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개방은 백 번 잘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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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5-15 12:33 조회5,984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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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개방은 백 번 잘한 일
한국외대 명예교수/전 대통령 경호실 정보처 번역요원
전 대통령 공보비서관 곽중철
1993년 2월말, 필자는 청와대 비서실(현 여민관 2)의 1층 왼쪽 끝 공보비서관 사무실에서 근무 중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의 6공화국이 끝난 후 갈 자리를 찾고 있었다. 아침에 출근해 자리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바깥이 시끄러워졌다. 아, 김영삼 대통령의 청와대 앞길 개방 방침에 따라 사무실과 10미터 떨어진 경복궁과 청와대 사이 도로를 따라 일반차량이 달리는 소리였다. 나는 일개 비서관이었지만 집 안방을 내어준 느낌이었다. 옆 사무실을 차지한 YS의 비서관들은 거리의 투사들이라 소음에 둔감했겠지만 몇 년이나 고요한 궁궐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는 소음이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공간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정적 속 근무에 익숙해지면 외부의 침입이 싫어 진다.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층은 청와대의 공간이 주는 안락감과 쾌적함 그리고 안전함에 길들여져 자연스레 외부와 차단되고 점점 더 고립되는 것이다.
공간은 권력의 향방에도 영향을 끼친다. 집권층의 건축물들은 권력자의 의지와 힘을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청와대도 매우 권력 중심적인 공간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대통령이 거주하고 있는 공간에도 드러난다.
청와대에 근무한다고 하면 “그 좋은 자연과 시설들을 마음껏 볼 수 있어 좋겠다”고 부러워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직원들도 경내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무실을 나서면 내 동선은 경호처의 감시를 받게 된다. 사무실을 나와 한가롭게 경내를 돌아다닐 자유가 없다. 얼른 용무를 마치고 다시 사무실로 복귀해야 한다.
필자가 육군의 초급장교로 처음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1977년은 더욱 그랬다. 육영수 여사 서거 후 2년이 지났지만 청와대는 긴장감이 팽배해 있었다. 분위기가 얼마나 경직됐던지 청와대 미화원마저 새벽 산책을 나온 박정희 대통령을 보고 당황해 반대편 벽을 보고 얼어붙은 듯 돌아서 있는 상황이 벌어져 차지철 경호실장이 전 직원에게 ‘각하 조우 시 행동요령`이라는 지휘서신을 내려 보냈다. 내가 속한 경호실 정보처의 직원들이 사격훈련을 받고 사무실로 돌아오다가 대오를 맞추지 않은 것이 마침 차를 타고 가던 경호실장의 눈에 띄어 모두 그의 집무실 옆 회의실로 불려가 욕이 섞인 훈시를 듣기도 했다.
1990년대 다시 6공화국 비서실에서 근무하게 됐을 때도 청와대는 한가하게 거닐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대통령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인식 하나만으로 내 몸은 구속돼 있었다. 예를 들어 필자도 대통령 관저에는 딱 한 번 들어가보았고 나보다 훨씬 오래 근무한 동기 경호관마저 “25년 근무에 관저에는 한 번도 못 들어가보았다”고 토로한다. 그는 또 대통령주변의 참모들도 집권시기가 지남에 따라 대통령에 접근하는 태도나 분위기가 점점 경색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원인도 본관과 비서실 건물사이의 물리적인 제약에 따른 일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TV에 자주 나오는 녹지원과 상춘재는 청와대 직원들에게도 그림의 떡이다. 그런 시설은 대통령 행사를 위한 것이지, 직원들이 들어가 즐기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청와대에서 근무하면 세상이 모두 청와대를 흠모하고 추앙한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어느 대통령이든 임기 말에도 “아직 세상은 내 것”이라는 환상 속에 빠져 있게 되지 않을까?
필자는 며칠 전 삼청동 굼융연수원 맞은 편의 춘추관 뒷길을 올라가다가 칠궁에서 경복궁 쪽으로 걸어 내려왔다. 산을 내려와 가장 먼저 나타나는 영빈관을 바라보며 추억에 빠졌다. 1988년부터 2003년까지 국빈만찬이 열리면 내가 블랙타이 양복을 입고 통역을 하던 곳이다. 수십 번 통역을 했던 곳이지만 낯설었다. 정신없이 통역을 하느라 건물 한 번 천천히 바라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영빈관이라는 건물이 주는 위압감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영빈관 앞 분수대를 지나 일반 차량 출입이 허용된 신무문 앞에서 본관을 바라보았다. 필자는 1991년 말 신 본관 준공식에 공보비서관으로 참석한 이후 본관에서 열린 각종 외빈 행사에서 통역을 했고, 특히 본관 앞 잔디밭에서 열린 외빈 환영행사에서는 대통령 임석 연단 밑에서 “야외 통역”도 몇 차례 한 것이 몇 장의 사진으로 남아있다. 지금도 TV에서 그 잔디밭을 보면 긴장해 통역하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신무문 앞을 통과해 끝에 자리잡은 춘추관에서 다시 추억에 잠겼다. 6공 말기 1993년 2월까지 나는 6공 마지막 춘추관장을 맡았다. 아침 일찍 팔판동에 주차하고 총리공관 골목을 지나 삼청공원을 산책하고 춘추관에 들어서면 깎듯이 경례를 하던 경찰관들과 1층 기자실에서 하루 취재를 준비하던 민완기자들도 생각났다. 계산해보니 24살부터 40살까지 16년 중 약 7년간 청와대를 출입했다. 출근할 때마다 설레었고, 퇴근할 때는 뿌듯했기에 지금도 그 시절이 그립다. 그런 공간이 우리 국민과 나라에 과연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어쨌든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준 것은 희대의 용단이다. 거기 있으면 대통령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립되고 독단과 독재에 빠지게 된다. 이제 더 많은 국민들이 개방된 청와대를 둘러보면서 새 대통령의 용단을 칭송하게 될 것이다. “이 좋은 공간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었을까?”하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일부 인사 및 언론이 “충분한 검토없이 성급하게 청와대를 개방했다”고 하지만 임기 첫 날부터 시행하지 않았다면 청와대는 또 집권층의 소유물로 돌아가 외진 공간에서 독단의 정치가 반복되었을 것이다. “청와대 개방”은 윤 대통령의 최고 결정으로 점점 더 인정을 받을 것이다. 청와대 개방은 백 번 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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