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미디아 플레이를 자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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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2-01 18:04 조회1,73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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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미디아 플레이를 자제하라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명예교수 곽중철 010-5214-1314
‘언론 플레이’란 신문과 방송같은 언론을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여론을 조성하는 일련의 활동을 비하하여 일컫는 말이다. 제 욕심껏 언론을 사용(使用)하는 것이다. 통역 시장에서도 1980년대 중반 세상에 알려진 전문통역사들 중 일부가 자신들을 알리기 위해 주로 일간지들을 이용했다. 어디서 공부 했다느니 동시통역을 몇 백회 했다느니 자신이 통역한 국가정상들이 어쨌다느니 하면서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다. 특히 이를 본 어린 학생들이 신데렐라를 꿈꾸며 너도나도 외국어와 통역 공부에 뛰어 들었으리라.
전문통역의 역사가 40년이 넘은 최근에는 갓 시장에 나온 젊은 통역사들이 유튜브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아에서 자기 선전 플레이를 하고 있다. 여러 기관에서 통역사가 배출되어 시장에 통역사가 과잉 공급되니 통역사끼리 경쟁이 치열해지고, 일감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리라.
신문이나 잡지들과는 달리 소셜 미디아는 이를 걸러주는 게이트키핑 장치가 없어 플레이하기가 훨씬 쉽다. 어차피 같은 또래들은 종이 신문을 거의 읽지 않으니 언제 어디서나 직접 스마트폰으로 거리낌없이 업로드한다. 통역이라는 제목으로 소셜 미디어에 들어가보면 그 정도가 지나치다는 인상을 받고 한숨을 쉬게 된다. 자신이 통역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려놓고 자랑하면서 오늘도 완벽한 통역을 한 것같이 떠벌린다. 도대체 통역을 하려 갔는지 선전용 사진을 찍으러 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이제 40년 통역 실무를 떠난 필자가 보기에는 사진 찍기에 급급하며 한 통역의 품질이 높았을 수가 없다. 봉준호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옥자’에 보면 통역을 소홀히 한 출연자가 반성의 표시로 팔목에 “통역은 신성하다 (Translation is sacred)”는 문신을 하고 나타난다. 그렇다. 남의 말을 내말처럼 충실히 옮겨야 하는 통역은 도중에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을 여유가 있을 만큼 쉽고 한가한 작업이 아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제자이지만 실무통역을 해본 적이 없는 통역학원의 강사가 자기소개에 “한국최고의 통역사”라고 허풍을 떤다. 반반히 생긴 자칭 통역사가 통역의 경험담을 얘기하며 “그렇게 힘든 통역이었는데 나는 이렇게 극복했다”는 식으로 미주알 고주알 엮어 얘기한다. 거짓 뉴스지만 밝혀낼 길이 없고 네티즌들은 속아넘어간다. 심지어 연예인의 배우자라는 자칭 동시통역사는 누가 봐도 엉터리인 영어를 하는 동영상이 공개되어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물론 스마트 폰이 신체의 일부가 되어버린 밀레니얼 세대의 일부 ‘관종’들은 재미로 소셜미디아를 쓰면서 자랑하기를 즐긴다고 한다. 또래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감해 주기를 바라고 나누기를 원하기 때문에 복사해 전파하기를 거리낌 없이 한단다. 그러나 그런 행위가 남에게 피해를 준다면 잘못된 것이다. 음지에서 신성하고 어려운 통역을 묵묵히 수행하는 진짜 통역사들의 일을 빼앗아서는 안되고 신성한 통역을 희화화해 순진한 통역지망생들을 오도해서도 안된다. 통역사를 믿고 훌륭한 통역을 기대하는 고객들을 속여서도 안된다.
이제 많은 선배 통역사들이 참다못해 한마디 하고 싶어한다. “후배들이여 이제 소셜미디아를 통한 뻘짓 같은 자기선전을 멈추고 실력을 길러라. 카메라를 거두고 임무에 충실하라. 그리하여 묵묵히 일해 세상의 인정을 받은 봉준호의 통역사를 본받아라. 그것이 인공지능의 위협을 받고 있는 통역이라는 지난한 직종을 살리고 동시에 전문 통역사를 살리는 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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