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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올림픽과 양세훈 대사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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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5-09-08 10:19 조회3,595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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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전직 외교관 양세훈 씨가 최근 출간한 <장춘에서 오슬로까지(기파랑)>라는 회고록에서 발췌한 겁니다(248-256쪽). 양세훈 씨는 제가 올림픽 조직위에 근무할 때 (국제) 국장으로, 직속 상관으로 모시던 분인데, 우리 대학원 한일과 21기 졸업생 양수지 양(도쿄 로레알 근무)의 부친이기도 합니다. 저는 대학 졸업 후 10번이나 직장을 옮겨 다녔기 때문에 어느 직장에서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양 국장의 회고록에 등장하는 제 모습에도 <내가 그랬었나?> 하고 추억에 잠깁니다. 여러분도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일기를 쓰든가, 매일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세요. 아니면 다 잊어버리고 남들이 자기 일을 기억해주는 일이 일어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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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 서울올림픽 나는 국제올림픽위원회 회의가 열리는 로잔느에 가있는 한국대표단에 합류했다. 회의장 호텔 한 쪽 귀퉁이에서 한국말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유럽주재 한국 특파원들이 한 사람 (장웅 북한 IOC 위원)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난 말이오. 서울에서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게 잘못된 결정이라고 생각하오, 조국의 분단을 조장할 뿐이오.” “그게 왜 분단조장입니까? 우리민족의 자랑이고 또 분산주최를 통해 민족이 화합하는 길이 되지 않겠습니까?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맙시다.” · 그와 특파원들 간에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는 수적으로 열세였지만,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정치적이라고요? 그건 남쪽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거 아니요? 우리 공화국 사람이 말 한마디 해도 정치적으로 몰아 부치는 건 그 쪽이 아니요?’ “지금 선생님 발언이 분단 어쩌고 하시는 것이 정치적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눈에는 내가 정치적으로 보이겠지요. 여기 서있는 것, 말하는 것, 밥 먹는 것, 자는 것, 다 정치적이라고.” “하, 하, 하, 하.” 특파원들이 재미있다고 웃어댔다. 그는 특파원들 틈에 끼어있는 나를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선생님은 첨 보는데?’ 나는 얼떨결에 인사를 했다. “저는 영자신문 기잡니다.” “아, 그래요?남조선 영자신문 기자는 처음인데.” 특파원들이 일제히 나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한국대표단은 리셉션에 참가하게 되어, 다른 나라 국제올림픽 위원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서울올림픽에 대해 질문도 많고 의문도 많았다. 특히 앞으로 한국과 북한과의 관계가 어떻게 진전되어갈지 무척 궁금해했다. 한국대표단은 우선 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된다는 사실에 대해 더 이상 의문을 가지거나, 장소 변경 논의 같은 것이 없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이 선결 과제였다. 제네바 주재 이 대사가 위원장 일행을 관저에 초대했다. 저녁을 먹고 난 위원장은 이 대사에게 국제올림픽위원회 사마란 위원장과 긴밀히 접촉하고 지낼 것을 부탁했다. 

김포공항은 여전히 주위가 어수선하고 분주한 모습 그대로였다. 공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무표정하고 무뚝뚝한 태도도 마찬가지고, 공항청사 냄새도 한결같았다. 택시 역시나 불친절했다. 더구나 택시 안에서 형언할 수 없는 퀴퀴한 냄새까지 났다. 서울에서 올림픽을 치르려면 개선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난 서울올림픽 대표단의 자격으로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점들을 느끼고 있었다. 올림픽조직위원회는 군대에서 장교로 근무하다 제대했거나 종합상사에서 온 사람들, 공채나 특채로 들어온 사람들, 정부부처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조직위원회 국제국은 우선 각국의 정부조직과 올림픽조직위 현황, 생활, 음식, 문화, 습관, 출입국 규정, 세계테러 단체 목록 둥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올림픽이 개최될 때까지 준비하거나 점검해야 할 목록과 일정표도 작성했다. 경기장의 규격, 조명, 수영장 물의 온도들이 국제규격에 맞느냐 하는 것도 점검목록에 포함시켰다. 한국의 건설업자가 반드시 국제 규격에 맞도록 설계한다는 확신을 할 수 없었다. 

