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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취임사부터 ‘국가번역원’이 번역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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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3-03-01 09:55 조회2,2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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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취임사부터 ‘국가번역원’이 번역하게 하자

 한국외대통번역대학원 교수
 한국통번역사협회 회장

 곽중철 010-5214-1314

지난 25일 거행된 18대 대통령 취임식의 공식행사를 6개 언어(영ㆍ불ㆍ중ㆍ일ㆍ스페인ㆍ러시아)로 동시통역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준비하던 중 24일 저녁에야 대통령 취임사를 전달받았다. 필자가 담당할 영어만큼은 공식 영역본이 함께 도착했다. 국회의사당 단상의 왼쪽에 설치된 6개 통역부스에서 같이 통역할 동료들과 대통령 당선인이 직접 썼다는 우리말 원고를 검토하다 보니 어색한 문장들도 보였다. 예를 들어 종반부 북핵 위협관련 부분에서 “현재 우리가 처한 안보 상황이 너무도 엄중하지만 여기에만 머물 수는 없습니다.”라는 문장은 “현재 우리가 처한 안보 상황이 너무도 엄중하지만 여기에서 주저 앉을 수는 없습니다“로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번역에도 무리가 없다.

공식 영역본을 살펴보니 몇 가지 오역이 눈에 띄었다. 먼저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고 했습니다”라는 부분은 “우리가 아는 사람은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은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만 못하다”고 번역되어 있었다. 명백한 오역이다. 이 말을 잘 모르는 사람이 번역했음에 틀림없다.

사소한 문법적 실수들은 두고라도 “개개인의 능력을 주춧돌로 삼아”라는 말은 “개개인의 능력이라는 주춧돌을 통해”라고 어색한 표현을 썼으며 “자본주의 역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라는 표현은 영어로는 능동태가 아닌 수동태로 써야 맞다. “산업 간에 벽을 허문 경계선에”란 말은 벽이 스며든 경계선”으로 바뀌어 있었다.

“여성이나 장애인 또는 그 누구라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이란 말은 우리말에서는 ‘또는’이라고 해도 되지만 영어에서는 ‘그리고’ 라고 해야 맞다. “한류문화가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기쁨과 행복을 주고 있고,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이 되고 있습니다”는 말이 “한류가 큰 사랑으로 환영 받으며 기쁨과 행복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인들에게 큰 자긍심을 불어넣고 있다”고 바뀌었다.

물론 이런 긴 연설문을 하루 이틀에 완벽하게 번역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번역문은 소수 외국인 초청인사가 듣고 난 후 행사가 끝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역사의 기록으로 남는다. 따라서 이런 역사적 문서를 시간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전문적으로 번역하는 ‘국가번역청’이 이번 행정부에 의해 설립되기를 다시 한번 희망해 본다. 수많은 번역 담당 공무원을 채용하라는 말이 아니라 정부가 후원하는 인증 시험을 거쳐 국가의 공식 번역 업무가 생기면 언제라도 달려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신속하고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는 민간 번역사의 풀을 만들어 관리하자는 제안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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