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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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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6-24 14:32 조회6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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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준 선물?

 

20197월말 20년동안 학교 연구실에 쌓아 두었던 짐을 빼 종로에 얻은 사무실로 옮겼다. 버리고 또 버린 짐이지만 그래도 많아 보여 1톤 트럭 두 대를 불렀는데 한 대면 충분했을 거라고 트럭 기사가 웃었다. 1톤 트럭의 크기도 모르고 65살이 된 것이다.

 

일 중독이라는 평을 들으며 직장과 일에 매달렸던 인생이 과연 어떻게 달라질까 두려워하면서 은퇴생활을 시작했다. 휴일도 없이 나갔던 학교 대신 집에서 가까운 사무실로 출근하고 보니 남는 시간이 많아져 하루 두시간 이상은 4년 가까이 나간 헬스클럽에서 더 열심히 운동을 하기로 했다. 그래야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고 작정했다. 혼자 사무실에 있는 동안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그러나 40년을 뛰며 생각한사람이 갑자기 깊은 생각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작년 말 부친상을 치르고 나자 지난 20여년 관여했던 번역감수 일이 거짓말처럼 종료되었다. 부업처럼 번역을 했던 후배, 제자들도 허탈하게 웃었다. 매일 1시간씩 투자했던 일이 없어지니 금단현상이 나올까 걱정도 됐다. 어쩌랴, 세상에 변치 않는 일은 없는 법. 무슨 수가 나겠지.

 

그러나 더 큰 함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그나마 새로 잡혔던 외부 특강이 연기되고, 학교 강의는 개강이 2주일 연기되더니 집에서 화상으로 하라고 한다. 한마디로 세상과 떨어져 사람을 만나지 말라는 것. 이런 형벌이 있나, 인간의 잘못이 그렇게 컸나?

 

은퇴 후 안 그래도 만날 사람이 적어 졌는데 그나마 만나지 말라니, 멘붕이 왔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난 그래도 은퇴한 몸이지만 한창 뛰어야 할 후배들은 오죽   하랴 생각하며 맘을 달랬다. 이상한 세상이 와 있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동안 시간을 보냈던 헬스 클럽이 326일부터 45일까지, 다시 19일까지 문을 닫았다. 시간이 더 남지만, 사무실에서 유튜브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걷기를 시작했다. 춘추관장 시절 출근 전 산책했던 삼청공원부터 시작해 북촌을 거쳐, 말머리 고개에서 숙정문까지 등산을 하고 감사원 뒷길로 성대 입구까지 버스를 타고가 성북동도 가보고 요즘 뜨는 대학의 캠퍼스를 구석구석 둘러봤다. 하루 평균 3시간을 걸으며 온갖 생각을 하고, 옛일을 반추했다. 코로나 아니면 불가능한 수확이었다.

 

동생과 하숙 했던 명륜동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어떤 날은 명륜동에서 창경궁과 창덕궁을 찍고, 종로 을지로 충무로를 거쳐 청계천을 몇 번이나 왕복했다. 사무실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남산에 올라 남대문 시장으로 내려오기도 수차례 반복했다. 그렇게 한달을 걷고 나니 발에는 족저근막염이 재발해 있었고, 헬스클럽이 다시 열리니 다행이다, 죽으란 법은 없다고 다시 수영에 매달렸다.

 

유튜브를 프리미움으로 올리고, 넷플릭스에 이어 와챠플레이 채널까지 구독하고나니, 시간 때울 염려는 줄어들었다. 쿠엔틴 타란티노, 마틴 스코세지의 영화를 섭렵하고 이창동의 영화들도 다시 보았다. 좋았다. 어릴 적 보았던 카우보이 영화들도 보면서 옛날을 추억할 수 있었다. 은퇴 전이나 코로나가 없었으면 못할 일들이었다. 아침마다 신문을 정독하면서 명심할 말씀이나 정보는 따로 모아두고 있다. 치매를 예방하는 일도 겸해서….

 

1주에 한번 있는 통대강의도 더 많은 대비를 했고, 현역시절에는 소홀했던 의료통역 강의도 직접 연구하며 준비했다. 가끔씩 도둑처럼 주문이 들어오는 번역이나 특강, 심사업무를 하다 보니 밥 먹을 예산은 바닥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 6:26)

 

Look at the birds of the air; they do not sow or reap or store away in barns, and yet your heavenly Father feeds them. Are you not much more valuable than they? (Mt 6:26)

 

코로나가 잠잠해지는 날까지 모든 걸 하늘에 맡기고 담담하게 살아야지, 욕심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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