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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번역사가 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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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6-05-16 10:55 조회4,2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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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통역사 만들기](다락원), 곽중철원장 홈페이지(www.jckwak.net), 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www.gsit.hufs.ac.kr)에서 부분 발췌, 편집.
 * 최근 모 잡지사에 의해 새롭게 "주옥같은 글"이라는 평가를 받은 기사입니다.


 "통번역사가 되는 길"
통역번역센터 소장 한영과 곽중철 교수

1. 통역사 지망생은 거듭나야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진지하게 통역을 공부해보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고생문으로 들어섰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이 문은 한가지 외국어를 배울 때보다 훨씬 더 큰 고생을 각오해야 하는 문이다. 감히 열 배 정도나 더 큰 고생이라고나 할까?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는 처음 얼마간은 재미가 있다. 열심히 하면 곧 그 언어를 마스터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어떤 외국어라도 시간이 갈수록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되지만 통역 공부를 시작해보면 어렵다는 것을 느끼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너무나 큰 벽이 눈 앞을 가로막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건 불가능한 공부가 아닌가?’ ‘영원히 정복할 수 없는 높은 산이 아닌가?’ ‘되지도 않을 공부에 괜한 노력과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 아닌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왜 그럴까? 우선 통역이란 신(神)에 도전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구약에 보면 사람들이 하늘에 닿는 바벨탑을 쌓기 시작하자 하느님이 괘씸하게 여겨 이를 막기위해 탑을 쌓는 인간들의 말을 다 다르게 해 인간끼리 말이 통하지 않게 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사람들은 의사 소통이 안돼 탑 쌓기 작업을 계속할 수 없었고 하나님은 목적을 이루신 셈이 되었다. 그 때부터 통역이라는 직종이 생겨났을 것이다. 따라서 통역의 역사는 바벨탑 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리라. 신이 금지한 인간끼리의 의사 소통을 가능하게 해야하는 임무… 통역은 그래서 엄청 힘들고 불가능해보이는지 모른다. 그래서 할 때마다 떨리고, 하면서도 등에 식은 땀이 나고, 온 신경을 다 써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하는지 모른다.

동양권 언어인 한국어와 서양권 언어인 영어 사이의 통역은 동양권 언어 사이(예:한국어-일본어)나 서양권 언어 사이(예:영어-불어) 통역보다 훨씬 더 어렵다고 봐야 한다. 언어의 배경이 다르고, 문화적 차이가 크며, 사고 방식이 판이하기 때문에 같은 언어권의 통역보다 더 긴장하고, 더 분석하고, 더 생각해야 한다. 같은 언어권 내에서의 통역보다 2-3배 더 힘들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인 통역사는 대부분 영어를 대상으로 통역하기 때문에 활동 수명이 짧아지는 지도 모른다. 한국인 통역사는 보통 30세에 활동을 시작해 40이 넘으면 활발한 회의 동시 통역계에서는 떠나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50이 넘어서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여성 통역사들도 있지만 평균 활동 수명이 짧은 것은 그만큼 작업 강도가 높기 때문이리라.
자신의 말을 직접 하는 것보다 남의 말을 내 말인 것처럼 다른 말로 옮겨야 하는 통역은 몇 배나 더 힘들다. 우선 남들 앞에서 통역을 할 때 느끼는 공포감을 영어로는 stage fright, 불어로는 trac이라고 하는데 30년 경력의 통역사도 이 공포감이 세월이 감에 따라 단지 덜 불쾌(less unpleasant) 해질 뿐이라고 하고 오히려 약간의 공포감을 느껴야 성공적인 통역이 된다고 한다. 통역을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이를 이해할 것이다.
통역사 지망생은 이 공포감과 친해지는 것부터 시작해 모든 말을 다시 배운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우선 외국어보다 모국어부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깨닫고 좌절감을 느낀다. 태어 나서부터 배운 모국어부터가 거대한 장애물로 다가오면 무력감을 느낀다. 외국어는 말할 필요도 없겠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체질을 바꾸어야 한다.
모든 말을 새로이 듣고, 새로이 느끼고, 새로이 해보는 체질을 길러야 한다. 통역을 공부하기 전 그냥 듣고 그냥 내 뱉았던 말들이 새로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 때마다 다시 사전을 찾아보고, 메모하고 암기장에 보관하여 제 것으로 만들어야한다. 한마디 말도 꼼꼼히 다시 보는 체질로 바꿔야 하는 것이다. 또 이 모든 과정에서 말이란 연설이든 통역이든 가능한 한 짧고 가능한 한 쉽게 그 의미를 전달하는 하는 것이 최선임을 깨달아야 한다.

