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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관(譯官) 홍순언의 미담(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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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3-05-20 16:17 조회2,2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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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살롱] [887] 역관(譯官) 홍순언의 미담
 조선일보 입력 : 2013.05.19 23:05

남자는 여자 문제 때문에 패가망신하기도 하지만, 여자의 도움으로 크게 덕을 본 사례도 있다. 16세기 조선 선조대의 역관이었던 홍순언(洪純彦) 이야기가 '통문관지(通文館志)'를 비롯한 여러 기록에 나온다. 홍순언은 북경에 통역관으로 갔다가 하루는 기생집에 들어갔다. 눈에 띄는 여자가 있어서 하룻밤 같이 자려고 하는데, 방에 들어온 그 여인의 복장이 소복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남쪽 절강(浙江)이 고향인데 아버지가 북경에서 염병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장례 비용을 마련하려고 오늘 술집에 나오게 되었다."

호협(豪俠)한 기질이 남달랐던 홍순언은 그 말을 듣고 가지고 있던 공금까지 모두 털어 300금(金)을 여자에게 선뜻 내주었다고 한다. 지금으로 환산하면 1억원 정도 되었을까? 거금을 주고서도 그날 밤 여자를 손대지 않았다. 홍순언은 귀국하여 공금횡령죄로 감옥에 가게 되었다. 그 뒤로 몇 년의 세월이 흘러 홍순언은 다시 북경에 가게 되었다. 동료 역관들이 돈을 거둬 공금을 갚아주고, 그 대신 홍순언은 종계변무(宗系辨誣)를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엄명을 받았다. 명나라의 법전인 '대명회전'에 이성계의 족보가 엉뚱하게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조선에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잘못된 기록을 시정해 달라고 사신을 보냈다. 그러나 중국은 쉽게 고쳐주지 않고 200년간 질질 시간을 끌고 있던 문제였다.

홍순언 일행이 자금성 입구인 조양문(朝陽門)에 들어서자, 성문 밖에 환영하는 비단 장막이 구름처럼 걸려 있었다. 명나라 예부시랑, 즉 외교부 차관 석성이 홍순언을 맞이하러 나왔던 것이다. 석성의 부인도 마중 나와 홍순언에게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그 부인을 보니 기생집에 나왔던 그 여인이 아닌가! 원래 명문가의 딸이었던 이 여인은 그 효성심이 알려지면서 외교부 차관의 부인이 된 것이다. 부인으로부터 '보은(報恩)'이라는 글자를 수놓은 비단 100필을 선물로 받았고, 석성의 노력으로 200년을 끌던 종계변무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 공으로 중인 신분이었던 홍순언은 파격적으로 당릉군(唐陵君)에 봉해졌다. 을지로 2가 일대가 임금으로부터 받은 사패지였고, 사람들은 이 일대를 보은단동(報恩段洞)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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