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 정상회담의 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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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8-04-22 17:31 조회1,56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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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북 정상회담의 통역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곽중철 010-5214-1314
4월 27일 판문점의 역사적인 남북한 정상회담 후에는 사상 최초의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어있다. 이 역사적 만남에는 분명히 김정은이 쓰는 한국어와 트럼프 대통령의 영어 사이의 통역이 필요하다. 우선 이 통역은 동시가 아닌 순차통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즉 양측의 통역사가 통역부스에서 동시통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주 앉은 두 정상의 곁에서 한마디 한마디 순차적으로 통역을 하게 될 것이다. 사상 최초의 양국 정상회담이고 “북한의 비핵화”라는 무겁고 중차대한 주제를 다루게 되므로 한마디 한마디 확인을 하면서 회담이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회담이 순조로이 끝나 양측이 기자회견을 하게 된다면 동시통역을 할 수도 있다.
우선 외교 관례상 트럼프대통령의 영어 발언은 미국 측 통역사가 한국어로 통역하고 김정은의 한국어 발언은 북한 측 통역사가 영어로 통역한다. 미국 측에서는 2009년부터 국무부 소속으로 미국 대통령들을 통역해온 미국시민권자인 베테랑 중년 여성 통역사 L씨가 맡을 것이다. 북한 측도 김정은 전속 영어통역사가 있을 텐데 전문통역 훈련을 받지는 않았겠지만 북한 식 외국어훈련을 받은 북한 최고의 남성 통역사일 가능성이 크다. 다만 그가 전문적인 훈련이 필요한 동시통역까지 할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다.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정상회담의 통역을 맡아 온 미국 측 통역 L씨가 맞닥뜨릴 문제는 김정은이 쓸 북한 말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느냐가 될 것이다. 김정은의 북한식 한국어를 직접 영어로 통역할 일은 없지만 북한 측 영어 통역이 정확한 지를 어느 정도는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트럼프의 적절한 대응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한의 역대 대통령은 많이 통역했지만 북한의 통치자는 처음이다. 북한 말의 억양과 여러 용어들이 생경하게 다가오면 순발력 있게 대처하면서 북한 측 통역이 정확하지 못하면 트럼프에게 살짝 귀띔할 수도 있어야한다. 트럼프는 수가 틀리면 회담장을 떠나겠다고 했으니 그 이유가 오역이어서는 절대 안되기 때문이다.
최근 폼페이오 국무장관 내정자가 북한을 비밀리에 방문해 김정은을 만났을 때는 북한의 통역사가 양측을 모두 통역했을 가능성이 크다. 극비방문이었지만 내정자가 통역사를 대동했다면 L씨가 아닌 주한 미국대사관의 전속 여성 통역사가 수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녀는 2009년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북해 김정일을 만났을 때 수행 통역을 했고 그때 찍힌 기념사진이 아직 인터넷에 남아있다. 필자의 제자이지만 당시의 추억은 일절 스승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필자가 2010년 중국 광저우 아시안 게임 도중 북한 체육계인사들의 기자회견 통역을 했을 때도 순차통역을 했기 때문에 남한과는 조금 다른 북한 말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북한 사람들은 ‘북한’이라는 호칭을 크게 싫어해 ‘조선’으로 불러달라고 공공연히 요구하면서 우리 보고는 ‘남조선’이라고 불렀다. 자신들을 영어로는 ‘DPRK’로 불러주길 원했다. 따라서 이번 미북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DPRK’, 남한을 ‘ROK’라고 통일해 지칭하고 통역사 L씨는 이를 받아 약칭으로 ‘조선’과 ‘한국’으로 통역하면 북한 측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2001년 3월 8일 미국의 신임 대통령 된 조지 W. 부시와 김대중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이 있던 날 일부 일간지에는 다음과 같은, 평소에는 보기 드문 통역관련 기사가 나왔다.
