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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도 성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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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퍼옴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2-01-29 00:00 조회2,4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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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번역도 성차별......김대식




 물리학자들은 자주 대칭성을 따지며 때로는 아예 사물을 확 뒤집어보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언어는 참 재미있다.

“맥주 한 잔 더 하겠소?” “아니요.”

신경숙의 장편소설 ‘바이올렛’에 나오는 대사다. ‘하겠소’ ‘사랑하오’ ‘사랑했었소’ 등은 남자 캐릭터에게 주어지는 문어체적이며 번역문학적인 표현이다. 반면에 “저는 파리를 절대로 잊지 않을게요”(「카사블랑카」 중 잉그리드 버그만의 대사) “이제 집을 나갈까 해요”(「인형의 집」 중 노라의 대사)는 여자 주인공의 대사를 우리 식으로 ‘여성답게’ 번역한 것이다.

“난 파리의 추억을 영원히 기억할껴!”(잉그리드 버그만) “이 00야, 너 같은 놈 하고는 다시 안살아!”(노라)가 실제 창작 의도에 더 가까울 수도 있는데 말이다.

존댓말이 없는 영어문화권이나 유럽권의 소설과 영화 등이 우리말로 번역될 때 지겹도록 등장하는 것이 남자주인공의 어정쩡한 ‘사랑하오’이며, 이것도 한번 같이 자고 난 후에는 아예 반말로 바뀐다. 물론 여자는 계속 존댓말이다. 번역문화와 안방극장 모두에서, 남편과 아내가 나이가 좀 지긋하면 여자는 무조건 존댓말을 한다.(영화 ‘나 홀로 집에’나 ‘전원일기’를 보라!)

우리 나라에서도 이제 부부와 연인 사이에 서로 반말을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문화와 소설에서는 이런 추세를 아직까지 전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말의 이중구조는 남녀 평가의 이중구조로 바로 이어진다. 우리 나라의 여성차별문제는 ‘말의 대칭성’에 의외의 해답이 있을 수 있다.

 ( 김대식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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