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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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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7-06-04 15:51 조회3,6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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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일 외대 애경홀에서 특강을 한 모 기업의 회장은 절약생활을 강조하면서 자신은 꼭 이코노미 석을 탄다고 강조해 나를 헷갈리게 했다. 저런 돈 많은 사업가도 이코노미 석을 타는데 평생 월급쟁이인 내가 비지니스 석을 넘보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라는 가책때문이었다. 여객기의 비지니스 석은 이코노미보다 3배가량 비싸다. 2배 정도라면 주저없이 비지니스 석을 예약하겠지만 3배가 넘기 때문에 고민에 빠진다.

나는 30살부터 40살까지 10년 동안 참 비행기를 많이 탔다. 파리 유학을 다녀온 지 1년 후 올림픽 조직위에 근무할 때부터 2개월에 한 번 꼴로 해외출장을 다녔는데 당시는 물론 이코노미 석을 타고도 희희낙락했다. 대통령 특별기도 약 12번 정도 탔는데 대통령 수행원들의 좌석은 이코노미와 비지니스 중간 정도의 공간을 제공한다. 전세낸 항공기의 좌석을 모두 재배치해 공간을 늘여주는 거다. 음식은 모두 비지니스 석 급이다. 40세까지 탄 마일리지가 30만 마일 정도였다.

40살이 넘자 이코노미 석을 타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다.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이란 병도 밝혀졌지만 만석이 된 큰 비행기의 이코노미 석을 타고 10시간 이상 비행하는 것은 내겐 고문행위에 가깝다. 폐쇄 공포증도 생기고 우울증도 생기고... 나도 덩치가 큰 데 나보다 더 큰 외국인이 바로 옆자리에 앉으면 꼼짝할 수 없어 정말 괴롭다. 닭장에서 닭들에게 모이주듯 던져주는 이코노미 석의 음식도 내 건방진 자존심을 건드린다. 어떨 땐 양이 모자라 배가 고프기도 하고...

가족들과 여행할 때는 좀 낫다. 서로 기대기도 하고 위로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40대 중반을 넘어 나는 <이코노미 석이라면 차라리 해외 출장을 포기한다>는 원칙 아닌 원칙을 세웠다. 그러나 꼭 가야할 여행이고 어쩌다가 업그레이드할 마일리지도 떨어지고 경제사정도 여의치 못하면 할 수 없이 <미워도 다시 한 번> 식으로 이코노미를 타지만 비행기를 내리면서는 <다시는...>하며 다짐한다. 다리를 올리고 싶어 10시간의 사투를 벌였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일직 공항에 나가 체크인 카운터에서 비지니스 석 바로 뒤 항공기 출입문 근처의 좌석을 주문하는데 <사고가 나면 다른 승객들을 모두 대피시킨 후 마지막에 탈출한다>는 조건이 있는 자리다. 그래도 조금 공간이 넓어 훨씬 낫다. 한 번도 사고가 없었고... 

심신이 피로한 상태에서 결행한 이번 이태리 여행은 <자비로 돈을 보태 비지니스 석을 탄다>고 결심하고 조금 싼 에어프랑스를 탔는데 타고 보니 대한항공이 더 비싼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음식도 프랑스의 명성을 느끼기에는 미흡했고, 중년 부인이 대부분인 프랑스 스튜어디스들의 서비스도 미지근했다.

조직마다 비지니스를 탈 수 있는 직급이 다르지만 우리 학교는 총장만 탈 수 있다고 하고, 부장이상만 되면 비지니스를 태워주는 대기업도 있단다. 그 이유는 <편안한 여행을 해야 현지에서 활동을 잘 힐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당연하고 인간적인 말인가?

평생 월급으로 살아온 나로서는 소속 조직의 지원없이 해외 여행을 하는 사람 중 <비지니스 석을 주저없이 탈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여유있는 부자>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나는 평생 그럴 수 없을 것이니 가지 않을 수 없는 다음 해외 출장이 다시 두려워진다. 항공사들이여, 비지니스 석을 늘이고 가격을 낮추어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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