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내가 만드는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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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Q.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2-01-04 00:00 조회3,42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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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내가 만드는 월드컵/ 김상진·장차순씨 부부 (2002.01.03)
“월드컵 자원봉사에 부부가 같이 나섰어요.”
대림대학 자동차공학과 김상진(40) 교수 부부는 최근 수원과 경기도 역사 공부에 열심이다. 자원봉사자 교육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터넷과 관련 책자도 찾아 읽고 있다. 일본에서 4년간 살다온 경험을 살려 월드컵 자원 봉사를 신청했지만, 경남 진주에서 의왕으로 이사온 지 1년 5개월밖에 되지 않아 아직 수원이 낯설기 때문. 축구에 문외한인 부인 장차순(36)씨는 역사 공부에 더해 축구 공부까지 하고 있다. 장씨는 “TV 스포츠 중계는 남편 차지였는데, 이젠 신문 스포츠면까지 눈여겨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일본어 통역 자원봉사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0년 2월 경상대 수송기계공학부 BK21 교수로 초빙돼 6개월간 근무하면서, ‘진주성 길잡이’라는 진주성 관광안내와 ‘고성 국제 공룡 대전’에서 일본어 자원 봉사에 나섰었다. 하지만 부인 장씨는 이번이 처음. 부부는 “일본에서 생활해서 일본인들을 맞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말했지만, “일본과 공동 개최라서 일본인 관광객이 적어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적을 것 같다”며 우려도 했다. 하지만 김씨는 “브라질 경기와 같은 빅게임에는 일본인들도 많이 찾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씨가 처음 자원봉사에 나선 것은 94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제12회 아시안 게임.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 93년 히로시마 대학에 유학을 갔다가 맞은 대규모 대회였다. 마침 한국 레슬링팀이 히로시마에서 경기를 갖는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어’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김씨가 맡은 일은 한국대표단 통역과 불편사항 해소. 현지 지리에 어두운 대표단에게 음료수·간식을 사오는 상점을 가르켜주는 것에서부터 관광 안내까지 챙겼다. 김씨는 “당시 한국 레슬링 대표팀이 종합우승을 했는데, 마치 나 스스로 우승한 것처럼 기뻤다”고 말했다. 당시 부인은 남편을 따라 일본에 간 지 1년 밖에 안 된데다 일본어도 서툴러, 벤치에 앉아 응원하는 데 그쳐야 했다.
하지만 월드컵 자원봉사에는 부인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 이제는 일본어에 자신이 붙었기 때문. 부인 장씨는 올해 2월부터 중앙대 대학원 일본어 학과에서 만학의 길에 나섰다. 대림대학 비서행정학과에선 일주일에 6시간씩 시사일본어도 강의한다. 장씨는 “일본 생활 경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은 욕심이 났다”고 말했다.
부부 모두 강의를 맡고 있어 우선 대회기간 동안 주말과 경기가 있는 날만 봉사할 작정이다. 하지만 언제라도 손이 달리면 도움에 나설 태세다. 부부는 “이제 실전만이 남았다”며 “대회가 시작될 때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 보열군은 “어서 월드컵이 다가와 엄마 아빠랑 같이 같이 구경가고 싶다”고 거들었다.
( 방현철기자 banghc@chosun.com )
조선일보
“월드컵 자원봉사에 부부가 같이 나섰어요.”
대림대학 자동차공학과 김상진(40) 교수 부부는 최근 수원과 경기도 역사 공부에 열심이다. 자원봉사자 교육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터넷과 관련 책자도 찾아 읽고 있다. 일본에서 4년간 살다온 경험을 살려 월드컵 자원 봉사를 신청했지만, 경남 진주에서 의왕으로 이사온 지 1년 5개월밖에 되지 않아 아직 수원이 낯설기 때문. 축구에 문외한인 부인 장차순(36)씨는 역사 공부에 더해 축구 공부까지 하고 있다. 장씨는 “TV 스포츠 중계는 남편 차지였는데, 이젠 신문 스포츠면까지 눈여겨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일본어 통역 자원봉사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0년 2월 경상대 수송기계공학부 BK21 교수로 초빙돼 6개월간 근무하면서, ‘진주성 길잡이’라는 진주성 관광안내와 ‘고성 국제 공룡 대전’에서 일본어 자원 봉사에 나섰었다. 하지만 부인 장씨는 이번이 처음. 부부는 “일본에서 생활해서 일본인들을 맞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말했지만, “일본과 공동 개최라서 일본인 관광객이 적어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적을 것 같다”며 우려도 했다. 하지만 김씨는 “브라질 경기와 같은 빅게임에는 일본인들도 많이 찾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씨가 처음 자원봉사에 나선 것은 94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제12회 아시안 게임.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 93년 히로시마 대학에 유학을 갔다가 맞은 대규모 대회였다. 마침 한국 레슬링팀이 히로시마에서 경기를 갖는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어’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김씨가 맡은 일은 한국대표단 통역과 불편사항 해소. 현지 지리에 어두운 대표단에게 음료수·간식을 사오는 상점을 가르켜주는 것에서부터 관광 안내까지 챙겼다. 김씨는 “당시 한국 레슬링 대표팀이 종합우승을 했는데, 마치 나 스스로 우승한 것처럼 기뻤다”고 말했다. 당시 부인은 남편을 따라 일본에 간 지 1년 밖에 안 된데다 일본어도 서툴러, 벤치에 앉아 응원하는 데 그쳐야 했다.
하지만 월드컵 자원봉사에는 부인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 이제는 일본어에 자신이 붙었기 때문. 부인 장씨는 올해 2월부터 중앙대 대학원 일본어 학과에서 만학의 길에 나섰다. 대림대학 비서행정학과에선 일주일에 6시간씩 시사일본어도 강의한다. 장씨는 “일본 생활 경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은 욕심이 났다”고 말했다.
부부 모두 강의를 맡고 있어 우선 대회기간 동안 주말과 경기가 있는 날만 봉사할 작정이다. 하지만 언제라도 손이 달리면 도움에 나설 태세다. 부부는 “이제 실전만이 남았다”며 “대회가 시작될 때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 보열군은 “어서 월드컵이 다가와 엄마 아빠랑 같이 같이 구경가고 싶다”고 거들었다.
( 방현철기자 banghc@chosun.com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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