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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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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2-12-20 15:01 조회2,6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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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자는 나보다 한 살이 많다. 내가 초급 통역장교로 대통령 경호실 정보처의 청와대 요원으로 파견됐던 1977년 1월, 내 나이는 만 24세, 그는 25세였다.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흉탄으로 별세한 후 차지철이 경호실장이 되었고, 그는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하고 있었다.

1978년 6월 말 예비역 육군 중위로 전역할 때가지 청와대 경내에서 박대통령은 물론 그의 모습도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경호태세가 한마디로 무시무시했다. 청와대 경내도 마음대로 거닐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경호실장의 모습도 토요일 오후 경복궁 위쪽의 연병장에서 열렸던 국기하강식 도중, 먼발치에서나 볼 수 있었다. 정보처 직원들이 사격 연습 차 전투복을 입고 청와대 앞길을 걸어갈 때 행렬이 흐트러진 것을 차를 타고 지나며 본 차 실장이 우리를 자신의 사무실 옆 회의실로 불러 5미터 앞에서 호통치며 야단칠 때는 그의 눈빛이 무서워 외면했다...

한가지, 당시 당선자의 존재를 느낀 것은 배드민턴을 좋아하던 그의 지시로 청와대 직원들이 YMCA 강사의 코치를 받아 연무관에서 배드민턴 연습을 하고 시합을 했던 것이다.

전역 1년 후에 입학한 통역대학원에서의 첫 학기가 중반이던 79년 10월 26일 박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암살당했음을 하숙집에서 언론을 통해 알았을 때 내가 받은 충격은 남들보다 컸고, 이듬해 파리로 유학가서도 그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1974년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가 열렸던 여의도 광장에서 열병을 하며 무개차로 앞을 지나던 인자한 모습의 작은 거인 박정희를 학군단 대표로 맨 앞줄에서 약 5초간 우로 봐 구령에 따라 응시한 이래로 그를 영원히 죽지않을 대통령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리라...

파리 학교의 번역 시간에는 불어로 <10/26 이후의 한국 정치>라는 발표도 했다. 유신 시대 국내 언론 검열로 읽을 수 없었던 영어와 불어신문 기사를 파리의 공립도서관에서 찾아내 읽고, 10/26 전후의 상황을 제법 충실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그가 영어, 불어, 중국어 등 외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니 그를 통역해 볼 기회는 없을 것이다. 있다해도 이제는 제자들이 담당할 것이다. 지금까지처럼 그의 연설을 교재로 삼을 수는 있을 것이다.

나보고 당선자를 좋아하는 보수꼴통이라고 폄하하지 말라. 남의 말을 옮기는 통역사의 업무가 지극히 보수적인 것을... 진보라면 통번역을 할 수도, 할 이유도 없다. 그런 사람은 정계로 나서라, 조국같은  수많은 폴리페서들처럼...               



 

 
 
 

곽중철 (2013-01-02 13:04:19) 
 
당선자가 당선이 확정되자 말자 외교부에서는 발빠르게 통역을 배치했는데 그가 이태식(李泰植) 전 주미대사의 차남, 이성환(李成煥) 서기관이다. 이제 30대 중반일 것이다. 그는 이미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통역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바 있어 당선자와 차기 정부의 와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음은 당시 이 홈피 <현장 이야기>에 올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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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에는 쌍방의 상대국 주재 대사가 공식 수행원 자격으로 배석하는 게 일반적이고, 외교부 공무원인 아들 이성환씨는 노 대통령의 영어 통역을 맡고 있기 때문에 한미정상 회담에는 이 부자가 함께 참석한다. 이들 부자는 각각 외무고시 7회와 33회다.

이들 부자는 최근 폐막된 부산 APEC(아·태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때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만난 한미정상회담에 함께 참석했다. 이들 부자는 작년 12월 노 대통령의 영국 방문 때도 주영 대사와 통역자 신분으로 한·영 정상회담에 함께 참석한 적이 있었다.