<한미 정상회담 `통역' 혼선>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8일 새벽(한국시간) 한미 정상회담을 가진뒤 회담결과를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는 과정에서 미국측 통역관이 부시 대통령의 대북정책과 관련한 발언을 일부 통역하지 않아 한때 혼선이 빚어졌다.
논란은 백악관 통역관이 부시 대통령의 모두 발언을 통역하면서 "북한의 지도자에 대해 약간의 회의(some skepticism)을 가지고 있다"는 발언을 소개한 뒤 부시 대통령의 후속 발언을 불명확하게 전달한 데서 비롯됐다.
한국계 K씨가 맡은 백악관 통역은 "그것이 우리가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데 있어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부시 대통령의 후속 발언을 우리말로 통역하면서 "우리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는 식으로 본래 의미에 충실하지 않게 통역한 것이다. 이 때문에 양국 정상이 대북정책을 놓고 `상당한 수준'의 이견을 보인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대두됐고 기자회견장이 술렁거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외교적으로 민감한 발언을 원문에 충실하지 않게 통역한 것은 문제"라고 불만을 표시했으며, 백악관측은 부시 대통령의 발언록을 곧바로 번역, 우리측 보도진들에게 배포했다.
그러나 이 같은 통역 논란은 미국측 통역관이 통역을 잘못한 것이 아니라 양국보도진과 배석자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던 `협소한' 장소 탓도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양국 정상이 회담과 공동기자회견을 가진 백악관 오벌 오피스는 약 30평 규모에 불과했으나 기자회견 당시 양국 보도진과 배석자 50여명이 자리를 함께 해 양국 대통령의 발언조차 제대로 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끝)
필자는 이 기사를 본 순간 바로 사건의 발단을 알아챌 수 있었다. 필자는 K씨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미 외교가에서 유명했던 K씨는 당시 연세가 60을 넘겼을 것으로 보였다. 미 국무성에서 한국어 통역을 도맡아 담당한 지가 10년이 넘었다. ‘미국 측 한국어 통역 담당’으로 필자와는 90년대 초 노태우 대통령 당시 짝을 이뤄 청와대에서, 또 백악관에서 같이 통역을 한 적이 있었고, 지난 해 11월 당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일행이 북한을 방문하고 오는 길에 서울에 들러 한미일 3국 외무 장관 회담을 함께 통역하게 됐을 때 다시 만났다.
그 날 아침 호텔 회의장 통역 부스 안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3국 참석자들이 모두 착석해 회담이 시작됐는데도 올브라이트 장관의 영어를 한국어로 통역하기로 돼있는 김 씨가 5분 가량 늦게 부스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한일 참석자들이 대충 영어를 알아듣는 사람들이라 회의 진행에 문제는 없었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 기자 회견장 통역 부스에서 그를 만나 반갑게 “저를 기억하십니까?” 했더니 “아, 곽 선생, 기억 합니다만 오늘 제가 머리가 너무 아프니 내버려두십시오” 하는 게 아닌가? 약간 머쓱해진 나는 아마 북한에서 미국 대표단 영어 통역하랴 김정일 등의 북한 말을 통역하느라 기진했나 보다 하고 이해했다. 필자도 며칠 새에 영어로, 불어로 통역하다 보면 편두통이 생기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K씨는 일찍이 미국으로 건너가 국무부가 인정하는 한국어 통역 자격증(license)을 받은 자수성가 형 통역사로 정식 통역 교육을 받지는 않았기 때문에 동시통역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연세가 있어 우리 말 억양이 60-70년대 ‘대한 뉴스’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번 미북 정상회담 통역을 맡을 미 국무부의 L씨는 아직 젊고, 통역대학원 졸업 후 수많은 경험을 했고, 또 순차통역을 하게 된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L씨가 국무부에서 한국어 통역을 맡기 전까지는 한미간의 외교통역에 오역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2006년 9월 14일 워싱턴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했을 때도 말썽이 있었고 필자는 당시 모 일간지에 다음과 같은 기고를 했다.
