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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대본없이 서라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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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5-02-24 15:21 조회1,0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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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무대에 대본없이 서라
 손관승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저자
 조선일보 2015.02.16 03:00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저자 졸업 시즌이 돌아왔다. 시대 변화에도 졸업식 풍경은 여전하다. 교장선생님이나 축사를 담당한 사람은 혼신을 다해 연설문을 낭독하지만 애석하게도 경청하는 이들은 별로 없어 보인다.

경청하지 않는 학생들의 산만한 태도를 나무랄 수는 있지만, 나는 우선 연설 방식에 주목하고 싶다. 학생들이 연설 시간에 하품하고 지루해 하는 것은 마치 책을 읽는 듯 연설문을 낭독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설도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인데, 원고를 낭독할 경우 목소리만 전달될 뿐 인간의 오감(五感) 가운데 나머지 기능은 아쉽게도 빠져버리게 된다. 연설이나 스피치에서 흔히 아이 콘택트(eye contact)라고 하는 청중과의 눈 맞춤도 아주 중요하다. 또 표정이나 손동작, 웃음 같은 비언어적(non-verbal) 표현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소통 방식인데 모두 빠져 있다.

경제인들의 포럼, 국제 행사에서도 비슷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짧은 스피치나 연설하게 될 때 한국인과 서양인은 극명한 대조를 보여서 외국인들은 대부분 원고 없이 그것도 조크를 섞어가며 하는 데 비해 한국 측은 대부분 원고에 코를 박고 읽기에 급급하다. 같은 동양권이라 하더라도 중국이나 동남아권 사람들 역시 대부분 원고 없이 말하는 것을 보면 한국인의 연설 방식은 분명 국제적 기준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에 막연히 공포감을 갖는 것을 가리켜 퍼블릭 스피킹 포비아(public speaking phobia)라고 한다. 흔히 '무대 울렁증'이라는 증상이다. 울렁증 극복을 위해서 설교학으로 유명한 미국의 해돈 로빈슨 교수의 방법을 참조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연설 원고를 써놓고, 연단에 가서는 종이 없이 연설토록 한다. 처음엔 3분, 그다음엔 8분, 13분으로 5분씩 늘려나가는 방식이다. 연습을 통해 자신감이라는 근육을 키워가는 것이다. 불가능은 없다. 스피치도 그렇다.
 



 

 
 
 

곽중철 (2015-02-25 09:31:33) 
 
"연설도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인데, 원고를 낭독할 경우 목소리만 전달될 뿐 인간의 오감(五感) 가운데 나머지 기능은 아쉽게도 빠져버리게 된다"는 문장이 내가 수업에서 통역할 연설을 준비해 읽는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말이다.
자신이 쓰거나 준비한 연설일지라도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읽어버리면 청중도, 통역사도 이해도가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특히 동시통역 연습 때 나는 "즉흥연설이 훨씬 통역하기 쉽고, 생각하면서 버벅거리며 하는 말이 더 쉽다. 텍스트를 보지말고 실제처럼 연설을 해보라"고 하는 것이다.
1983년 파리통역학교의 한 여교수는 "동시를 할 때 연사가 준비한 연설문을 급속으로 읽기 시작하면 난 청중들한테 '현재 연사가 연설문을 읽고 있어 통역이 불가능하므로 통역을 중단한다'고 마이크를 끈 후 준비해온 뜨개질을 한다"고 대차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지금 동시통역이 보편화된 국제회의에서 주어진 시간에 맞추기위해 원고를 급속도로 읽는 연사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지만 통역사의 고충을 의식하고 청중과 아이컨택만이라도 하려고 애쓰는 연사를 보면 반갑고 고마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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