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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노태우와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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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5-03-02 18:59 조회3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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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노태우와의 인연

 

1983년 파리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모교인 한국외대 통역대학원에 적을 둔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청와대 의전비서실의 부름을 받고 청와대로 올라 갔다청와대는 내게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그럴 것이 초급장교 시절 1977 1월부터 1978 6 1년 반 동안 청와대 경호실 정보처 요원으로 차지철 실장을 위해 영자지 번역을 했던 경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용이 정지된 청와대 구 본관에서 나를 맞이한 사람은 당시 의전 수석 비서관 김병훈씨였다.


 ((전 청와대수석 김병훈씨 입력 1998.02.21

 

청와대 의전수석을 지낸 김병훈씨가 199820일 상오3시 고대안암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65. 김 전수석은 1980년부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의전수석을 역임하고 91년부터 미 버클리대 교환교수를 지냈다. 유족은 부인 김종순씨와 외아들 항균(35·재미). 발인은 24일 상오 8. 장지 경기 포천군 포천읍 봉교리 천보묘원.)) 


김수석은 간단한 인사 후 내게 짧은 통역을 시켜보고, “祖國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번역할거냐고 물었고, 나는 “Fatherland”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 후 그는 당신이 전두환 대통령 통역을 전담하고 있는데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니 청와대에 근무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무심코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에 막 생기기 시작한 통역시장을 좀 경험한 후 생각을 해보겠다고 했고, 그것이 그와 전대통령과의 인연의 끝이었다. 나는 전대통령과도 구면이었던 바, 첫 인연이 아름다웠다면 김 수석의 제의를 언뜻 받아드렸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았다.

 

1977년 가을, 대한민국 육군 중위였던 필자는 어느 가을날 토요일 대통령 경호실 아래에 있던 경북궁 내 연병장에서 국기하강식에 참석하기 위해 운동장의 우측 계단에 도열해 있었다. 하강식 사열대의 병력 사열자는 차지철 경호실장, 병력의 지휘자가 바로 작전차장보(Deputy Assistant Operation Chief)”라는 육군 소장 전두환이었다.


내가 그 전날 과음때문이었는지 흔들거리는 모습이 전장군의 눈에 거슬렸고, 하강식 후 그의 사무실에 불려갔다. 그의 방에 들어가서 거수 경례를 하니 행사 후 복귀해 군화를 벗고 있던 그는 자네는 군인이라며?”하면서 나를 노려보았고, 그 때 받은 인상이 6년 후까지 지속되었기에 김수석의 제안에 언뜻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차라리 내가 청와대의 분위기와 전대통령의 인격을 몰랐다면 생애 두 번째 청와대 근무제의를 넙죽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남은 인생의 모든 것이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1987 2월까지 그를 통역하면서 1983년의 버마(미얀마) 사태도 함께 겪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1978년에 전두환의 후임으로 온 그의 동기생 노태우 소장과의 오랜 인연은 없었을 것이고 올림픽청와대 공보비서실—YTN—모교 임용의 노정도 없었을 것이다. , 인연이여, 인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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