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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己執筆能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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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용헌 살롱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11-30 00:00 조회84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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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살롱] [1075] 自己執筆能力 조용헌  입력 : 2017.01.16 03:15

"앞으로 대통령이 될 사람이 갖추어야 할 자질 한 가지를 꼽는다면 무엇입니까?" "자기집필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설문의 대강은 자기가 쓸 수 있어야 대통령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총리를 지낸 분과 점심 식사를 하다가 나눈 이야기인데, 굉장히 공감이 되는 지적이었다. 자기가 할 말의 연설문 정도는 자신이 집필할 수 있어야 한다. 세부적인 부분까지는 참모가 다듬는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대국민 메시지의 골격 정도는 자기가 짤 수 있는 지성이 있어야지, 그것도 못 하면 그게 무슨 지도자란 말인가!

'자기집필능력'을 갖추려면 어떤 전제조건이 필요할까? 먼저 독서가 이루어져야 한다. 유교 문명권의 특징은 '독서인(讀書人)'을 양성하는 데에 있었다. 유교의 도 닦는 방법은 기도나 명상, 단전호흡이 아니라 바로 매일 새벽부터 경상(經床)에다가 경전과 책을 놓고 소리 내어 읽는 방법이었다. 책을 읽는 행위야말로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필자는 '책상물림' 팔자를 타고나서인지는 몰라도 동굴에 가서 기도도 해보았고, 나름대로 명상도 해 보았지만 결정적인 효과를 못 보았다. 결국은 책 읽는 것이 기도요, 도 닦는 것이요, 종교적 수행이라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다. 독서를 하다 보면 어휘 구사력, 논리의 전개, 사안을 보는 시야의 확대가 이루어진다. 독서는 과거 역사에서 가장 지성적이었던 인물들과의 대화이다. 수평적 대화가 식사 자리, () 자리에서 이루어진다면 수직적 대화는 독서이다. 골동품 중에서도 최고의 썩지 않는 골동이 바로 이들이 남긴 고전이다.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의 과거(科擧) 제도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기집필능력을 테스트하는 일이었다. 조선조의 왕들이 신하들과 고전의 내용을 놓고 토론하는 경연(經筵)도 그렇다. 왕 노릇 하느라고 매일 업무가 바쁘니까 아예 공식 스케줄에다 신하들과의 독서 토론 과목을 집어넣어서 의무적으로 하도록 한 것이 조선의 정치제도였다. 고대 로마제국의 초석을 닦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꼽는 사가(史家)가 많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피 튀기는 전쟁터에도 '갈리아 전쟁기'와 같은 명문장을 남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이런 지도자를 만날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15/2017011501447.html

 

댓글목록

오혜진님의 댓글

오혜진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2030 잠금해제] 메릴 스트립과 반기문 / 오혜진
등록 :2017-01-15 17:47수정 :2017-01-15 22:01
오혜진 문화연구자
며칠 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수상한 배우 메릴 스트립의 수상소감을 보다 울컥했다. 그 6분짜리 소감은 여기 그대로 가져오고 싶을 정도로 내용과 형식 모두 완벽했다. 그녀는 존중감과 친근감을 가지고 ‘이민자’의 역사를 공유하는 동료 배우 한 명 한 명의 출신과 이력을 언급했다. 할리우드에서 외국인을 내쫓으면 우리는 미식축구나 종합격투기 같은, ‘예술’ 아닌 것들만 봐야 한다는 대목에서 모든 참석자들은 박수쳤다. 대선 당시 한 장애인 기자를 흉내 냈던 트럼프를 비판할 때도 그녀는 우아했다. 그녀가 지적한 것은, ‘공적 혐오발화’는 다른 사회구성원들 역시 그렇게 해도 좋다는 승인의 신호라는 점이었다. 그녀의 연설은 대본 없이는 단 한마디도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하는, 혹은 ‘이, 그, 저’와 같은 지시대명사로 점철된 모호한 문장을 즐기는 대통령의 연설만 들어온 내게 정말 놀라웠다.
물론 안다. 메릴 스트립의 연설이 준 감동의 일부는 그녀가 백인 여성이자 대배우로서 지닌 안정적인 계급, 경력, 사회적 지위, 그리고 오랫동안 축적돼온 미국 연설문화에 기인한 것이라는 걸. 그러나 그럼에도 이 연설의 아름다움은 덜해지지 않는다. 한 업계에서 상징적 지위를 지닌 인물이 공적 자리에서 자유와 평등, 다양성과 이질성의 가치, 반폭력과 민주주의를 말하고 그에 책임지는 삶을 산다는 것. 여기서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은, 적어도 우리가 배워온 민주적 가치들은 여전히 ‘글로벌 스탠더드’이며, 이것이 무너지지 않고 통용되는 세계가 아직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국에도 ‘글로벌 스탠더드’적 문제의식과 감수성을 정치적 자원으로 삼은 인물이 나타났다. 반기문. 그는 어린이가 읽는 위인전의 주인공이자, 한류 스타를 꿈꾸는 10대 연예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대선 출마를 암시하며 귀국해 보여준 행보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민생친화’ 퍼포먼스를 위해 서울역의 노숙인들을 내쫓고, 공항철도 매표기에 지폐를 겹쳐 넣는 모습, 편의점에 들러 고가의 수입 생수를 집는 모습은 그저 실소의 대상인가.
평생 성소수자의 인권 향상에 힘썼다면서도 정작 한국에서는 ‘나는 동성애옹호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건 또 뭔가. 한국에서 대통령이 되려면 ‘위선’으로라도 민주적 가치를 강조하는 것보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제스처를 취하는 게 전략적으로 더 유리하다는 걸 그는 잘 아는 것 같다. 그뿐인가. 한 인터뷰에서 그는 한국 대선의 시대정신을 “대타협”이라고 말하며, “노동계도 특권층이 있다”, “귀족 노동자”, “자기 주장만 계속하면서 거리로 뛰쳐나와 억지”를 쓰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게 정말 전임 유엔 사무총장의 말인가. 대체 이 상황들 중 어디서 우리가 기대한 ‘글로벌 스탠더드’를 찾을 수 있는가. 이 모든 건 지극히 ‘한국적’이다. 반기문이 촛불정국이 낳은 ‘새로운 리더’일 수 있을까. 그의 정치적 약점은 그가 생각하듯 ‘국내정치 경험 부족’이 아닐지도 모른다. 유엔, 거기 값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시대정신이 그에게 정말 있는지 묻고 싶다.
그가 국내 상황을 잘 모른다고 고백했기에 적어두자면, 서울시에는 만 65살 이상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를 지원하는 ‘어르신 교통카드’ 제도가 있다. 고국의 산천을 벗 삼아 평화롭고 지혜롭게 노년을 보내시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78804.html?_fr=sr1#csidx2afc63f2ea8b385b63eb9f2a709e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