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번역, 거품 꺼질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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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8-25 11:56 조회2,00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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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번역, 거품 꺼질 수도
곽중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국제번역가연맹(FIT)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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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모 대학에서 열린 인간 대 AI 번역대결에서 인간 번역사들이 압승 판정을 받은 결과가 나온 후에도 인공지능 번역회사들은 연일 자사 자동번역기의 발전상에 대한 과장 홍보를 계속하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번역기가 이만큼 발전했네, 어느 자동번역 기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네”라는 홍보 기사가 잇따르고 있다. 내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의 통번역을 책임진다고 장담하는 회사도 한 둘이 아니다. 그런데 국제 체육대회 행사의 안내 통번역이나 하려고 대학에서 외국어를 전공하거나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은 없다. 그 회사들의 무분별한 선전이 나라의 외국어 교육과 그 중요성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크게 흔들고 있다. 그냥 두면 대학의 어문학과가 정원미달이 되고, 그 어렵다는 통번역대학원의 경쟁률도 뚝 떨어질지 모르겠다.
인간의 언어란 체스와 바둑과는 차원이 다른 인간 지능의 최고영역이다. 인간의말에는 바둑보다 훨씬 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각자의 모국어 수준도 다 다르기에 모국어로 대화할 때도 오해가 생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모국어로 애기 할 때와 외국어로 할 때가 다르고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번역기가 아무 문제없이 의사 소통을 대신해 줄 것이라는 예단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AI 회사들이 자사의 번역기를 과대 선전하는 것을 언론이 그대로 보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어와 통번역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우리를 괴롭히던 외국어 문제가 사라지고, 비싼 대가를 요구하던 전문 통번역사들은 할 일이 없게 되어 쌤통”이라고 하는 듯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작년 방한한 미국의 모 인터넷 기업의 회장은 자신을 통역해 준 전문통역사에게 “수고했지만 당신 직업은 곧 사라질 것”이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고 갔단다. 필자라면 “통역사 직업이 사라지기 전에 인터넷 기업 회장직이 먼저 사라질 것”이라고 했을 것이다.
자동번역회사 마케팅 부서들이 밀어 부치는 비정상적 과잉홍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자산붕괴 현상을 연상시킨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단추 하나만 누르면 즉시, 무료로, 완벽한 번역을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냄으로써 인간 번역의 가치와 입장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모두가 자기 집을 가질 수 있다는 헛된 기대가 비 우량 주택 담보대출을 불러와 세계금융을 붕괴시켰던 것을 상기하자. 통번역 전문가들은 대기업들이 돈을 쏟아 붓는 홍보의 파도 속에서 자신들의 소박한 입장과 주장을 전달하지도 못하고 냉가슴을 앓고 있다. 이대로 좋을까?
그 골치 아픈 외국어 공부를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에 기대어 많은 젊은이들이 외국어 학습을 등한시하고 세계어가 된 영어의 중요성 마저 인정하지 않을 기세다. 정보화 시대에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얻는 정보의 90% 이상이 영어로 나오는데 완벽하지도 않은 인공지능의 영어 번역만 믿고 오류 가능성이 있는 정보를 간접 취득하는 사람과 자신의 탄탄한 영어 능력을 바탕으로 정보를 직접 취득하고 분석해 순간적으로 처리하는 사람 중 누가 이 사회를 이끌겠는가? 당신의 자식이라면 어떤 방향으로 인도할 것인가?
번역기계가 발전시키고 있는 자동 번역의 바탕이 된 기존 번역의 빅 데이터도 결국 인간이 오랫동안 해낸 번역물들이다. 기계의 번역은 빙산의 일각이고, 그 밑에는 기계번역을 발전시키기 위해 번역회사들이 고용한 관련 기술 전문가들과 홍보 전문가들에 대한 막대한 투자가 숨어있다. 그 전에 기계번역 결과물 밑에는 외국어와 문화간 차이를 메우기 위해 수십 년을 투자한 수많은 외국어 전문가들의 시간과 노력의 역사가 있음을 간과하지 말라. 그 빙산의 9각을 자신들이 만든 기계를 과장 선전해 헐값에 매도하지 말라.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전해도 인간의 말에는 기계번역이 못 미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함을 알면서도 눈 가리고 아옹 하지 말라. 비우량 주택 담보 대출이 무분별한 자산 금융 버블의 파생상품이었듯이 인간 번역의 파생상품인 기계번역이 과도한 선전 끝에 거품처럼 꺼질 날이 오지 않도록 모두 자중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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