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미북 정상회담의 통역은?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곽중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5-01 17:17 조회732회 댓글0건

본문

미북 정상회담의 통역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곽중철 010-5214-1314

지난 4 27일 판문점의 역사적인 남북한 정상회담에서 우리는 드디어 김정은 위원장의   음성과 발언, 그리고 연설을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통역사는 어떤 연사를 처음 통역할 때 자연히 긴장하게 된다. 어떤 목소리일까, 어떤 어조일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할 것인가 등으로 걱정을 많이 한다. 이번 행사에 외신기자들을 위해 세운 일산 킨텍스 프레스센터에서 통역사들은 김정은 위원장을 처음으로 통역하는 영광(?)을 누렸다. CNN 등 외신들을 지켜본 결과 다행히도 큰 문제 없이 통역이 되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우리가 아직 북한 말을 이해하고 통역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이다.

김위원장의 즉흥 발언은 한마디로 자유분방하지만 약간 늘어지는 만연체다. 한 문장이 길고, 끝날 듯 끝날 듯 한 말이 이어지다 보니 비문(非文)이 많다. 주술관계가 분명하지 않고 능동태와 수동태가 헷갈리는 문장도 있다. 통역하기에 쉽지는 않지만 아주 어렵지도 않은 것은 속도가 빠르지 않기 때문에 의미를 짐작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즉흥 발언은 속도가 느릴수록 통역사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의미를 분석할 수 있다. 

그의 부친 김정일 위원장은 2000 DJ의 방북 도중 "김대중 대통령이 오셔서 내가 은둔에서 해방됐다"는 재치있는 인사말을 할 때 어조와 분위기는 비슷했지만 문장들의 길이가 길지는 않았다. 두 부자의 차이라면 아들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스위스의 독어 사용 지역에서 유학을 한 것인데 2년의 유학생활이 김정은 위원장의 언어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얼마 안 있어 사상 최초로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게 된다. 이 역사적 만남에는 김정은이 쓰는 북한식 한국어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식 영어 사이의 통역이 필요하다. 우선 이 통역은 동시가 아닌 순차통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즉 양측의 통역사가 통역부스에서 동시통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주 앉은 두 정상의 곁에서 한마디 한마디 순차적으로 통역을 하게 될 것이다. 사상 최초의 양국 정상회담이고북한의 비핵화라는 무겁고 중차대한 주제를 다루게 되므로 한마디 한마디 확인을 하면서 회담이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회담이 순조로이 끝나 양측이 기자회견을 하게 된다면 동시통역을 할 수도 있겠다.

우선 외교 관례상 트럼프대통령의 발언은 미국 측 통역사가 한국어로 통역하고 김정은의 발언은 북한 측 통역사가 영어로 통역한다. 미국 측에서는 2009년부터 국무부 소속으로 미국 대통령들을 통역해온 미국시민권자인 베테랑 중년 여성 통역사 L씨가 맡을 것이다. 북한 측도 김정은 전속 영어통역사가 있을 텐데 전문통역 훈련을 받지는 않았겠지만 북한 식 외국어훈련을 받은 북한 최고의 남성 통역사가 임무를 맡을 것이다. 아니면 북한 외무성의 미국국장인 최선희 씨가 깜짝 통역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다만 그가 전문적인 훈련이 필요한 동시통역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미국 대통령의 한국어 통역을 맡아 온 미국 측 통역 L씨는 김정은이 쓸 북한 말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김정은의 북한 식 한국어를 직접 영어로 통역할 일은 없지만 북한 측 영어 통역이 정확한 지를 어느 정도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트럼프의 적절한 대응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한의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부터 문재인 대통령을 상대로, 부시와 오바마를 거쳐 트럼프 대통령까지 통역하고 있지만 북한의 통치자와 그 통역사를 상대하기는 처음이다. 북한 말의 억양과 여러 용어들이 생경하게 다가오면 순발력 있게 대처하면서 북한 측 통역이 정확하지 못하면 미국 측에  살짝 귀띔할 수도 있어야 한다. 트럼프는 수가 틀리면 회담장을 떠나겠다고 했으니 그 이유가 오역이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최근 폼페이오 국무장관 내정자가 북한을 비밀리에 방문해 김정은을 만났을 때는 북한의 통역사가 양측을 모두 통역했을 가능성이 크다. 극비방문이었지만 내정자가 통역사를 대동했다면 L씨가 아닌 주한 미국대사관 소속 여성 통역사가 수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녀는 2009년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북 해 김정일을 만났을 때 수행 통역을 했고 그때 찍힌 기념사진이 아직 인터넷에 남아있다.

미국 대통령의 한국어 통역은 2009년부터 L씨가 맡기 전까지는 오역논란이 끊이지 않았는데 미국 내에서 고용한 미국 시민권자 동포 통역사 중 전문 통역교육을 받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L씨는 일찍이 서울에서 통역대학원을 졸업하고 캘리포니아의 몬트레이 통역대학원에서 강의도 하고 귀국 후에는 국내 통역대학원에서도 강의를 하는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어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다만 북한 사람들은 최근까지 북한이라는 호칭을 싫어해 우리 말로는조선으로, 영어로는 ‘DPRK’로 불러주길 원하면서 우리 보고는남조선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이번 판문점 합의문에서처럼 남측, 북측(the South, the North)라고 하면 무난할 것이다. 미북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DPRK’, 남한을 ‘ROK’라고 통일해 지칭하면 북한 측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L씨는 벌써부터 이번 판문점 회담의 녹화 장면을 보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발음과 어법을 연구하고 있을 것이다. 실패한 회담의 경우 흔히들통역이 잘못 됐다고 통역사를 희생양으로 만들기도 하는데 이번 회담에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빈다.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