2. 모든 말, 모든 분야에 새로운 관심을 갖자
 이 세상에 통역의 대상이 되지 않는 분야나 일은 없을 것이다. 통역 공부가 어려운 점 중의 하나는 통역 대상으로 정해진 분야가 없다는 것이다. 박사 과정을 밟는 사람은 법학이면 법학, 경제학이면 경제학 중에서도 자신이 정한 주제를 열심히 공부하면 되겠지만 통역 공부는 그렇지않다. 말 공부는 차치하고 이 세상의 모든 분야가 대상이니 도대체 어디부터 공부해야 할 지…. 아무런 장비도 없이 망망대해에 떠있는 기분이다. 머리 위로는 모국어와 외국어가 폭풍우가 되어 쏟아져 내린다. 남의 사정도 모르고.
거기서 포기해버리면 물론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인생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바다에 빠져있으면 암담하고 곧 빠져 죽을 것 같지만 그럴 수는 없다. 우선 헤엄치는 법을 조금 씩이라도 배워 나가야 한다. 필자가 공부했던 파리의 통역 대학원(ESIT)은 그 교육 방법이 “Swim or sink”, 즉 스스로 헤어나오든지 아니면 빠져 죽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선 물 위로 고개를 빼어 숨쉬는 요령을 배우고, 팔을 젓는 방법을 배우고, 다리를 움직이는 법도 배우다 보면 몸이 수면에 떠 목숨을 부지할 수는 있다. 그 다음 사방을 둘러보면 나무조각도 떠다니고, 구명 조끼가 떠내려올 수도 있다. 죽지 않을 만큼은 되었으나 문제는 어느 방향으로 나가느냐가 또 문제다. 당분간은 물의 움직임대로 무조건 헤어나간다. 이 쪽으로 헤엄쳐도 힘들고, 저쪽으로 헤엄쳐도 힘들지만 얼마 지나면 어느 쪽이 쉬운 지를 알게 된다. 때로는 풍랑도 만나고 상어도 만난다. 그래도 열심히 싸워나가면 언젠가는 어지간한 풍랑이나 상어 떼는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싹트기 시작한다. 통역에 비유한다면 ‘이제는 어떤 주제가 어떤 식으로 나와도 어느 정도는 통역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그 때가 되면 처음 바다에 빠졌을 때가 격세지감으로 다가오며 바다의 사방을 바라보며 ‘올테면 오라’는 배짱으로 자신의 방향을 정해 나갈 수가 있다. 이 시기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은 물론이다. 보통은 2년 쯤 걸리고 더 열심히 하면 1년 쯤 걸린다. 그렇지 못하면 물에 빠지거나 전진을 포기하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시기는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찾아오는 수도 있다. 외국어도 그렇지만 통역도 계단식으로 실력이 늘기 때문이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는 우선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한다. 유명한 언어학자이면서도 여러 분야에 참여해 사회활동을 펼쳤던 촘스키는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이 세상에 이해하지 못할 분야는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 통역사는 모든 분야를 골고루 이해하고 공부해 만물박사가 되어야한다. ‘지적 호기심’이 통역사의 자질 중의 하나이고 그것이 거름이 되어 훌륭한 통역을 할 수 있게 된다. 또 여러분야를 공부하고 통역을 하다보면 새로운 분야를 이해하고 그 분야의 전문가들을 알게 되는 즐거움이 덤으로 따른다.
통역사는 평생 배우고 공부해야한다. 그것을 큰 즐거움과 보람으로 알아야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통 한 분야에서 밥벌이를 하면서 일생을 보내는 데 비해 통역사는 셀 수도 없이 많은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그 전문 분야를 섭렵해 나가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그런 직업에 대한 열정(passion)을 가져야 한다. 통역을 천직(calling)으로 생각하고 나날이 바뀌는 통역 대상 분야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 그래야 통역이란 앵무새같이 남의 말이나 따라 하는 비천한 직업이라는 자괴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신의 생각에 따라 통역이란 직종은 정말 멋있고 해볼만한 고귀한 선택이다.

