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론 최 버라이어티 (Variety) 독점 인터뷰 비공식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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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2-20 23:28 조회217,102회 댓글1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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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인터뷰) 봉준호 통역사 샤론 최가 직접 전하는 역사적인 <기생충> 수상 시즌 뒷이야기
영한 초벌번역 이선경
전세계에 돌풍을 몰고 온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칸 영화제부터 봉준호 감독 곁을 지켰던 첫 등장 때부터, 통역사 샤론 최 (Sharon Choi)는 단연 시상식 시즌의 MVP로 눈도장을 찍었다. 깔끔한 블랙 정장에 노트를 손에 꼭 쥔 채, 졸업을 앞둔 학생 영화인은 할리우드의 가장 명성 있는 자리에서 봉 감독의 감사 인사를 영어로 전달했다. 수백 건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고, 최씨는 버라이어티 (Variety)와의 독점 인터뷰를 통해 작년 4월 전화 통역으로 시작해 LA 돌비 극장에서의 오스카 작품상 수상으로 끝난 지난 10개월의 여정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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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느끼는 완벽한 정적이다. 오스카 트로피6개를 거머쥐었지만 놀랍게도 노래방 방문은 생략했던, 그야말로 역사적이었던 밤, 눈물 어린 작별 인사로 내 눈은 아직도 퉁퉁 부어 있다. 시상식이 끝난 날 밤 나는 이미 잠은 포기했기에, 생각 없이 일출을 보러 해변으로 향했다. 믿을 수 없는 <기생충>의 성과로 막연히 해가 서쪽에서 뜨진 않을까 생각하며 말이다. 수평선에서 태양 대신 내가 본 것은 전날 밤의 비가 할퀴듯 남기고 간 잿빛 구름 앞뒤로 숨바꼭질 하는 달이었다. 오스카 시상식장으로 가는 길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었다. 우리는 벤츠 스프린터 버스 유리창에 세차게 내려치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다. 돌이켜보니 좋은 징조였다. 어땠든 <기생충>은 비가 많이 나오는 영화이니까.
급히 봉준호 감독과 전화 인터뷰로 통역을 해 보라는 이메일을 받은 건 2019년 4월이었다. 깜빡이는 마우스 커서 앞에서 시험 작품 각본에 몰두해 꼬박 밤을 새느라 이미 인터뷰를 놓친 뒤였지만, 흥분감에 느낌표 몇 십 개를 찍어 보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추후 통역은 모두 가능하니 연락 주십시오.” 라고 애써 점잖게 답변을 보냈다. 며칠 후 요청이 또 들어왔고, 정신을 차려 보니 난 어느새 아끼는 노트와 펜을 들고 책상 앞에서 제발 앞으로 한 시간은 화장실 갈 일이 없기만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전까지 통역은 이창동 감독의 저평가된 명작 “버닝” 관련 일을 고작 일 주일 정도 해 봤을 뿐이다. 그래서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봉 감독의 모호한 영화 레퍼런스를 미처 잡아내지 못했을 때, 기회는 다른 통역사에게 넘어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통역은 신성하다,” 봉준호 감독은 <옥자> 에서 스티븐 연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기 시작한 건 칸 영화제 통역을 의뢰받았을 때다. 공교롭게도 나는 칸 영화제 축제 기간에 휴가로 남불 여행을 계획했었다. 한국의 첫 황금종려상 수상을 목격하려고 정장으로 가득 찬 배낭을 메고 돌아다닐 걸 미리 예상했더라면, 수화물도 못 부치는 초저가 항공편이나 싸구려 8인 1실 호스텔을 예약하진 않았을 거다.
