없다하여, 조용히 독약 그릇을 받아 마시고 진리의 순교자가 되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또 1955년 「새로운 도의>라는 김준섭, 박한영, 최병칠 공저로 되어 있는 중학교용 교과서에는 “나는 아덴 사람이다. 아덴의 국법을 지켜야 한다”라는 말이 나온다.




이어서 1960년에 대한교과서주식회사에서 나온 『고등 도덕(II)』에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라는 단원 제목 아래 소크라테스는 “준법정신이 중함을 깊이 깨닫고”, 탈옥 권고를 듣지 않았다”고 적혀 있다. 그 다음 쪽에는 “이러한 숭고한 준법정신은 제대로 전하여, 유럽 사람들의 국민 도덕을 이루었다”고 되어 있다. 이쯤 되면 ‘악법도 법이다’란 의미로 소크라테스를 끌어들이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




이후 손명현이 저자로 되어 있는 1967년의 『문화의 창조』라는 교과서에서도 “쏘크라테스는 조국의 법령에 거역함은 아무리 그 법령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옳지 못하여 하여, 태연자약 독배를 마시었던 것이다.”하여 해석의 오해를 할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또 1979년 중학교 도덕 교과서에도 소크라테스와 크리톤 사이의 대화를 소개하면서 준법정신과 연관짓고 있다.




마지막으로 1989년에 나온 중학교 도덕 교과서에는 ‘소크라테스와 크리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는 연구문제에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이 주제에서 공부한 바에 비추어 토론해 보자”란 문제를 실어 ‘악법도 법이다’를 소크라테스와 연관시킬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그런데 ‘악법도 법이다’란 말이 소크라테스가 했다는 말의 의미를 해석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알겠는데, 정확히 ‘악법도 법이다’라고 소크라테스가 말했다고 하는 증거는 오다카를 비롯한 어느 책에도 이때까지는 명시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 적어도 교과서나 학자의 저술에서는 그렇다.




다만 신문에서는 1968년 3월 3일 자 중앙일보에 기고한 변호사 이명섭의 글에는 “「악법 또는 오판이라도 그것을 개정하기 전에는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부정이 된다」고 제자들에게 설교하면서 독배를 들었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1980년 2월 4일자 같은 신문에도 “누가 뭐래도 법은 법이다. 없다면 몰라도 기왕에 있는 법을 어길 수야 없지 않겠는가. 악법도 법이라던「소크라테스」의 교훈도 있다”라는 말이 나온다.




‘정의로운 사회’를 표방한 전두환 정권에서 “악법은 법”




그 이후로도 중앙일보뿐만 아니라 기타 일간지에도 숱하게 나타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말이 1980년대에 부쩍 많이 인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군국주의 시대와 군부 독재 시절에 똑같이 ‘악법도 법이다’가 강조되고 소크라테스가 오명을 뒤집어썼다는 것이 자못 의미심장하다. 하여간 그렇다면 어디에부터 이 말은 대중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일까?




1960년대 이후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했다고 학교에서 배웠는데, 교과서에 명시적으로 없으니 어떻게 된 일인가? 아마 이것은 오다카와 교과서에 적힌 내용이 그런 오해를 방조 내지는 조장했고, 이를 학교에서 수업하는 선생들이 적극적으로 ‘그렇다’고 연결 지어 설명했으며, 언론이 이를 확대·재생산했으리라고 보는 것이 적절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소크라테스가 하지도 않았던 말을 했다고 국민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몰상식의 상식화가 진행될 수 있는 풍토는 도대체 어떤 것일까? 나는 이것이 진정한 권위는 없으면서 권위를 찾고자 하는 빈곤한 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개화 이후 우리는 계속 권위가 몰락한 상황 속에서 살아 왔다. 학문 언어에서도 권위 있는 학문 언어는 우리말이 되지 못하고 한문에서 일어로, 다시 영어로 흘러왔을 뿐이다.




그러나 거꾸로 그만큼 권위에 대한 갈증은 더해서, 고전에 대한 탐구와 번역도 그런 의식 선상에서 진행된 측면이 강하다고 본다. 그런데 이것이 제대로 된 번역과 연구에 의해 진행되지 못하고, 일본과 독재와 정부에 의해 왜곡되어 진행되었고, 중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서양 고대 철학에 대한 소양과 1990 전까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연구 풍토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다’와 같은 해프닝이 오랜 세월 동안 교정 받지 않은 채 뿌리를 내린 듯하다.




그나마 70년대에 최명관의 외로운 목소리가 있었고, 90년대 와서 교정의 목소리가 높아져, 얼마 전 7차 교육과정에서 이 말을 뺄 것을 권유한 국가인권위의 목소리가 뒤늦은 위안이 될 뿐이다.




명덕(서프라이즈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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