3. 통역사의 자세와 태도, 정신 건강
 모든 직업이 그렇지만 그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천직(calling, vocation)이라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통역은 서비스 직종이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말을 전해주어야 하는 철저한 서비스 직종이다. 말을 사랑하고, 남의 말을 듣고 그 의미를 파악하여 그 말을 모르는 사람에게 전달하는데 큰 보람을 느껴야 한다. 서비스 직종이기에 통역사의 음성은 듣기에 편해야하고, 통역사는 부드러운 말씨로 서비스해야 한다.
통역사의 말에는 공손함과 예의가 베어있어야 한다. 불쾌한 말씨나 무례한 표현, 반말조의 어조는 물론 금물이다.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내색하지 말아야 하고 연사의 말이나 논리가 마음에 들지않아도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 연사가 말솜씨가 없거나 논리가 엉망이라 통역하기가 힘들어도 불평할 수 없다. 그 시간,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할 뿐이다. 따라서 통역사 지망생들은 처음부터 ‘남의 귀에 거슬리지 않는’ 목소리와 어조를 가꾸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해야한다. 처음부터 좋은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도중에 고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통역도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생계를 위해 하는 것이지만 거기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워낙 강도가 높은 정신 노동이라 자칫하면 정신 건강을 잃을 수 있다. 인간이 언어에 문제나 장애가 생기면 정신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기 쉽다. 이에 대비하여 운동을 해 육체적 건강을 다진다거나 정신 수양을 하는 것도 좋다.
어찌 보면 통번역 만큼 답답하고 꼭 막힌 직종도 없을 듯하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말로 마음껏 펼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남이 한 말을 가감 없이 정확히 옮겨야 하니 그만큼 융통성이 없다. 그 대가로 많은 돈을 번다는 소문도 퍼져있지만 고도의 정신 노동에 대한 댓가일 뿐 부가 가치가 없어 현실적으로 통역만으로 큰 돈을 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앉아서 인터넷을 통해 엄청난 부와 가치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요즘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하고, 이 일에 남보다 적성이 맞는 사람이 우리들이다. 통번역을 공부해 그것으로 남보다 큰 부가 가치를 생산하는 일도 우리의 몫이요, 우리 개개인의 통찰력과 역량에 달려있을 것이다.

4. 남자냐 여자냐-통역사의 남녀 성비
 약 20년전 외대에 통역대학원이 설립되었을 때 신입생의 성비(性比)는 거의 50:50이었다. 20년이 흐른 지금 그것은 90:10 정도로 여학생이 많고, 통역 시장의 통역사는 거의 100% 여성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대학원에서의 성적도 여학생들이 우수하다. 왜 그럴까?

첫째, 우리의 전통적 직업관 때문에 남학생들은 통역을 1차 희망 직종으로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외국어를 잘하는 우수한 남성 인력은 우선 다른 분야를 선택해 진출한다. 적성에 맞는 직종을 찾지 못했거나 1차 직종에서 성공하지 못한 남성들이 차선책으로, 2차 직종으로 통역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도 외교관이 되고 싶었지만 고시 공부를 하지 못해 통역 대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반면 우리 사회에서 아직 남자들만큼 취업의 기회가 없는 여성들은 외국어 실력이 있으면 1차적으로 통역 직종을 선택하기 때문에 그 비율이 높아지고 남성보다 우수한 성적을 내는 것이다.
으리나라에는 남성은 가장으로서 번듯한 직장이 있어야 한다는 관념이 있는데 회의 통역사는 자유 직업, 즉 프리랜스이다. 통역 대학원을 나온 남학생들은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장을 갖지 않고 여성 동료들 틈에 끼어 통역 일을 기다렸다 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프리랜스하는 것보다 더 적은 봉급을 받더라도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고정직을 찾아 떠나기 때문에 통역 시장에 남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또 통역을 의뢰하는 발주처에서도 으레 여성을 기대하고, 남성 통역사가 나타나면 희귀동물을 보듯 놀라기까지 하게 되었다.