칸에서 처음 기생충이 상영된 뤼미에르 대극장에서는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한 아찔한 열광이 느껴졌다. 여러 문화권 사람들이 내 조국에서 만든 영화에 공감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어렸을 때 미국에서 2년 살았던 경험으로 나는 ‘애매한 별종’이 되어 있었다. 한국인이라 부르기엔 너무 미국적이고, 미국인이라 하기엔 또 너무 한국적이고, 한국계 미국인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그런 존재 말이다. 계속 책과 영화를 통해 영어를 공부했지만, 대학 진학을 위해 LA로 돌아왔을 때는 그렇게도 흔한 “What’s up?” 이란 인사에도 말문이 막히곤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내 본모습의 반 밖에 보여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되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한 영화에 두 개가 넘는 문화를 담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모든 장벽을 손쉽게 부숴 버린 이야기가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다. 원래 나는 칸 영화제에서 영어권 언론 담당으로 이틀만 일할 계획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폐막식 때 무대 뒤에서 손에 땀을 쥐고 수상 후보작 이름에 <기생충>만 남는 순간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이후에 벌어진 일은 모두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실 통역에 몰두하다 보면 추억에 잠길 여유 따위는 없다. 매 순간이 가장 중요한 대상이기에, 매 순간 깨끗이 기억을 지워 다음 통역 대상 문장이 들어올 자리를 만들어야 했다. 평생 동안 봤던 모든 영화를 하나하나 떠올리며 불면증을 다스리고, 동서양 문화의 차이를 다시 떠올려 보고, 봉 감독이 쓰는 단어들의 또렷한 뉘앙스를 잡아내야 했다. 감독님의 배려 덕분에 통역은 확실히 쉬워졌다. 또한 봉감독 관련 논문을 써본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 제작자이자 사상가인 봉준호의 언어를 이미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쉴 새 없이 가면증후군과 싸워야 했고, 너무나도 사랑받는 인물의 말을 존경하는 영화계 인사들 앞에서 잘못 전달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무대 공포증을 다스리는 유일한 방법은 무대 뒤에서 했던 짧은 명상과, 관객들은 내가 아닌 봉 감독을 보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영화는 분명 내가 가장 선호하는 메시지 전달 도구이지만, 긴장한 탓인지 프랑스 홍보 담당자 하나가 동료들에게 소리쳤던 이 말을 계속 버릇처럼 되새기게 되었다. “그냥 영화일 뿐이야!”
이번의 모든 경험은 순전한 특권이었다. 봉준호와 송강호라는 코미디 듀오를 향해 터져 나오는 웃음, SAG 어워즈에서 앙상블 상을 받았을 때 <기생충> 팀에게 바쳐진 기립박수, 또 오스카 시상식에서 봉 감독이 마틴 스콜세지에게 영광을 돌렸을 때 관객들이 보여준 가슴 깊은 존경의 현장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영화계 영웅들도 만났다. 각본가이자 배우인 피비 월러-브릿지 (Phoebe Waller-Bridge)와 그녀의 드라마 <플리백>에 대한 농담을 나누고, 셀린 시아마 (Celine Sciamma)와 새벽 4시에 타코벨에서 사랑과 상처를 논하기도 했다. 룰루 왕 (Lulu Wang)과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양성과 스토리를 주제로 대화하다가, 흘러나오는 “클로징 타임” 노래를 뒤로하고 식당을 나온 적도 있다. 존 카메론 미첼 (John Cameron Mitchell)에게 당신때문에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졌다고 말하다가 봉 감독에게 스타 바라기라며 놀림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슴에 남은 선물은, 매일같이 많은 동료와 예술가들을 일대일로 만나며 나눴던 개인적인 대화와 소중한 관계였다. 나는 앞으로 이분들과 다시 일하기 위한 기회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아마 시간이 좀 걸릴 테지만.
