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장님도 강의하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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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9-04-06 15:54 조회1,54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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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나남 발행 [지구촌 시대를 준비한 선각자---박술음 선생과 외대의 탄생] 중
학장님도 강의하시나?
영문법과 영어연극의 융합 지식 곽중철 영어 72 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필자가 외대 영어과 19회로 입학한 것이 1972년이었으니 2대 학장을 지낸 후 1966년 제 6대 학장으로 재취임하셨던 박술음 박사님을 처음 뵌 것은 그분이 70세였을 때였다는 계산이 나온다. 당시 A, B, C 세 반으로 분반되었던 영어과 19회 신입생 100여 명은 지금은 없어진 구 본관의 3층 큰 교실에서 그의 영문법 강의를 들었다.
머리가 채 자라지도 않고, 여드름이 남아 있는 얼굴에 교복을 벗은 지 얼마 안 돼 어색하기만 한 사복차림으로 학교 근처 하숙집에서 등교한 필자는 대학의 동기생들과 특히 처음으로 같은 공간에서 공부하게 된 여학생들을 살피기에 정신이 없었으리라….
학장이라는 분이 교실에 들어섰을 때, “학장님도 강의를 하시나?” 하면서 바라본 그분은 나이 드셨지만 ‘깨끗하게 늙으신’ 자그마하고 단아한 노인의 모습이었다. 측면에서 보기에 긴 턱이 약간은 우스웠지만 분위기는 그의 영어 이름 그대로 범접할 수 없는 엄숙(solemn)함, 그 자체였다.
그가 제시한 영문법 교과서는 문법 위주로 입시공부를 한 필자에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입시에 찌든 신입생의 시각을 새로 열어주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아, 지난 6년 동안 매달렸던 그 영문법이 대학에서는 저렇게 설명이 되는구나, 신기한 눈으로 매주 그의 강의를 들었다.
37년이 흐른 지금, 이상하게 기억에 뚜렷한 순간은 그가 한 문장에 나온 peerless라는 단어를 설명할 때였다. “peer는 짝이라는 말이니 짝이 없다, 경쟁 상대가 없다, 필적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요즘 선전에 나오는 피어리스 화장품은 짝이 없을 정도로 좋은 화장품이라는 뜻이지요.” 아직 상품 이름에 영어를 많이 쓰지 않았던 그 시절에 그가 해준 단어 해설은 어린 신입생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아, 우리나라 상품에서 쓰는 영어에도 다 뜻이 있고, 저렇게 쉽게 설명이 되는구나….
그렇듯 그의 강의는 양보다는 질, 간결하고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내용이었다. 한 시간에도 몇 번씩 그의 혜안(clairvoyance)이 번득이는 강의를 듣기 위해 필자는 강의시간에 늦지 않게 등교했고, 강의 도중에도 옆자리의 여학생보다는 강의 내용에 눈과 귀를 기울였다. 그의 강의는 2차 대학에 들어왔다는 열등감에 빠져 있던 필자에게는 “학교를 잘 선택했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 한 줄기 등불이었고, 영어는 대학에서도 전공할 수 있을 만큼 재미있는 과목이라는 확신이 들게 했다.
데모를 많이 해 휴교도 잦았던 그 시절, 2학년 1학기에 날아온 징집 통지서(영장)는 미팅과 축제로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렸던 필자에게 충격으로 다가왔고, 고심 끝에 학군단에 지원하는 결정을 내렸다. 3학년부터 수시로 군사훈련을 받으며 필자가 내린 결론은 외대생들이 흔히 하는 외무고시 공부를 하지 못할 바에는 전공인 영어라도 열심히 해서 졸업과 제대 후를 대비한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도 이미 영어는 출세의 열쇠로 인식되고 있었으니까….
ROTC 훈련이 있는 날에도 새벽 일찍 일어나 등교 전까지 하숙집 방에서 영어책을 탐구하게 된 것도 1학년 때 배운 박 교수님의 영문법 강의가 큰 원동력이 되었다. “나도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 박교수님 같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실력을 갖춰야지” 하는 잠재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당시는 필자가 모교의 교수가 될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1979년 설립된 통역대학원에 입학하고, 약 20년 후 대학원 교수가 된 후 첫 동문 원장이 된 것도 그 시발은 박 교수님의 영문법 강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3학년 말, 동생이 대학입시를 위해 서울에 올라오는 바람에 같이 하숙집에 머물게 되자 크게 할 일이 없었던 필자는 영어과의 영어연극 단원 모집에 지원했다.
당시 영어과장이셨던 고 이영걸 교수님과 연극감독 라이언(Bill Ryan) 교수님이 1975년 영어연극 후보작품으로 뮤지컬 한 편과 브람 스토커(Bram Stoker) 원작의 <드라큘라 백작>을 들고 결재를 받으러 갔더니 “금년에는 특이하게 흡혈귀 연극을 해보라”고 웃으면서 권고하셨다고 했다.
추운 겨울날 난방도 안 되는 한 강의실에서 열린 오디션에 나갔더니 라이언 교수가 “주연인 드라큘라 역은 키가 크고 마르며 목소리가 강해야 한다”고 했다. 주연을 지망했던 나는 다른 키 큰 남학생과 함께 더블 캐스트되었고, 곧 연습이 시작되었다. 3월 개학이 되자 함께 연습하던 남학생이 포기를 선언했고 필자는 싱글 캐스트가 되어 4월 말 남산의 드라마센터에서 공연된 4회 연극을 주연으로 모두 소화하는 영광을 누렸다.
당시 학교 예산의 반이 들어간다는 최대 행사였던 영어연극에 박 학장님은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셔서 우리는 대학생답지 않은 호사를 누렸다. 연극이 끝나고 무대 위에서 기념촬영을 하기 직전, 특유의 검은 양복에 어두운 색깔의 넥타이를 매신 모습으로 오랜만에 뵌 학장님은 주연인 필자의 손을 잡으시며 “수고했다. 자네 연기를 보니 금년 영어과 연극을 드라큘라 백작으로 하기를 잘했다”고 크게 격려해주셨다.
“대학연극에 웬 흡혈귀 이야기냐?”가 아닌, 뭔가 색다른 도전을 하도록 영단을 내려주신 덕분에 필자는 학군장교 후보생으로 연극을 핑계로 머리를 기르고, 구레나룻까지 붙인 고급 장교같이 힘찬 드라큘라 백작을 연기할 수 있었다. 그때 외웠던 대사들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남아 박 교수님께 들었던 영문법과 함께 지금도 내 영어 속에 녹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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