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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총재 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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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3-12-06 13:36 조회2,5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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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전 쯤 IMF 홍보실에서 이멜이 왔는데 서울에서 있을 기자회견 영한통역을 해줄 수 있나 해서
 일정을 보니 졸업시험 기간이라 일단 될 것같다고 답신을 했습니다. 2년 전 기획재정부에서
IMF 연례협의회가 끝난 후  기자회견을 했던 경험도 있어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지난 학기 중에는 한-EU 대표단 회의 통역을 위해 브뤼셀로 오라는 제의도
 학교일정때문에 못가 아쉬웠거든요.

며칠 후 보도를 보니 라가르드 총재가 서울에 온다는 것이었고, 일이 커진 것(!!)을 깨닫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IMF와 기재부 홈피를 중심으로 관련 자료를 보며 용어를 정리하다 보니
 역시 거시경제는 간단한 주제가 아니었습니다. 2년 전 경험 이후 저서 [통역강의록]에도
 한 챕터를 할애하고 1/2학년 영한 시간에 몇 번이나 라가르드 총재의 연설을 다뤘음에도
 그 분야는 계속 모르는 용어(예: tapering---버냉키 연준의장이 임기 말에 만든 양적완화 축소라는 조어)와 내용이 남아있었습니다. 준비 중에 수업에서 설명 못했던 부분들도 비로소 알게됐습니다.
 (예: 유럽 재정위기에서 core란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중심국가, periphery란 그리스, 이태리 등
 주변 국가, 같은 유로 단일 통화권이지만 금융 통합이 안돼 상이한 금리 등으로 주변국들이
 불리한 고통을 받고 있다는 등등...)       

11월 말 이멜로 계약서를 받고보니  12월 5일(목) 3시에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한 시간 가량
 회견이 있을 테니 2시까지 현장에 출두하라는 겁니다. 또 동시통역이라고 했습니다.
무심코 알았다고 하면서 "나혼자 통역하는 거 맞지?"라고 물었는데 놀랍게도 "같이 할 동료가
 있으면 추천하라, 계약서를 보내겠다"는 겁니다. 그런 이메일을 읽어보면 영어도 훌륭하지만
IMF 등 유수 국제기구 직원들의 신속/정확성과 효율성에 감동을 받습니다. 몇시간을 통역하든
"일이 되게하기 위해 얼마간의 예산은 쓸 수 있다"는 분위기와 함께...

한시간 회의면 혼자 못할 것도 없고, 일단 혼자 하게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혼자 최선을
 다하게돼 더 큰 보람을 느낍니다. "궁즉통(窮卽通)"이니까요. 그러나 회견 시간이 더 늘어날 수도 있고 같이 하라는데 혼자 하겠다고 고집할 필요는 없어 수배 끝에 우수한 30기 제자 하나를 불러 계약을 하게 했습니다.

일단 제자와 함께 한다고 하고 보니 게으름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못하면 제자가 해주겠지?
이 나이에 윗니 임플란트도 끝나지 않아 발음도 새는데 잘됐다. 제자가 많이 하게해야지?"하면서
 여유를 부리기 시작한 거죠.

서로 준비한 용어집을 공유하면서 보니 제자의 우수한 재질을 재확인할 수 있었고,
역시 프리랜스 통역사는 타고나야한다는 것을 다시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나이 들어 동시통역에
 절실한 순발력이 떨어지고, 강의나 하면서 1년에 한두번 실전에 나가는 사람과 거의 매일 다른
 주제를 통역하는 제자의 능력은 비할 바가 못되었습니다.

프레스센터의 10층 외신지원센터에서 3시 조금 넘어 시작된 회견에서 사전에 임바고 보도자료로
 배부된 모두 말씀을 내가 통역하고, 질의응답을 서너개 제자가 통역하다보니 30분도 안돼 행사는
 끝났습니다. 회견장이 창문도 없이 페쇄된 구조라 더워서 총재가 부채를 부친 것도 회견단축의
 원인이었어요. 인천 송도에서 김용 세계은행총재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을 모시고 개소한 GCF
본부 행사가 최대 이슈였으니 다른 큰 문제가 없었던 까닭입니다. IMF는 30분 통역을 위해
200만원 가까운 예산을 쓴 겁니다.

통역을 준비하면서 " 이 나이에 괜히 통역하겠다고 욕심을 부렸구나"하고 후회도 했지만 결과는
"또 많이 배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내년 수업에서는 IMF나 글로벌 거시경제에 대해 더
 현실감 있는 강의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통대 교수들도 1년에 몇 번은 현장통역을 해야
 현장감을 잃지 않는다는 거지요. 음대 교수들이 연주회를 하고, 미대교수들이 전시회를 하듯...

취임할 때부터 관심을 쏟았던 라가르드 총재를 직접 본 것도 인연처럼 느껴졌습니다 파리 출생이 어떻게 저런 훌륭한 영어를 구사하고, 두 번이나 이혼을 한 여성이 세계 제1의 금융기관 수장이
 되었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과연 "여걸"이었습니다...



