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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 지를 번역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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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9-04-20 17:18 조회3,3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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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부터 한국일보 측의 의뢰를 받아 미국의 경제잡지 포춘을 번역하는 일을 맡고 있다. 아니 제자들이 번역을 하고 필자가 감수를 하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미국의 포춘 지는 한 달에 두 번, 격주간으로 발행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 달에 한번 월간지로 발행한다. 매달 미국 잡지두 이슈의 주요기사를 우리말로 번역하고, 우리 기자들이 쓰는 우리 경제 관련 기사는 영어로 번역해 미국 측에 제시하기 때문에 한 달에 잡지 한 권을 모두 번역하는 셈이다. 한 달에 2주일은 꼬박 이 번역과 감수 작업으로 보낸다.

지난 해 말, 포춘 코리아의 편집을 맡을 한국일보 기자 분이 필자의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 필자는 번역 계약이 성사될까 반신반의 하면서 몇 가지를 강조하였다. 첫째, 포춘 지 번역은 간단치 않게 어려운 전문적이고도 장기적인 작업이 될 것이므로 합리적인 번역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 시중의 싸구려 번역료로는 유능한 번역자를 확보하기 어렵고, 확보된 인력도 빠져나가 지속가능성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 쇠고기 파동 중에 드러난 오역 관련 논란도 번역자에 대한 올바른 대우가 선행되지 않은데 있었다고 믿는다.

둘째는 번역 시간을 가능한 한 많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하루에 번역할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다, 정신을 집중하여 번역을 하다 몇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할 수가 없음을 느낀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험호와 창간호를 만들다 보니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신문사에서도 처음 하는 작업이다 보니 마감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어 번역 시간이 절대 부족했는데 그 대응책으로 필자는 애초 예상보다 많은 제자를 동원했다. 시간이 없으니 인해전술을 쓴 것이다. 결과는 필자의 감수 작업량이 늘어난 것이었고,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에 컴퓨터를 마주하고 활자판과 씨름을 했다. 인간이 하루에 감수할 수 있는 양에도 한계가 있을텐데…

셋째로 양측이 합의한 것이 실명제 번역이었다. 번역자의 이름을 기사 끝에 명기하는 것이다. 제자들은 자신의 이름이 잡지에 나간다는 사실 때문에 더 열심히 번역하고 있다. 자신과 가문의 명예가 걸려있기 때문에 온갖 자료를 들춰보고, 주위의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며 정확한 번역을 하려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필자는 제자들에게도 몇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아무리 마감시간에 쫓겨도 우선 기사 내용을 이해한 후 번역을 시작하라. 번역자가 이해하지 못한 기사는 번역할 수 없고, 해봐야 독자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이 요구를 잘 이해하고 따라 주었다. 둘째, 번역 냄새가 나지 않게 하라. 어릴 적부터 영어공부에 매달려 한자도 잘 모르는 제자들에게는 정말 어려운 주문이었지만 필자의 감수를 보고 제자들의 우리말 표현력도 일취월장하고 있어 다행이다.

이제 창간호 이후 한 달 한 달 잡지 호수가 쌓일 때마다 번역의 품질도 점점 더 향상될 것이다. 필자와 제자들을 믿고 밀어준 한국일보 측에 감사 드린다. 포춘 코리아는 널리 읽히는 좋은 잡지가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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