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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말씀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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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9-06 17:16 조회1,5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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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곽에서 노태우대통령의 출장통역을 하다가 1990년 말 공보비서관으로 발령받고 청와대에 입성했을 때 공보수석비서관은 고교 선배 이수정씨였다. 그는 서울대생 시절 4/19 시국선언문을 작성한 문필가였다. 비서관들이 써올린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하며 거의 다시 쓰다 시피했다. "이 수석은 부하의 초안을 친애하는 국민여러분이라는 첫 문장과 감사합니다라는 마지막 문장만 빼고 다 고친다" 고 악명이 높았다.

오후 6시 공식 업무시간이 끝나면 그는 초안을 쓴 담당 비서관을 데리고 청와대 인근 청진동 등에서 저녁을 먹고 사무실로 복귀한다. 모든 전화를 사양하고 사무실 냉장고에서 당뇨병의 인슐린 주사를 직접 팔뚝에 주입한 후 초안 작성 비서관을 앉혀놓고 연설문을 다시 쓰기 시작하면 밤 12시를 훨씬 넘기기가 다반사였다. 새벽까지 쓰다가 해장국을 먹으러 다시 나오곤 했다. 컴퓨터는 커녕 워드프로세서도 아니고, 메모리 기능도 없는 타자기만 있던 시절 여직원이 타자를 치기 위해 밤새 대기했다.

이 수석이 몽블랑 펜이나 싸인 펜으로 끄적인 글과 초안에서 살아남은 구절을 가위로 오려 군데군데 스테이플러로 찝은 연설문은 넝마같았다. 필자야 통역이 전공이라 몇 번 불려가지 않았지만 지원군으로 참여한 하루는 이 수석이 줄담배를 피우며 "내 목은 굴뚝"이라 푸념하던 기억이 난다.

1991년 유엔 연설문에서 "대포를 녹여 쟁기를 만드는 날"이라는 문구를 위해 몇 번이나 고쳐쓰던  기억도 있다. 메모리 기능도 없는 타자를 치던 여직원이 새벽에 실수로 밤새 친 내용이 다 날아가버린 것을 발견하고 마구 울던 기억도 난다. 어쨌든 노태우 대통령은 연설 내용에 큰 신경을 썼고 이수정 수석을 신뢰했다. 그를 승계한 서울대 정외과 출신의 김학준 수석은 꾀돌이라 그런 고생은 사서 하지 않고 적당히 연설문을 써냈다. 

2003년 청와대를 접수한 상도동 세력은 나와는 다른 언어를 쓰고 있었다. 동아일보 출신의 이경재 첫 공보수석은 민주투사의 언어를 구사했고 연설문도 그렇게 썼지만 이수석만큼 문장에 집착하지는 않았다. YS도 선이 굵은 연설을 원했지 문장을 일일이 따지지는 않는 듯 했다. 해군사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는 '나는 걸음마보다 수영을 먼저 배웠다"는 문장을 꼭 넣어라는 식이었다. 내가 다른 언어를 쓰는 청와대를 떠나게 된 후에는 대통령 연설에 대한 나의 관심도 멀어지기 시작했다.  (계속)           



 

 
 
 

곽중철 (2016-09-09 17:52:38) 
 
이수정 수석은 1940년 생으로 나보다 13살 선배지만 향년 60세로 너무 일찍 별세했다. 지병인 당뇨때문이 아니라 잠시 입원한 병원에서 폐렴에 감염되어 돌아가셨다한다. MBC 전무로 있다가 연설을 중요시한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공보수석으로 발탁되어 약 3년을 연설문 작성에 매몰되어 있다가 제2대 문화부 장관으로 1991년 12월부터 93년 2월까지 2년 여 재직했다. 그의 전임, 초대 문화부 장관이 이어령이었다.
이 수석은 절대 큰 소리를 내지않는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차가운 지식인이었다. 모르는게 없는 사람으로 주위에서 허튼 소리를 하면 즉시 잘못을 지적했고, 부하 비서관의 어설픈 연설문 초안을 가차없이 '수정'했다. 그런 성격이 자신에게는 독이 되어 건강을 해쳤는 지도 모른다. 어지간한 저서는 그의 성에 차지 않았다. 연설을 쓸 때, 그처럼 비서관들을 몰아부치는 완벽주의가 나은지, 어느 정도는 놓아주면서 '좋은 게 좋은' 식으로 하는 게 나은지는 알 수가 없다. 전두환대통령의 공보수석이었던 필자의 이종사촌형인 최재욱은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명문장가였지만 연설문을 쓸 때 이수석만큼 까다롭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1983년 아웅산에서 머리위로 폭탄을 맞았지만 아직 건강하게 생존해 있다. 76세다. 이수석의 명복과 최수석의 장수를 빈다. 
 
 
 

곽중철 (2016-09-09 18:11:09) 
 
김대중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을 쓴 강원국씨는 2014년 [대통령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라는 두 권의 저서를 냈고, 그의 뒤를 이어 노무현의 말씀을 썼던 윤태영 부속 실장은 금년 8월에 [대통령의 말하기]라는 저서를 냈다. 지난 여름 이 3권의 책을 모두 독파했는데 배울 점이 많았다.
필자가 2014년 5월 모 일간지에 [우리나라에 名연설이 없는 이유]라는 글을 기고한 바 있는데 위 두 사람이 읽었다면 섭섭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의 말과 연설은 아무리 내용이 좋고 혁신적이라고 해도 표현방식이 시인 고은이 꼬집었듯이 '대통령스럽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특히 그의 경상도식 억양과 적나라한 말투는 필자도 큰 거부감을 느껴 그의 삶의 방식마저 받아들일 수 없게 했다. 지난 여름 위 세권의 책을 독파한 후에야 노무현 대통령의 명복을 빌 수 있게 되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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