보도일자: 2006년 10월 10일 제목: 한•미 정상 망신시킨 미국 통역사
미국 최고위 관리들의 영어 발언이 한국어로 잘 통역되지 않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7월 방한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회담한 뒤 한 기자회견에서 미국에서 데려온 여성 통역사가 팔레스타인 당국(authorities)이라는 말을 권위로, 비핵화 선언을 비핵화 동맹으로 옮기자 기자단에 동요가 일어났다. 게다가 라이스 장관의 발언을 다 옮기지 않거나 중요한 부분을 누락하자 많은 신문이 이를 기사화했다. 지난달 (2006년 9월) 14일 워싱턴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했을 때 새로 고용된 미국 측 남성 통역사도 나을 것이 없었다. 금방 눈치챌 수 있는 오역이 없어 기사화되지는 않았지만 녹화 테이프를 자세히 들어보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말 가운데 제대로 통역된 게 거의 없었다. 몇 가지만 보면 우선 한.미 관계는 강하고도 매우 중요한 관계라는 첫 발언을 강력한 … 그런 관계라고 얼버무렸다. 제일 심각한 것은 부시가 미국이 한반도 안보에 변함없는 의지를 갖고 있다(committed)는 메시지를 전했지만 미국 정부는 한반도의 안보에 책임을 여전히 지고 있다는 메시지로 전달된 점이다. 큰 오해를 불러일으켰을 수도 있는 오역이었다. 이어서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시기 문제를 잘 해결하라고 럼즈펠드 국방장관에게 당부했다는 말은 미국 국방장관과 한국의 상대가 적절한 날짜를 잡기로 결정했다고 통역됐다. 전작권 관련 발언이 그렇게 느슨하게 전달돼서는 안 됐다. 또 저 기자가 노 대통령께도 질문 했느냐는 부시의 질문을 통역은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되었느냐고 전했다. 이에 노 대통령은 부시에게 “대답을 잘 하셨습니다”라고 했고, 한국 측 통역은 이를 영어로 통역했다. 부시는 얼떨결에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해 주면 좋겠다고 까지 나갔다. 외국인 기자들이 이런 어색한 장면에 와-하고 웃어버렸으니 두 정상이 망신을 당했다고도 볼 수 있다. 평화적 해결을 바라는 5개국을 평화적 동맹의 5개국, 핵무장 국가의 위협 인식을 핵무기 확인, 김정일이 핵무기 계획을 포기하면 더 좋은 길이 있다는 것을 제(부시)가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엉뚱하게 옮겼다. 심지어 6자 회담을 통해 북한에 전달한 메시지는 6자 회담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둔갑했다. 지난해 라이스 장관 발언의 오역 후 우리 외교부에서 미국의 통역은 영원한 숙제라고 토로했지만, 문제는 미국 정부가 통역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데 있다. 미국 제일주의, 영어 제일주의에서 나온 무심함을 버리지 않는 한 오역은 계속될 것이다. 미국 내에서 실력과 경험을 겸비한 한국 출신 미국 시민권자를 찾지 못한다면 관례를 깨고 차라리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통역사로 근무하는 통역대학원 출신들에게 통역을 시켜야 비로소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끝)
이 기사는 한미 외교가의 화제가 되었고,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번역을 거쳐 워싱턴 국무부에 보고되어 한국어 통역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워 L씨가 국무부에 스카우트되는 계기가 되어 그때부터 한미간 오역바람이 잦아들기 시작했다는 풍문이 있으나 확인할 길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사상최초의 김정은과의 회담에서 기대에 못 미치면 회담장을 떠나겠다고 했다. 실패한 회담의 경우 흔히들 원인분석을 하면서 “통역이 잘못 됐다”고 통역사를 희생양으로 만들기도 한다. 아무쪼록 그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이번 회담에서 양측의 통역사는 신중하면서도 매끄럽게 임무를 완수해주기를 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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