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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송시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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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4-11-10 16:47 조회1,1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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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 유치환 -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理念)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白鷺)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조선문단>(1936)- 중학 때이던가 고교 때던가 교과서에 실린 이 시를 보고 나는 시인이란 나와 똑 같은 걸 보고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학교 운동장에 휘날리던 태극기나 교기를 보면서도 저렇게 깃발을 매단 행위를 처음 한 사람이 있었을 거란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는 것을 보고 슬픔과 애닯음까지 연상한 시인이 놀라웠던 거다. 그렇다, 우리가 보는 모든 인간행위는 처음 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다른 사람이 한 말이나 글을 다른 말로 바꾸는 통번역을 하며 평생을 살아왔다. 그래도 나름대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해본 일이 많다. 우선 대학 4학년 때는 ROTC로서는 처음으로 학교 영어연극의 주인공 역할을 했다. 군복무는 처음으로 국방부에서 청와대로 파견돼 경호실에서 번역을 하며 복무를 마쳤다. 모교에 동양에서 처음 생긴 통역대학원에 1기로 입학해 처음으로 파리 통역학교(ESIT)에 정부 장학생으로 가 4명 중 처음으로 졸업을 했다. 3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는 사상 처음 열린 서울올림픽의 조직위에 첫 전문통역사로 선발된 후 첫 통역안내과장으로 대회를 마쳤다. 스위스에서 열린 남북체육회담을 사상 최초로 4회나 동시통역했다. 대회 후에는 다시 청와대 비서관으로 대통령과 영부인을 3개어로(불어포함) 통역한 최초의 전문 통역사라는 기록을 남겼다. 다시 청와대를 나와 새로 설립된 유선방송위 관리국장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우선방송 채널 선정작업을 지휘한 후 최초로 만들어진 24시간 뉴스채널 YTN으로 자리를 옮겼다. YTN에서는 방송역사상 최초의 위성통역실이라는 정규 통역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송했다. 모교에서는 최초의 졸업생 대학원장을 역임했고 처음으로 통번역사협회를 만들어 3대 회장을 연임하고 있다. 내 이력서를 보고 ‘화려하다’고 평하는 사람이 많지만 10번이나 직장을 바꾸며 내가 흔든 깃발들에도 모두 그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이 있었으리라 짐작하는 이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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