칸과 텔루라이드 두 영화제 사이 기간에 나는 친구의 졸업 과제를 돕고 있었는데,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 했는데도 늘 그렇듯이 어려움은 많았다. 비밀리에 촬영하기로 계획했던 화장실이 하필이면 당일 아침 갑자기 공사에 들어가 몸이 아픈 제작보조원을 즉석 장소 섭외에 보내야 했을 때는 결국 애써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과제를 끝내고 3일 후 나는 오스카 준비 작업 때문에 텔루라이드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피부로 느껴지는 주변 상황의 반전에 적응하기 위해 산소호흡기가 필요할 지경이었다. 나는 위대한 역사의 한 순간에 함께할 수 있었지만, 내 본분은 아직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작고 감동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여전히 난 영화감독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배우는 중이다.
영화 제작자인 봉준호 감독의 시선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이틀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뉴욕 매거진이 캘리포니아를 향한 아름다운 헌사의 메시지를 담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건축한 LA의 홀리혹 하우스 (Hollyhock House)에서 봉 감독의 인터뷰를 통역한 적이 있다. 공간을 직관적으로 읽어내는 봉 감독의 말을 듣는 것 자체가 카메라, 공간, 연기자라는 신성한 삼위일체를 논하는 일류 강의를 듣는 듯했다. 조여정 배우의 W 매거진 표지 촬영을 지휘하는 모습에서는 봉 감독의 타고난 비전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항상 유머와 위트를 겸비한 감독님의 타고난 상황판단은 하나하나가 유용했고, 내게 영감으로 다가왔다. 이외에도 수많은 위대한 예술가들이 <기생충>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함께 일했다. 단 하루라도 이들이 일하는 과정을 가까이서 보고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을 기꺼이 내 어떤 경험과도 바꿀 것이다.
두 언어를 치환하는 것은 내가 아는 유일한 삶의 방식이다. 나는 20년 동안 나 자신의 통역사였다. 이중언어 구사 아동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한 심리학자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뇌 용량이 비슷해, 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10,000개 단어를 안다고 하면, 이중 언어 사용자는 각 언어로 5,000개밖에 모를 거라는 거다. 나는 영어와 한국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평생을 힘들게 보냈다. 사실 이 때문에 영화의 시각적 언어와 사랑에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영화제작은 ‘나의 내면’을 ‘바깥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로 통역하는 비슷한 과정이지만, 실제 언어 통역처럼 운이 좋아야 원본과 살짝 비슷한 대체 동의어를 언제나 찾아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심리학자는 언어 간 치환을 할 때 두뇌에서 활성화되는 것은 언어를 관장하는 부분이 아니라 사고의 유연성을 제어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분은 연습을 통해 능력이 향상될 수 있는 근육이다. 사실 오늘날의 <기생충>을 만들어낸 것도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내는 유연성이다. 공감을 통해 우리는 타인과의 거리를 줄여 나간다. 내가 영화 스토리텔러가 되고 싶은 이유도 조금 덜 외로워지고 싶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제 시즌과 관련된 작품을 만들 생각은 없다. 이번 경험은 아직까지 오롯이 소화하지 못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었기에, 나중에 내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길 기다릴 예정이다. 지금 내가 작업중인 스토리는 한국을 배경으로 한 사소하고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봉 감독이 오스카 무대에서 언급한 스콜세지의 명언처럼,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내 얼굴을 SNS 뉴스피드에서 보는 것은 정말 이상하고도 어색한 경험이었다. 내 이름이 해시태그로 비아그라 광고에 사용된 트윗 봇 계정을 봤을 때, 반짝 유명해지긴 했다고 느꼈다. 심지어는 화장품 광고 제안도 들어왔다고 들었다. 영화에 대한 사랑을 나에 대한 따뜻한 관심으로 보여주신 분들에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심지어는 한국 정부가 2월 9일을 “ <기생충> 국경일”로 지정한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인기가 하루빨리 시들 해지길 바란다. 나중에 내 이름이 스팸 광고에 또 사용된다면, 영화인으로서의 성과 때문이었으면 좋겠다.
당분간은 노트북으로 작업에만 집중할 계획이다.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하는 통역 작업은 내 이야기를 영화의 언어로 바꾸는 일, 그것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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