지난 11월 19일 노 대통령의 APEC 내외신 기자회견의 생중계를 지켜본 사청자들은 이 사무관의 통역, 특히 한영 통역 실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www.ytn.co.kr에 올라있는 동영상을 확인한 필자도 그의 역량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그는 말이 빠르면서도 정확하다. 긴장하고 들으면 안들리는 단어가 하나도 없다. 대통령의 발언이 끝난 즉시 통역에 돌입하는 순발력도 일품이다. 영어 발음은 원어민 뺨칠 정도다. '말 재주'를 타고 난 청년이다.

둘째, 그는 수준 높은 어휘와 수사법을 구사한다. 한마디로 '배운' 영어, 미국에서 오래 영어로 수학한 배경을 느낄 수 있다. 그의 학력을 알지는 못하지만 나이로 봐서 외국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과정 정도를 열심히 제대로 공부했을 것이다.

셋째, 그는 노 대통령과 죽이 잘 맞는다. 국내에서의 발언으로 구설수에 자주 오르는 노대통령은 국제무대에서는 보다 신중한 발언을 하면서도 변호사 출신답게 공보비서실에서 써준 원고를 읽기보다는 자신이 생각해 직접 말을 만들어 맛깔스럽게 하려고 하고, 이 행정관은 철저한 준비를 거쳐 이를 잘 소화해 통역한다. '유식한 대통령에 유식한 통역'이 빚어내는 조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리 통역이 유식해도 대통령이 무식하면 통역에는 한계가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미국 대학 박사 출신' 통역을 찾은 것은 바로 자신들의 무식이 탄로날 가능성을 유식한 통역이 막아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말을 스스로 만들어 하기를 좋아하는 노 대통령은 '임자'를 만난 것이다.

1970년도 대통령의 발언과 그 통역과 2005년 현재 대통령의 발언과 그 통역에 수준 차가 뚜렷한 것은 시대가 그만큼 발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급속도로 복합화하고 있는 시대와 세상, 그리고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는 정보와 지식의 홍수 속에서 대통령도 공부하지 않으면 국제무대에서 무시 당하고, 그 통역관도 마찬가지다. 어디 대통령 통역 뿐이랴? 각종 전문적 국제회의의 통역을 담당하는 통대 출신들도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도태된다. 나이 든 '컴맹'들이 일선에서 밀려나듯 시대의 지식수준을 따라 잡지 못하는 통역사도 도태된다.

스폰지처럼 정보를 빨아들이며 새 지식에 잘 적응하는 젊은 통역사들이 내일의 통역시장을 맡게될 것은 자명하다.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듯....

1998년부터 1992년까지 대통령을 통역했던 필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나를 밀어내는 후배 통역사들을 한편으로는 두렵게, 또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게 느낀 지가 오래다. 시대가 어지러울 정도로 급변하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자위하면서.... 
 
 
 

곽중철 (2013-04-22 15:45:30) 
 
朴 대통령 영어통역관에 노 前 대통령 때 통역관 이성환씨
 김진명 기자 2013.4.22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어통역을 맡았던 이성환(37) 행정관이 박근혜 대통령의 영어 통역으로 복귀했다. 박 대통령의 5월 방미(訪美) 때 한·미 정상회담의 영어 통역을 맡게 된다.

대통령 통역은 외교부에서 톱클래스의 어학 실력을 갖춘 몇몇 외교관이 돌아가면서 맡는 것이 관례다. 이 행정관은 외시 33회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주영대사·외교부 차관을 거쳐 주미대사를 지낸 이태식(68) 전 차관의 차남이다. 2004년 12월 노 전 대통령이 영국을 국빈 방문을 했을 때 아버지는 주영대사, 아들은 대통령 통역으로 나란히 배석해 이목을 끌었다.

2005년 11월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노 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했을 때도 아버지는 주미대사, 아들은 통역으로 참석했다. 한·미 정상 내외 간 오찬 때는 이 전 대사 내외와 이 행정관까지 가족 3명이 배석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통역이었던 김일범 행정관은 현재 주미대사관 1등서기관으로 근무 중이다. 박 대통령 방미 때 전·현직 통역도 만나게 되는 셈이다. 
 
