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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수석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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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7-04-03 15:58 조회3,6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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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종훈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를 1985년에 처음 만났다. 내가 1984년 5월 서울 올림픽 조직위에 통역사로 채용됐다가 그 해 말 조직위 국제국의 서기관급 통역안내과장이 되어 올림픽 언어 서비스 전반을 기획하고 있을 때, 김 대표는 당시 외무부에서 조직위 의전과장으로 파견된 것이다. 우리는 큰 사무실의 바로 옆 자리에서 근무하면서 역시 외무부에서 파견된 국제국장을 모시며 거의 매일 점심을 같이 먹는 등으로 친해졌다.

우리가 함께 한 가장 큰 행사는 86년 4월에 서울 소공동 롯데 호텔에서 열린 세계올림픽위원회(ANOC) 총회였는데 그는 국제 스포츠 거물들 영접에 정신이 없었고, 나는 우리나라 사상 처음으로 6개국어 동시통역을 감독하느라 동분서주했다.

여러 조직에서 근무를 하다보면 동료 직원 등 사람한테서 기(氣)를 느낄 수 있는데 나도 기가 상당히 센 편이지만 기끔 김 대표의 기가 나보다 더 센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 그의 기가 ’기 싸움’ 성격의 통상 협상에서 발휘될 줄은 그 때는 몰랐다. 우리는 총회를 앞둔 한 달 전부터는 롯데 호텔에 묵으면서 행사 준비를 했으므로 더 가까와졌다.

그는 52년 5월 생으로 나보다 한 살이 많은데 나는 대구의 경북고를, 그는 대구의 사대부속고교를 나왔다. 연대 경영학과 재학 시 외무고시에 합격한 그는 주말이면 한강에 나가 허리 힘이 많이 드는 수상스키를 타고, 평소 패러글라이딩과 스노보드 등을 즐기는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다. 그런 운동에서 기를 더 키우는 지도 모른다.

외통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59년 생이니 7살이나 적은 직속상관을 모시기가 쉽지만은 않았으리라...서울 올림픽이 끝난후 그는 캐나다, 미국 대사관 등에서 근무한 후 97년 본부 국제경제국을 거쳐 98년에는 주 제네바 공사로 나갔는데 그것이 한국사상 가장 어려운 한미 FTA의 수석협상가 경력으로 이어질 줄은 자신도 몰랐으리라...

  샌프란시스코 총영사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그를 나는 2004년 초 외통부 근처로 찾아가 만났다. 그는 백발이 성성한 중년이 되어 있었지만 그의 몸에서는 쇳가루 냄새가 났다. 그의 기는 변함이 없었다. 그가 APEC 준비 사령탑이 되어있었으므로 APEC 통역 수요를 맡겠다고 했더니 대부분 행사가 영어로 진행되므로 통역할 일이 없다고 했다. 그의 APEC 준비 보도를 언론에서 읽으며 행사 몇 달 전 위로 만찬을 마련했으나 그는 담배와 술을 끊고 있어 저녁만 먹고 밤 늦은 시간 외통부 사무실로 돌아가는 그에게 건투를 빌 수 밖에 없었다.

APEC이 큰 성공으로 끝났을 때 나는 그가 79년까지 몇 년 근무했던 프랑스의 대사 쯤으로 나가기를 빌었다. 그러나 세상은 <일꾼>을 그냥 두지 않고 그 어려운 한미 FTA 수석대표를 맡긴 것이다. 그는 이제 어느 외교관보다 언론에 더 많이 노출돼 온 국민이 얼굴을 아는 <대중성>을 갖게 되었다. 서울이나 고향에서 출마하면 당선은 따놓은 당상이다. 협상도 성공했지만 그렇게 언론에 노출되면서도 14개월동안 한번도 구설수에 오르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무공이 그만큼 깊다는 증거이리라...

그가 협상도중 남긴 가장 유명한 말은 2006년 6월 미국 커틀러 수석대표가 통상 협상이 피를 말린다며 무슨 업보인지 모르겠다고 하자 "우리는 전생에 글래디에이터(검투사)였나 보다"라고 응수한  것과  “1차 협상이 탐색전이라면 2차는 샅바 잡기, 3차는 힘쓰기, 4차는 배지기가 될 것”이라고 협상을 씨름에 빗댄 말이다. 그의 대구 사투리 액선트는 아슬아슬했지만 오랜 공직 생활로 그는 <언어의 마술사>가 되어있었다.

외무고시 8회인 김 대표는 외국산 담배 개방, 마늘 협상, 자동차 시장 개방 등 굵직한 통상 협상을 깔끔하게 마무리 해 통상협상 전문가의 명성을 굳힌 후 2005년 부산 아태경제협력체(APEC) 대사를 맡아 APEC의 성공적 개최를 이끈 외교부내 최고의 통상 전문관료로 평가받는다.

이제 그의 나이 만 55세, 나처럼 체력이 달리기도 하련만 국가는 다시 그에게 더 복잡한 대 EU FTA 협상을 맡길 지도 모른단다. 통상 전문가는 많지 않으므로. 그러나 나는 그가 이제 프랑스 대사 쯤으로 나가 조금 쉬면서 내가 파리 출장이라도 가면 한 번 만나 포도주 한잔 사주기를 빈다. 아무쪼록 계속 기를 살려 건강히 오래 살기를 빌 뿐이다. 나도 그래야겠지만....

Ambassador Kim, I am very proud of you, as most of our compatriots are...! 

                     
 



 

 
 
 

곽중철 (2007-08-09 17:2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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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본부장은 새 직책과 관련 “유엔 대사가 여섯 번째 직업인데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사전에 계획된 대로 (직업선택이) 이뤄진 적이 없고 이번도 예외가 아니다”며 유엔 대사에 임명된 것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함을 내비쳤다.

그는 자신과 함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이끌어온 김종훈 신임 본부장에 대해 “강철같은 체력, 탁월한 판단력, 모두를 벌벌 떨게 하는 개성 등 제가 닮고 싶은 면을 다 갖고 있다”면서 “깊은 연륜과 지혜를 갖고 인생의 선배이자 외교부 선배로서 등불같은 조언을 해줬다”고 추켜 세웠다.

한편, 김종훈 본부장은 취임사에서 “외교관의 특성상 어떤 사안을 볼 때 깊이와 넓이 어느 것 하나 등한시 할 수 없다”며 직원들이 전문적 식견과 넓은 시각을 동시에 갖춰줄 것을 주문했다.

아울러 그는 “원활한 업무수행을 위해서는 유관부처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면서 “평소 관계부처와의 원만한 의사 소통과 유기적 협조체제 구축.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7.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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