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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1983년 IPU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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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8-11 08:48 조회4,296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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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IPU의 추억

 

내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서울에서 처음 동시 통역에 임한 회 의는 83 9월 말 여의도 국회 의사당 본회의장에서 열린 20차 국제 의원 연맹(IPU) 총회였다. UN 총회장처럼 회의장 정면을 바라보면 서 오른쪽 2층 높이에 통역 부스 시설이 설치되어 있는데 영어, 프랑스 어, 스페인어, 독일어, 아랍어와 한국어 6개 부스가 준비된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IPU 본부가 있는 제네바에서 10여 명의 전속 통역사가 서울에 왔는데, 유럽의 전문 통역사 그룹이 서울에 온 것이 이 때가 처 음일 것으로 생각된다.


IPU의 공식 언어는 영어와 프랑스어이기 때문에 기타 언어 특히 주최국 언어인 한국어는 그 중요도가 떨어진다. 한국 의원들도 대개 영 어로 연설하기 때문에 한국어 부스는 영어를 이해 못 하는 한국인 참 석자들에게만 소용이 될 뿐이다. 다시 말해 한국어 부스가 없어도 전 체 회의의 진행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뜻인데, 이는 서울에서 열 리는 거의 모든 대규모 국제 회의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파리에서 영어, 프랑스어를 모두 공부한 탓에 두 언어가 공용 어인 IPU총회에서 동료들보다 유리했다. 회의가 막바지로 치닫던 10 9일 한글날 아침 랑군 폭파 사건의 엄청난 소식이 전해졌고 IPU측 은 특별 회의를 소집했다. 이 회의는 조사(弔辭) 경연장으로 변했다. 북한을 비난하면서 고인들의 명복을 비는 구슬픈 조사가 계속되자, 통 역사들의 목소리도 비장감에 쌓였다.


다시 내 통역 차례가 되자, 인도 대표가 연단에 올랐다. 외국인 중 영어 발음이 제일 알아듣기 힘든 것이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쪽 사 람들이다. 그들은 모음을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몇 배나 빨리 발음해 서 상대방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또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만큼 영 국 문학 특히 셰익스피어를 많이 인용한다. 아니나 다를까 인도 대사였던 고 이범석 외무부 장관을 애도하던 인도 대표가 갑자기 셰익스피어의 우정에 대한 구절을 빠른 속도로 인용하기 시작했다. 기습을 당 한 나는 그 인용구를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셰익스피어의 말을 .......” 이라고 통역을 시작한 나는 얼떨결에셰익스피어의 말을 ... ... 인용할 필요도 없이 그의 죽음은 .......” 이라고 넘겼다.


뒤에서 대기하던 동료들은 킥킥거리며 웃어대었고, 회의가 끝난 후 에도 화젯거리가 되었다. 나의 목소리가 너무 슬펐던지 회의장에서 취재하던 기자 한 사람이 통역실로 올라와정말 실감난다.”고 격려해 주고 내려가기도 했다.


이 때의 경험을 살려 나는 올림픽 조직위에서 근무하던 86 4월 제 4차 국가 올림픽 연합회(ANOC) 총회를 위해 18명의 외국인 전문 통 역사들을 고용, 서울로 불러와 함께 일하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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