 

로잔느에서와 같이 곧 동베를린에서 열리는 국제올림픽위원회 회의 때에도, 서울올림픽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위원들을 의식해서 장소변경 논의에 종지부를 찍고, 서울을 확정시키는 것을 우선 목표로 정했다. 조 사무총장은 방대한 국제국 문서를 비교적 자세히 검토하고 난 후 말했다. “국제 업무의 윤곽이 보이는군. 그런데 동베를린이라는 적지에서 장소변경 논의에 쐐기를 박자는 건 너무 야심적이지 않소? “북한의 활동이 자유롭고 공산국가끼리 통하는 그곳에서 맞붙는 자세로 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일단, 위원장께 브리핑합시다.” 

 

날이 갈수록 조직위원회는 새로운 부서가 생겨나고 직원도 늘어갔다. 이질적인 사람들이 새로운 집단을 형성해서인지 여기저기서 불협화음이 일었고, 각자 일에 대한 생각과 마음가짐이 달라서 일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오로지 애국심과 열성만이 무기였다. 건설공사만은 한국인의 특유한 솜씨와 빠른 스피드를 발휘해 올림픽이 치러질 경기장 공사의 완공을 앞당겨 갔다. 이것은 국제올림픽위원회와 각국 관계자들에게 확신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컴퓨터가 도입된 이래 유행어처럼 번져나간 하드웨어란 단어는 경기장의 완공으로 잘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가 문제였다. 경기 운영의 흐름, 기록, 통신체제, 출입국, 숙박, 안전 문제 등 전반에 걸쳐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가 문제였다. 국채국은 서울올림픽 준비가 일정보다 앞장서서 얼마나 잘 진행되어 가고 있는가를 반영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드디어 동베를린 회의에 참석할 대형 대표단이 구성되었다. 각 부서국장들이 대거 동베를린으로 몰려갔다. 현직 공무원 출신들은 관용여권대신 일반여권을 만들어 동베를린 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외교관 여권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주위에서 입국을 거절당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만류했지만, 나는 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위원장을 수행하는 국제국장이 신분상 지니고 다니는 외교관 여권 때문에 입국이 거절된다면,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제적인 문제로 발전할 것이라는 모험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위원장과 이병기비서관, 곽 동시통역관과 국제국장이 일행이 되어 싱가포르, 비엔나, 프라하를 거쳐 동베를린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가 탄 비행기가 멈춰 서기 시작하는데, 막 도착한 북한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우리 비행기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동베를린 공항에서 공항관리가 다가왔다. “남한에서 오셨지요?’ “네, 그렇습니다.” “이리로 오십시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자그마한 방으로 우리를 안내한 그는 여권과 비행기 표를 챙긴 뒤 말없이 방을 나가버렸다. 잠시 후 제복을 입은 여직원이 다가와 내게 여권을 내밀었다. “귀하의 입국수속은 끝났습니다. 다른 분들 것은 지금 수속 중이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가 돌아가자, 일행 중 막내 격인 곽 통역관이 말했다. “역시 국장님은 대우를 받으시네요. 외교관 여권을 인정하는 거지요.” “글쎄------.” 여권 확인 절차가 꽤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처음 우리 일행을 이곳으로 데려왔던 남자가 나타나 정중하게 여권을 돌려주면서 , 모든 입국 수속이 끝났다고 했다.

 

호텔로비에는 먼저 온 임원들과 국장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리 중 한 국장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들어오는 데 문제없었소?" 곽 통역관이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로 말했다. “문제는 무슨, 제일 먼저 나왔다 아닝교.” “그래? 다 망했군.” “뭐가요? 뭐가 망했십니껴?" “그런 거 있어.” “말해 주이소.” “국제국장이 외교관 여권을 가지고 온다고 고집 피우다가, 공항에서 곤욕을 치를 거라고 다들 내기를 했거든. 한 사람만 이겼어.” 그는 낭패한 듯 행하니 가버렸다. 

