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통역학교 ETI의 추억 0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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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11-23 21:45 조회1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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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통역학교 ETI의 추억 04-03-05
케리 미 민주당 대통령후보의 부인이 유엔 사무총장인 코피 아난과 스위스 제네바의 통역대학원 동기생이고, 유엔 통역사로 일하던 1966년, 미래에 미국 상원 의원이 될 세계적 토마토 케첩 회사 집안의 외아들 존 하인즈와 결혼하면서 미국인이 됐다는 기사를 보고 스위스 통역학교 ETI 가 새삼 기억에 떠오릅니다.
우리 통대 출신으로 ETI에서 수학한 사람은 둘이 있는데 현재 BK 사업단의 수주담당 상임연구원으로 있는 최용웅 씨와 외대 불어과에 재직 중인 윤석만 교수입니다.
최용웅 연구원은 통대 한불영과 1기(나는 한영불과)로 입학해 80년 9월 국비 장학금을 받아 제네바 통역학교 (ETI)로 갔습니다. 그 때 같이 갔던 후배가 외대 불어과의 윤석만 교수. 파리 통역대학원에는 저와 세 여학생이 함께 갔습니다.
최 형과 저는 기혼이라 부부 동반이었지요.
도시와 학교는 다르지만 3개언어 통역이라는 Mission Impossible의 어려움은 같았을 겁니다.
낯설고 물설은 유학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했던 81년 12월 말 성탄 휴가를 맞은 우리 부부는 제네바로 동료 유학생들을 찾아 갔습니다. 생긴지 얼마되지 않은 TGV를 타고 갔읍니다.
제네바 호수(일명 레만 호)의 공기는 속이 시릴만큼 시원했지만 윤 후배는 모터 자전거 타고 가다 넘어져 다리를 크게 다쳐 목발을 짚고 있었습니다.
최형은 우리를 같은 제네바 대학 기숙사에 투숙시켰는데, 그 기숙사도 파리 대학촌(Cite Universitaire)의 기숙사보다 훨씬 깨끗했고, 통역대학원이 있는 하얀 눈 속의 제네바 대학도 파리 대학들의 캠퍼스보다 훨씬 넓고 깨끗했습니다. 최형은 우리 부부를 중고 벤츠 자동차에 싣고 눈쌓인 알프스의 몽블랑 등을 구경시켜주었습니다.
한달 500 미불이라는 장학금이 부부 생활에는 모자라 최형은 제네바 유일의 한국 식당 <아리랑>에서 서비스 아르바이트(demi-debarasseur)를 하고 있었습니다.
성탄 이브에 최형 부부는 우리 부부와 윤후배를 아리랑 식당에 초대했습니다. 식당은 성탄 휴가에 휴업 중이었고 한국인 주방장이 가난한 유학생들을 위해 냉장고를 열어 젖히고 한 껏 솜씨를 발휘했습니다.
1년 반만에 눈으로 덮인 레만 호수를 배경으로 만난 통대 1기생들은 오랫만에 먹는 고급 한식과 좋은 술에 취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지요.
거나하게 술이 오르자 우리는 한 사람씩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는 물론 기타 반주나 노래방 기계도 없었습니다. 한국에서도 기껏해야 젓가락 반주에 생노래였지요. 신세대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생목소리로 애창곡의 가사를 2절까지 모두 외워 부르는 당시 우리들의 노래는 현재 화면에 뜨는 가사를 보면서 쉽게 부르는 노래방 노래보다 훨씬 힘들었던 만큼이나 더 낭만적이고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날 밤 최형은 그의 영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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