둘째. 앞서 말했듯이 통역이란 철저한 서비스 직종이기 때문에 고객은 여성의 서비스를 받는 것을 더 좋아한다. 특히 남성 고객들이 여성 통역사의 고운 목소리로 통역 서비스를 받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최고의 남성 고객이랄 수 있는 대통령마저도 이제 여성 통역사가 더 많이 통역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까지는 남성인 의전 수석이나 비서관들이 통역을 하면서 “대통령 각하 말씀을 어떻게 감히 여성이 통역을 하는가?”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이는 여성이 아무래도 남성보다 정치적 성향이 약해 부담없이 통역을 시킬 수 있고, 보안 유지에도 좋을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날이 갈수록 고위 정치인이나 기업 총수들도 여성 통역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질 것이다.

셋째, 태어날 때부터 여성이 남성보다 언어 감각이 더 뛰어나기 때문에 통역이라는 직업도 여성에 더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외대 통역 대학원의 경우 지난 20년간 수석 입학과 수석 졸업을 거의 여학생이 차지했고, 통역 시장에 남아있는 고참들도 거의 모두가 여성들이다. 전통적 직업관에 의해 남성이 통역일에 쉽게 싫증이나 회의를 느끼는 반면 취업의 기회가 적은 여성들은 통역이라는 직종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른 직업을 택한다 해도 통역만큼 단위 시간당 보수를 많이 받는 경우가 드물고 다른 직장을 찾는다해도 승진이나 발전의 가능성이 남성보다 크지않기 때문이다.
일터가 주로 특급 호텔 등의 국제회의장이고 회의 시간도 오전 9-10시부터 시작해 오후 5-6시 까지가 보통이며 상관이나 타인의 지시나 간섭없이 일할 수 있으니 능력만 있다면 여성에게 통역보다 좋은 직종을 찾기가 쉽지않다.

넷째, 통역이란 남의 말을 가감없이 그대로 전달하는 것일진데,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고지식하고 정직한 여성이 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테니스나 골프를 배울 경우 남성보다는 여성이 코치의 지시를 그대로 따라 단시간에 더 많은 것을 배우는 예와도 일맥 상통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통역사를 지망하는 남성이 지레 부정적 판단을 내려 공부를 포기할 필요는 결코 없다. 남성 통역사가 필요한 경우가 있고, 프리랜서로 일하지 않아도 통역을 전공한 이력만으로도 취업의 기회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아직 방송 등에서는 남성 출연자에 맞는 남자 통역사를 찾고 있고, 직장에 취직하는 경우 언어 전문가로서 조직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 또 사람에 따라 여성보다 더 언어감각이 뛰어나고 말을 사랑하는 성격을 타고나는 남성도 있다. 남성 통역사는 ‘희귀성’의 원칙에 따라 그 가치를 더욱 높이 평가받을 수도 있다. 다 ‘하기 나름’인 것이다. 남성이 통역이라는 직종에 적성을 타고나 열정을 가지고 일한다면 얼마나 보기 좋은가?

5. 통번역 분야도 전문화해야 살아 남는다.
통역사는 만물박사가 되어야한다지만 모든 분야를 다 잘 알 수는 없다. 예를 들어 IT(Information & Technology)에 정통한 사람이 약학에도 정통할 경우는 많지않다. 사람의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분야가 눈부실 정도로 빨리 전문화되고 있기 때문에 통역사도 자신의 전문분야를 개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 분야의 통역은 그 사람이라는 정도가 되면 그 통역사는 자신만의 시장을 갖고 고소득과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통역대학원에서는 어학이나 문학이 아닌 다른 학문을 전공한 사람이 그만큼 유리하다. 전자는 처음부터 다시 전공 통역 분야를 선택해야하는 반면 후자는 자신의 학부 전공을 바탕으로 통역 전공 분야를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급속도로 국제 공용어가 되고 있는 영어는 모두가 공부해야 하는 만큼 학부에서 영어를 전공하여 얻는 비교우위가 퇴색하고 있기 때문에 학부에서 영어를 전공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필자와 함께 외대 통역대학원을 나온 한 여성 통역사는 IT 분야, 특히 컴퓨터 분야 통역의 1인자가 되어 그가 통역을 하면 회의 종료 시 참석자들이 기립 박수(standing ovation)를 친다고한다. 나날이 변화하며 발전하는 정보 통신분야에서 인정을 받으며 고소득을 올리고 있는 통역사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돈벌고, 칭찬받고 얼마나 좋겠는가? 통역사도 전문화만이 살 길이다. 그런 시대가 온 것이다.