 
 

곽중철 (2013-04-23 10:02:21) 
 
이성환씨, 한·미 정상회담 통역
[중앙일보]입력 2013.04.23 00:09 / 수정 2013.04.23 00:36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역을 맡았던 이성환(37·사진) 청와대 행정관이 5월 박근혜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통역을 맡게 됐다. 이 행정관은 외무고시 33회 출신으로 2004~2006년 노 전 대통령의 통역을 맡았고, 이번 정부에선 대통령직인수위 때 외교부에서 파견돼 일해 왔다. 이 행정관은 노무현 정부 때 주영국 대사와 외교부 차관, 주미국대사를 지낸 이태식(68)씨의 차남이다 
 
 
 

곽중철 (2013-04-23 10:08:00) 
 
뉴스 1번지] 화려함속에 부담 갖는 대통령 통역관
<박앵커의 뉴스 콕콕>

많은 뉴스 중에서 콕콕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을 골라서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다음달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 방미에 통역관이 발탁됐다는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정상회담때 양국의 정상간의 숨소리까지 챙겨들어야 하고, 대외적으로 발표될 수 없는 사적인 얘기까지 모두 들을 수 밖에 없는 통역관.

오늘은 역대 영어통역관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현재 대통령 통역을 맡는 외교부 통역 전문가들은 10여명 정도입니다.

하지만 영어통역은 다른 언어와는 달리 청와대 의전비서관실에서 담당하게 되는데 영어는 그만큼 쓸 일이 많기 때문에 대통령 가까이에 있는 것이죠.

외교관들중에서도 영어를 가장 잘한다는 역대 영어 통역관을 살펴 보겠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지난 2007년 8월 별세한 조상호 전 체육부 장관이 의전 수석을 맡아 10여년간 영어 통역을 했으며, 전두환 전 대통령 때는 김병훈 당시 의전 수석이, 노태우 전 대통령 때는 노창희 당시 의전수석이 통역을 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차관급인 의전 수석이 영어통역과 의전을 같이 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때는 외무고시 출신이자 옥스퍼트 대 정치학박사인 박 진 청와대 공보비서관이 영어 통역을 했습니다. 박 비서관은 이후 3선 의원을 거쳐 국회 외교통상위원장까지 역임했지요.

당시 박진 비서관은 클린턴 대통령 한국 방문 시 두 정상이 함께 조깅 할 때도 두 사람을 뒤따르면서 밀착통역을 해서 조깅통역이라는 말도 생겨났습니다.

2002년 박 의원은 정상외교의 비화와 소감을 기록한 저서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영어 통역하면 떠오른 사람은 강경화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 부대표입니다.

세종대 영문과 교수였던 강경화 부대표는 뛰어난 영어실력으로 외교부 국제전문가로 특채 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기가 끝날 때까지 3년간 여성 대통령 통역관으로 의전을 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30대 젊은 남녀 외교관들을 영어 통역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김일범 서기관을 시작으로 이여진 서기관, 이성환 서기관에 이어 정의혜 서기관으로 바통을 이어가며 실무형 영어통역과 의전을 함께했습니다.

이때 통역을 했던 젊은 외교관은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때 다시 기용이 됩니다.

먼저 이명박 전 대통령은 김일범 서기관을 통역관으로 발탁했습니다. 김 서기관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3명의 대통령을 모신 통역관이었습니다.

김 서기관은 덴마크 대사 출신 아버지를 둔 부자 외교관이라는 점외에도 탤런트 박선영씨의 남편이라는 점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 방미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어통역을 맡았던 이성환 행정관이 영어통역으로 복귀했습니다.

이 행정관은 외시 33회 출신으로 이태식 전 주미대사의 차남입니다.

대통령 통역관은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선택해서 통역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일반 통역에 비해 훨씬 크다고 합니다.

하지만 더 큰 부담은 어쩔 수 없이 알게된 양국 정상간의 대화 내용을 가슴속에 묻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죠.
지금까지 박앵커의 뉴스 콕콕이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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