 

나는 동베를린 회의 주최 사무국을 찾아갔다. “한국대표단 국제국장입니다. 여기 동베를린에는 한국대표단 활동을 지원해 줄 현지 외교공관이 없습니다. 바로 옆 서베를린에 한국총영사가 있는데 여기 올 수 있게 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잠시 생각하더니 , 하루만 기다리면 가부 여부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대표단이 서울로 통화를 시도했는데,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동베를린은 한국과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었다. 회의 사무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서베를린 주재 한국총영사의 동베를린 여행을 허가합니다.” 서베를린 총영사는 30분도 안 되어 나타났다. 호텔 현관 밖에는 외교관 번호가 붙은 차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힐끔힐끔 태극기를 보았다. 대표단 사람들도 총영사를 보고 놀라워했다. 일부러 호텔 앞 주차장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러 가는 사람도 있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 회의장에서 서울올림픽 준비 현황에 관한 비디오를 상영했다. 비디오 상영이 끝난 뒤 어떤 반응을 보일까 초조하게 기다리던 대표단은 상영이 끝나고 장내에 불이 들어오자마자 터져 나온 우레 같은 박수소리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국제올림픽 위원장이 지금 서울은 회의 준비를 잘 해나가고 있다고 했다. 그 말 한마디를 끝으로, 올림픽 서울개최는 확실시 되었다. 너무 싱겁게 대회 개최지 문제가 마무리 지어지자, 대표단은 오히려 허탈해졌다. 처음부터 아무 문제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저녁에 열린 리셉션에서 한국에 대한 올림픽 위원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유럽계 위원들은 한국의 올림픽 준비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데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아프리카 계 위원들은 한국의 건설공사 모습에 감탄했다. 조 사무총장이 한 손에 칵테일 잔을 든 채 말했다. “어이, 적진에서 승리하겠다더니 그렇게 됐어.” 

 

대표단은 히틀러 시대에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으로 우승한 올림픽 경기장을 가 보았다. 동베를린 시내는 비교적 조용했다. 이곳 자동차는 작고 디자인이 간단해 그저 굴러다니기 위한 성능만을 갖춘 수레 같았다. 저녁이 되면 시내는 정적에 휩싸였고, 높다랗게 서 있는 호텔만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반대로 서베를린은 화려했다. 서로 다른 정치노선이 한 도시를 무섭게 갈라놓았다. 서베를린을 다녀온 적 있는 체육부 간부가 우리들을 데리고 서베를린으로 갔다. 베를린 장벽의 중심에 선 브란덴부르크 문 옆에 설치한 동독 검문소와 서독 검문소는 서로 보이지 않도록 위치하고 있었지만, 너무나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검문소에 근무하는 병사는 여권만 간단히 보고 통과시켰다. 남북한 상황과는 너무나 달랐다. 

 

대표단은 귀국하고 위원장 일행만이 서베를린에 며칠 체류하는 일정을 잡았다.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왕래하는 차를 빌려 타고, 호텔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동독 검문소로 가서 차를 세웠다. 위원장을 차에 그냥 앉아 있게 한 채,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이 검문소로 들어갔다. 검문소 병사는 인원수만 세고 그냥 가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병사에게 말했다. “저기 타고 있는 분이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분이니 잘 봐두시오.” 그는 별로 놀라는 표정도 짓지 않고 한번 힐끗 쳐다볼 뿐이었다. 1분도 지나지 않아 서독 검문소에 도착했다. 독일주재 정 대사와 서베를린 총영사가 안내하는 대로 동독 탈주자들의 사진을 관람했다. 현지사람들은 대단한 역경을 거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나, 남북한 상황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후략) 곽중철 (2005-09-22 16:57:05) 

 

미수교국이었던 동독방문에 관한 제 기억은 노태우 위원장 부부, 이병기 비서관, 양세훈 국장 등과 탄 비행기가 동 베를린 공항에 내렸을 때 보이던 공항 간판, 그리고 비행장에 서있던 북한 비행기... 참 불안했습니다. 그리고 아군이 별로 없는 IOC 총회장에서 위원장 옆에 붙은 제가 경호원이 된 기분이었고, 호텔에서 위원장 부인이 우리 체육부장관(이영호) 부인과 주위 구경을 나갈 때 위원장이 제게 경호를 부탁해 얼마쯤 따라 다니다 헛수고로 느껴 포기하는 직무유기를 했었고... 가장 떨렸던 순간은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갈 때 Checkpoint (검문소)에서 혹시 구금되지나 않을까 두려웠던 때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동구권과 외교관계가 없었던 당시에는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세상 참 많이 변하고, 좋아진 거죠. 그 때 서독으로 넘어 온 직후 안심한 듯 웃으며 일행이 찍은 사진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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