6. 신문을 보자
 통역은 현시대적(contemporary)이다. 통역은 바로 시사(時事:current affairs)이다. 바로 현시점을 떠난 통역이란 있을 수 없다. 회의에서 연사들은 바로 오늘을 이야기한다. 따라서 통역사도 최근, 혹은 오늘 있었던 혹은 오늘 일어날 일들에 정통해있어야한다. 그러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고도 쉬운 일은 바로 아침마다 배달되는 신문을 읽는 것이다. 한가지 이상의 신문을 샅샅이 다 읽어라, 스포츠 면에 난 내용을 아침 회의의 연사가 언급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오늘 서울에서 있을 음악회 얘기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통역사는 박세리, 박찬호의 경기 기록과 함께 백남준, 유진 박의 동정에도 관심을 기울여야한다,
세상 일에 무관심한 사람은 통역사를 지망할 수 없다. 통역사는 세상 만사에 눈과 귀를 기울여야한다. 그래서 신문을 보고, 뉴스를 듣고, TV를 시청해야 하는 것이다. 여유만 있다면 영자 신문을 하나 덤으로 구독해 우리말 신문과 비교해가며 읽는 것도 영한 대역에 도움이 된다. 어떤 회사에서 매일 밤 TV의 9시 뉴스를 영어 자막 처리해 달라고 의뢰했을 때 필자가 그 회사에 한 첫 요구사항은 우리 영자 신문 2개를 가판(街販)으로 배달되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9시 뉴스를 보면서 내일 아침에 배달될 영자 신문을 볼 수 있으면 한영 대역에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통역은 하루하루가 새롭다, 어제 신문은 구문이 되어버리듯 하루만 지나도 생명력을 잃는 연설도 많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몇주, 몇 달, 몇 년 전 연설로 통역 연습을 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필자는 통역 강의를 앞두고 2-3일 전에 연설문을 고르는데 당일 아침에 나온 연설로 대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만큼 통역에는 현시성이 중요하다. 학생들도 그런 연설을 좋아하고, 더 큰 학습동기를 느낀다.
신문 기사 중에서도 논리가 번득이는 논단, 기고문, 독자의 소리 등은 숙독하고 자신의 생각과 비교, 비판해보는 습관을 길러야한다. 그래야 통역 시 논리가 정연한 통역을 하여 참석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면 신문과 TV를 보지 말라고 하는 미디어 중독증을 우려하는 조언도 있지만 통역사들에게는 어림없는 말이다. CNN 같은 뉴스 보도를 통역하려면 탄탄한 역사 지식도 큰 도움이 된다. 통역사들이 갖춰야할 이모든 기본 상식을 영어로는 culture라고 부른다. 통역사라면 이 culture를 배양하는데 게을리하면 안된다.

7. TV 뉴스와 토론을 보자.
TV 뉴스는 글로 읽는 신문보다 귀로 듣는 말이기 때문에 통역사의 직분에 더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 물론 TV 기자들이 하는 말이 통역에도 꼭 맞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자들이 열심히 취재해 쓴 기사는 뜨끈뜨끈한 ‘오늘, 우리 사회의 말’이다. TV 뉴스를 열심히 보면서 어느 기자의 기사가 훌륭하고 어느 것이 보잘 것 없다는 판단까지 할 수 있어야한다. 어느 말은 잘 표현되었고, 어느 말은 잘못되었다는 평가까지 해가면서 시사와 현재의 우리말을 익히는 것이다.
TV 뉴스에 비해 각종 시사 토론은 말 잘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배우는데 큰 도움이 된다. 바로 그 사람들이 내일 회의에 나와 그런 토론을 벌일 지도 모를 일이다. 상대방이 한 말을 어떤 식으로 논박하는지. 또 그 논리는 무엇인지 주의깊게 추적하면 좋다. 또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보면 그들의 논리를 기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우리말 토론과 CNN 등에 나오는 영어 토론을 비교해보면서 그 차이를 비교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말 토론을 마음 속으로 영어로 옮겨보고 영어 토론을 우리말로 옮겨보는 노력도 바람직하다. 필자는 2001년 상반기에 시작하는 CNN 월드뉴스의 동시통역 업무를 맡고 2001년 2월에 통역 대학원을 졸업한 새내기 통역사 4명을 훈련시켜 보았다. 그들은 한달 정도 훈련을 거친 후 “지난 한달, 대학원 2년동안 배운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너무 재미있지만 너무 상식이 부족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고 고백했다. 대충 알고 있는 지식은 지식이 아니다. 확실히 알고 체득한 지식만이 통역에 도움을 줄 수 있다.

