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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TIF9---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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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1-27 17:46 조회6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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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TIF9---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1.    반기문 총장: 개막식 축사 후보로 제일 먼저 떠오른 분이 반 총장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을 통역했고, 국회의원을 거쳐 한국외대 석좌교수로 있는 박진 교수께 부탁해 축사를 의뢰했다. 박의원은 내가 청와대 경제문고 비서관실을 물려준 인연도 있고 딸이 최근 우리 통역대학원을 졸업하기도 했다.  반 총장 비서실장 최성주 대사를 통해 총장 사무실로 요청공문을 보냈고, 후임 비서실장 김봉현 대사께 전화로도 요청했다. 총장의 바쁜 일정 때문에 확답을 받지 못하다가 아무래도 영상메시지로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고 내가 직접 15분가량의 연설문을 작성해 전달했다. 연설문이 맘에 드셨던지 3번 연습을 하셨다고 했다. 힘찬 목소리로 자구 하나 고치지 않고 열심히 읽어 영상을 보내주셨다. 노익장이었다. 직접 못 간다고 사례금도 받지 않으셨다. 앞으로 반 총장 팬이 되기로 했다.

 

2.    이어령 교수: 통대 한중과 황지연 교수가 제안해 그의 지인을 통해 축사요청을 하니 긍정적인 반응이 왔다. 그러나 암 투병 중인 그이 건강이 문제였다. 멀리 출타를 할 수 없어 힘들겠다는 통보에 역시 영상연설로 방향을 틀었다. 7211시 평창동 영인문학관 자신의 사무실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 희망자가 없어 내가 직접 운전해 가기로 했다. 한일과 2학년 이운영(한일과 1기 이주익/이희경 부부 딸) 학생에게 촬영 및 편집 기사 섭외를 부탁해 별도로 오도록 하고 나는 평소 이어령 교수를 흠모했다는 홍설영 교수와 플라자 호텔서 만나 평창동으로 차를 몰고 갔다.

 

15분 대기 후 나타난 이 교수는 환자 같지 않았다. 자신은 그게 문제라면서 평생 해 온 강연만 시작하면 힘이 나신다고 했다. 나는 그와의 인연을 언급했다. 서울 올림픽 조각공원 건설 시 조직위에서 회의를 함께 했고 이대 재직 중 이대 통대 10주년 기념식에서도 뵀다고 했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원고 없이 꼬박 한시간 동안 언어와 통역얘기를 하시다가 마지막 15분에 요약을 할 테니 그걸 쓰라고 하셨다. 관록이었다. 12시 반쯤 녹화가 끝나자 기분이 좋으셨든지 점심을 먹으러 가지고 했다. 내 차에 우리 3명이 타고 그의 차를 따라가 가까운 동화 킴즈 호텔 코지 레스토랑으로 갔던 것 같다.

 

1시간 퓨전으로 점심을 먹는 동안에도 그는 강연을 계속했다 3명의 청중이 맘에 드시는 듯했다. 당신이 계산을 끝내고 차를 타실 때 이별을 고했다. 부디 장수하시라고

 

그 후에 신문과 TV에 출연하실 때도 비슷한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별세 전에 만난 후학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영광이다. 혹자는 그가 말장난만 한다고 하지만 그런 말장난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그는 석학이었다. 사례비도 받지 않아 APTIF9 개막 축사는 모두 무료로 끝낼 수 있었다. 그의 축사를 한영 통역으로 들은 해외 연사들은 그는 누구냐? 축사내용이 범상치 않다. 번역해서 보내 달라고 했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3.    데보라 스미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 번역으로 맨부커 상을 받은 데보라는 어찌 보면 APTIF 행사에 꼭 맞는 상징성이 있었다. 또 그는 우리학교 용인 캠퍼스에서 특강도 하고 있어 이멜을 몇 번이나 보내고 직접 만나 각별한 부탁을 했으나 수락-거부-수락을 거쳐 결국 거부를 했다. 영국인들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그 후로 그는 한국에서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약발이 다했음을 자각한 것인가?

4. 우리에게 포럼개최를 종용했던 중국번역사협회가 막판에 국내 사정을 이유로 회장부터 불참이라는 통보를 해왔을 때 나는 분노했다. 그 결정의 부당함을 조목조목 나열한 항의 편지를 이메일로 반복해서 보냈고, 그걸 인정한 중국협회가 찬조금으로 20만 위안(2,000만원 상당)을 보내 급한 불을 끄고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3년 전부터 졸업생들에게 호소해 10만원씩 걷은 5,000만원이 있어 든든하기도 했다.  

5.    행사 폐막식의 대미를 장식한 나의 폐회사에 제목을 붙인다면 [노 통역사는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숭상한 인천 상륙작전(Operation Cromite)의 맥아더 장군이 1951년에 한 미국 의회 고별 연설을 흉내 냈는데 일부 해외 참석자들이 감동했다고 했고 제네바 세계지적재산권기구 WIPO의 영국인 발표자 Geoffrey Westgate최고의 연설이었다고 몇 번이나 칭찬했다. 정신차리고 보니 일개 통역사가 한 시대를 풍미한 미 4성장군과 자신을 비교, 언급하다니 語弊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쨌든 "Old interpr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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