 

 
 
 

곽중철 (2014-02-17 11:23:28) 
 
[이철호의 시시각각] 신흥국보다 IMF가 더 큰 위기다
[중앙일보]입력 2014.02.03 00:34 / 수정 2014.02.03 00:34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미국 워싱턴DC의 백악관과 국회의사당, 국제통화기금(IMF)은 단체 방문객들의 성지순례 코스다. IMF 본부(HQ) 건물은 두 개다. 한국 관광객들도 대개 HQ1보다 더욱 화려한 HQ2 앞에서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유리로 화려하게 치장한 이 건물에는 눈물겨운 사연이 있다. 2002년 지은 HQ2는 아시아 외환위기 때 고금리로 떼돈을 벌어 세웠다. 서울대 윤택 교수는 “한국인의 피와 눈물이 배인 건물”이라고 했다.

 IMF는 경제위기를 먹고 사는 조직이다. 1980~90년대엔 68건의 구제금융으로 큰 재미를 보았다. 오히려 ‘골디락스’였던 2002~2007년이 암흑기였다. 누구도 구제금융을 신청하지 않아 이자수입 고갈로 손가락만 빨았다. IMF는 직원 15%를 자르고, 보유하던 금 403t을 팔고, 해외 사무소도 대폭 폐쇄했다. 여기에다 스트로스 칸 총재의 성추문과 “경제위기를 오래 전에 감지했으나 이를 은폐했다”는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내부 고발로 만신창이가 됐다.

 그런 IMF가 다시 신이 났다. 이머징 국가들의 외환위기 조짐 때문이다. 지난 주말 IMF는 “많은 신흥국이 펀더멘털과 정책 신뢰를 개선하는 긴급 조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아마 통화가치가 폭락한 아르헨티나와 기준금리를 4.5%에서 10%로 확 올린 터키를 지목한 듯싶다. IMF는 “외환위기 당시 과도한 처방으로 아시아에 필요 이상의 고통을 줬을 수도 있다”던 고백을 까맣게 잊은 것 같다.

 돌아보면 IMF는 선진국에는 천사, 신흥국에는 저승사자였다. 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진압은 완벽히 미 연준(Fed)의 몫이었다. 유럽 재정위기 때도 철저히 유럽은행(ECB)이 주도했다. 상식과 다른 초저금리와 양적완화 카드에도 IMF는 침묵했다. IMF는 일본의 아베노믹스도 방관했다. 이에 비해 신흥국들이 불안해지면 여지없이 고금리와 긴축재정의 전통적 처방을 꺼내들고 있다.

 IMF의 이중잣대는 기축통화국이냐 아니냐가 분수령이다. 달러·유로·엔화 등 강력한 통화를 가진 나라들은 수술대에 오르는 법이 없다. 자체적으로 윤전기를 돌려 돈을 더 찍어내면 그뿐이었다. 그 외 나라들은 외채·경상수지·외환보유액·재정수지에서 골고루 합격점을 받지 못하면 언제 희생양이 될지 모른다. 순채권국은 안전하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브라질은 500년 만에 순채권국이 됐지만 헤알화 가치가 급락했다.

 이번 사태는 미 연준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으로 촉발됐다. 미국은 “미 경제의 정상화 과정”이라며 “신흥국들의 불안은 내부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미 언론도 “이머징 국가들의 불안은 경제문제가 아니라 정치위기”라고 몰아가고 있다. 앞으로 미 연준이 테이퍼링의 속도를 높일 게 분명하다. 테이퍼링이 끝나면 금리 인상이 남아 있다. 미국·유럽·일본은 자국 이익이 우선이지 결코 자비를 베푸는 나라가 아니다.

 돌아보면 우리보다 큰 규모의 브라질(7위)·러시아(8위)·인도(11위)·멕시코(14위)는 주기적으로 외환위기가 반복되고 있다. 모두 달러·유로·엔화권이 아니라는 게 공통점이다. 다행히 한국은 순채권국에다 경상수지 흑자, 외환보유액이 차고 넘친다. 하지만 원화의 서글픈 처지를 감안하면 외환위기는 피하고 보는 게 최선이다. 더구나 금리가 오르면 상황은 달라진다. 언제 각각 1000조원을 돌파한 가계부채와 국가부채(공공기관 포함)가 뇌관이 될지 모른다.



 냉정하게 보면 신흥국보다 그동안의 이중잣대로 IMF 자체가 더 큰 위기에 직면한 느낌이다. IMF의 이론적 리더십은 치명상을 입은 지 오래다. 최후의 대부자가 아니라 글로벌 고리대금업자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예전처럼 살인적인 고금리와 긴축재정을 고분고분 받아들일 나라도 많지 않다. IMF부터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동일잣대를 들이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 반자본주의 운동의 표적이 될 수 있다. HQ2 건물을 보면서 눈을 흘기는 한국처럼 말이다.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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