8. 남다른 노력을 하자.
통역에 입문하여 남보다 큰 실력의 발전을 보려면 남다른 노력을 해야한다. 귀찮더라도 자신에 맞는 학습법을 개발해 남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는 자만이 발전의 열매를 거둘 수 있다. 어휘력을 늘이기 위해, 말의 속도를 늘이기 위해, 표현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나는 어떤 남다른 방법으로 노력할 것인가? 동료들과 하는 그룹 스타디 외에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실력의 향상을 좌우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야 말의 바다에서 익사하지 않고 남보다 먼저 헤어나올 수 있다.
남다른 노력이란 남보다 더 많이 연습하고, 남이 쉬는 시간에 공부하며, 남과 다른 방법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판단하고, 자신에 맞는 방법을 찾아 공부하는 것이다. 2001년 2월 외대 통역대학원 21기를 수석 졸업한 이용하 군은 통역에 유리하다는 여성도 아니고, 해외에서 자란 해외파도 아니며, 대학 졸업한 지도 오래된 가장이라 우리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9. 이야기 꾼이 되자
 자신이 스스로 훌륭한 연설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연설의 통역도 훌륭히 할 수 있다. 그래서 통역학교에서는 학생들 스스로 연설을 준비해오도록 하고 그가 연설하는 동안 동료 학생들로 하여금 통역해보도록 하는 것이다. 연사와 연설에 따라 통역의 난이도가 크게 차이가 난다. 연설을 잘하거나 논리가 분명한 연사는 통역하기가 쉽고 신이 난다. 잘 쓰여진 연설은 통역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발음이 분명치 못하거나 말이 너무 빠른 연사, 그리고 논리가 없는 사람은 통역사를 슬프고 고되게한다.
동료 학생들의 통역 연습을 위해 남이 쓴 연설을 대신 낭독해 줄 때 그 임무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니며,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를 보인다. 인쇄된 연설이라고 해서 책 읽듯 읽어 내리면 통역은 어려워진다. 반면에 청중을 돌아보며 맑은 목소리와 정확한 발음으로 자신이 실제 연설을 하듯, 상대방을 납득시키려 노력하는 자세로 읽어주는 연설은 통역하기가 쉽고도 즐겁다. 훗날 통역사가 되어 실제 회의에서는 어떤 연사를 만나건 학교에서 통역할 때만큼은 좋은 연설을 천천히 읽어주는 데 맞춰 통역 연습을 해야 한다. 남의 연설을 읽어주는 것은 결코 자신이 직접 연설을 하거나 통역을 하는 것보다 쉽지않다. 통역을 가르치다 보면 남의 연설을 잘 읽어 줄 수 있는 학생이 통역도 잘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필자는 앞에서 언급한 CNN 월드뉴스 동시 통역 준비 기간에 후배 통역사들에게 CNN 방송의 영어음향을 완전히 낮추고 화면만 보면서 그 기사를 이야기 해보는 연습을 시켰다. 남이 하는 말만 통역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나름대로 말을 만들어 논리에 맞게 기사를 불러보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통역도 잘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고, 그런 필자의 생각은 옳았다. 통역사는 어차피 이야기 꾼이 되어야한다. 어떤 말이 나오든 그것을 자신이 하는 말처럼 앞뒤가 맞게 꾸며 상대방을 이해시킬 수 있는 능력---그것이 통역사의 최고 자질인지도 모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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