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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사란 영어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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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동희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1-10-22 00:00 조회2,6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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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출동 119"를 위해 한국외국어대와 여의도 MBC, 서소문 CSTV를 바쁘게 뛰어다닌 것은 나 스스로도 "동시통역"에 관한 궁금증이 많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테러가 나던 날 밤, 뉴스속보 간간히 나오는 동시통역을 들으며, 한가지 의문이 생겼다. "왜 동시 통역은 "동시"에 안되는 것일까?"

하루가 지나 "그날 밤 통역"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쏟아졌고 나는 다시 궁금해 졌다. "동시통역사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할말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시작된 궁금증의 해답을 찾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도움말을 주기로 한 이들과의 약속을 정리하며 내심 한가지 걱정을 했다. "영어를 얼마나 잘하는 사람들일까? 이야기 도중 영어 단어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면 그걸 그대로 쓸 수도 없고 행여 글을 쓰다가 뜻이 달라지면 어쩌지?" 그러나 그것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신기하게도 세 번의 만남을 취재하는 동안 그 어느 누구도 단 한마디의 영어 단어를 쓰지 않았다.

그랬다. 통역사란 이런 사람들이었다. 영어만 잘해서는 안되는 사람들, 그 보다 한국어를 더 잘해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방송뉴스통역을 만점으로 해내기 위해선 한국어를 잘 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한 사람들, 언론용어를 능숙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통역사들에게 "우리나라에 영어 잘하는 사람 이렇게 없어?"라는 비난은 뾰족한 바늘이었다. 뉴스속 다급한 상황을 더 빨리 더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긴장을 늦추지 않는 통역사들의 의욕과 열정을 한번에 터트려 버릴수 있는 그런 바늘. 자신의 꿈이 그렇게 터져버린 ,그리고 터져버릴 것이 두려운 통역사들에겐 방송뉴스통역은 만만한 분야는 아니다.

그럼에도 곳곳에 위험이 산재해 있는 방송뉴스통역의 길을 앞장서서 걸어가는 CSTV통역사들은 오히려 모험을 매력으로 느끼고 있었다. 포부에 찬 그들의 눈빛과 또박또박 조리있는 말투가 그 모든 것을 말해줬다.

그리고 또 하나, 엄밀히 말하면 §동시통역사§라는 단어는 틀린 말이다. "동시통역"이란 그저 통역의 여러 가지 방법중 한가지에 속할 뿐 "동시통역사"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연사의 말을 몇 문장씩 끊어서 통역해주는 순차통역이나, 통역사가 청자 옆에서 작은 소리로 통역을 해주는 위스퍼링통역 등을 하는 이들을 "순차통역자"나 "위스퍼링통역자"라고 부르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모두가 그저 "통역사"로 통한다.

이번 취재를 마치며 "왜 동시통역사가 "동시"에 못해?"라는 불평의 근본 원인은 통역사들을 흔히들 "동시통역사"라고 칭하면서, "동시"라는 단어의 뜻에 너무 큰 비중을 두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방송 뉴스라는 특정 분야를 실시간으로 "동시통역"하려는 통역사들에게 "방송뉴스통역사"라는 이름으로 전문성을 인정해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언제나 복잡 다양한 궁금증이 속속 생겨나는 머릿속에는 또 다른 의문이 자리잡고 있었다.


김동희/스포츠서울닷컴 기자 dhkim@sportsseoul.com


 = 스포츠서울 e-매거진 (2001.1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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