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의 통역사 최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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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1-29 21:31 조회1,67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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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의 통역사 최성재 2020년 1월 26일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명예교수
곽중철 010-5214-1314
봉준호 감독의 통역사 최성재는 특히 유튜브 채널에서 점점 더 많은 화제가 되고 있다. 국내 뿐 아니라 영화 기생충이 지난 1월 초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직후 할리우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진행자는 봉 감독과 이야기하던 도중 작년 5월 프랑스 칸느 영화제부터 통역으로 각광받던 최씨에게도 소감을 물었다. 행사장에서 통역사가 개인적 질문을 받은 것은 아주 이례적이다.
지난 수십년간 통역 관련 보도는 아주 단편적으로 이루어졌는데 트럼프와 김정은의 통역을 맡아온 미 국무부 통역국장 한국인 여성이 북한 비핵화라는 세기적 이슈 덕분에 작년 하노이 정상회담까지 한국언론의 취재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기생충이라는 불세출의 영화와 세기의 감독이 된 봉준호 덕분에 최씨의 인기는 그 미국 통역사의 추억을 덮어버리면서 연일 유튜브를 도배하고 있다. 최씨 자신도 놀라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통역을 두고 일부는 비판적일 수도 있으나 한국 최초의 통역사인 필자도최고의 평가를 내리고 싶다. 40년 통역과 통역강의를 마치고 은퇴한 필자에게도 그의 통역은 놀랍다. 먼저 그녀는 전문통역 교육을 받지않았다지만 뛰어난 언어 감각을 가진 타고난 통역사다. 40년동안 후배와 제자들을 봐왔지만 그녀 만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미국의 한 사회자는 그녀가 봉감독의 말을 받아 적는 작은 수첩이 비결인 것 같다며 행사 후 그 수첩을 갖고 싶다고 농담했지만 그런 수첩이 다가 아니다. 수첩에 모든 말을 다 받아 적을 수가 없기에 그녀는 봉 감독의 말을 단기 기억력으로 다 머리 속으로 외운 후 짧은 순간에 그 말을 분석해 자연스런 영어로 옮기는 것이다. 통역훈련과 상관없는, 감출 수 없는 타고난 재주다.
그녀는 통역이전에 한국어 분석 및 이해력이 거의 완벽하다. 미국 대학을 나온 그녀의 영어는 미국 대학생들에 뒤지지 않을 어휘력과 자연스런 표현력을 구사한다. 봉준호는 자기 영화에 나올 배우를 캐스팅하듯 통역사를 골랐고 멋지게 성공했다고 본다. 자신도 충분히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으로 통역사를 선발한 제1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필자는 그것이 영화에 대한 지식과 이해력이었다고 본다. 최씨는 직접 단편영화를 만들기도 한 영화인이라 하지 않는가?
국내외 영회인들이 구사하는 언어는 아무나 이해할 수 없고 특히 최고의 국제 영화 관계자들을 상대하며 같은 수준의 전문용어와 속어를 구사하는 천재 봉준호를 통역하려면 30년 연장인 그의 머리 속에 들어가거나 그의 이마 위에 앉아 있어야 한다. 최씨는 그렇게 통역을 했다.
통역의 성패는 우선 말을 하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봉준호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고 통역의 어려움과 민감성을 알고 통역사를 배려하는 사람이다. 최씨는 좋은 주인을 섬긴 것이다. 최씨는 지난 7개월동안 봉감독과 공범이었다. 그는 봉감독을 존경하고 좋아한다. 그가 말할 때는 그를 보며 고개를 숙이고 메모를 하지만 통역할 때는 상대방의 눈을 보며 눈맞춤을 한다. 아이 컨택트는 복싱뿐 아니라 통역을 할 때도 필수적이다.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하다. 최씨는 그러면서도 결코 겸손과 성실성을 잃지 않는다. 아담한 몸과 작은 머리도 통역에 적합하다.
지난 20년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1년에 한 둘 나타나는 타고난 통역사를 보는 것은 인생의 즐거움이었다. 필자는 앞으로도 최씨의 통역을 지켜보면서 다음에는 또 어떤 타고난 통역사가 나타날까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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