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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저는 1974년 10월 1일 국군의 날, > 당시 여의도 광장에서 매년 거행되던 기념 행사에 > 학군단(ROTC) 대표로 참가한 열병/분열 행사에서 > 박정희라는 실물을 처음 봤습니다. > > 키가 커 맨 앞줄에 서있던 저는 > <우로 봐>라는 구령에 얼굴을 돌렸고 > 열병 차를 타고 우리를 내려다보는 그를 > 처음 본 것입니다. > 작은 체구였지만 그의 조그만 얼굴은 인자해보여 > 아버지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 > 그 후 1977년 1월 19일 육군 소위의 신분으로 > <국방부 파견 청와대 요원>이란 명령을 받고 > 대통령 경호실로 첫 출근을 했습니다. > 아침 일찍 설래는 맘으로 촌닭같이 육군장교 정복에 > 미군 외투, 국방색 마후라까지 두르고, > 한창 유행하던 007 백을 들고 효자동 쪽 > 경복궁 담길을 올라 청와대 경내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 사복경찰인듯 사람이 다가와 > <조용히 뒤로 돌아서 왔던 길을 천천히 > 정면을 바라보며 걸어내려가라>고 > 명했습니다. > 영문도 모르고 돌아서 몇발자욱 걷다보니 > 검은 차량 행렬이 60km 정도 속도로 지나가는데 > 맨 앞에는 추운 날씨에도 무개 차량 위에 > M16 소총을 든 검은 특수복 병력 8명 가량이 > 온 방향으로 사주경계를 하고 있었습니다. > 바로 박정희 대통령의 행차였고, > 나중에 알아보니 <연두순시>였습니다. > 그 경찰관이 불러 다시 청와대 방향으로 올라가니 > 어디 가시느냐고 물었고 초소를 몇개나 지나 > 3층에 있던 경호실장 부속실을 찾아가니 > 6개월 전 우리에게 시험을 치르게 했던 > 이민용 선배(후 행정처정 역임)가 맞아 주면서 > 내일부터는 군복을 벗고 어두운 양복차림으로 나오고 > 머리는 민간인처럼 길러라. > 며칠 후 새 양복이 지급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 청와대 사무실은 군대의 사무실보다 > 훨씬 화려하고, 따뜻했습니다. > 제 나이 만 24살이었습니다. > > 그 6개월 전 성남에 있는 <육군종합행정학교>의 어학처 > 영어교관으로 있을 때 3명의 동료 교관과 함께 > 학교장 실로 불려가 까만 지프차를 타고 > 어디론가 갔는데 그 곳이 당시만해도 무시무시했던 > 청와대 차지철 경호실장의 부속실이었습니다. > 그의 사무실에는 깨끗하고 푹신한 붉은 카페트가 쫙 깔려 있었습니다. > 그 때 우리는 영어 주간지의 사설을 번역하는 > 간단한 테스트를 받았는데 제가 선발된 것 입니다. > > 어린 마음에 너무 좋아 그 전날 밤 이문동의 하숙집에서 > 잠을 설쳤습니다. 당시에는 청와대에 근무한다고 해도 > 대통령이나 비서/경호실장의 얼굴을 보기란 하늘의 > 별따기였습니다. 청와대 경내에서는 직원들이 언제나 긴장해 > 발을 맞추어 걸어야하는 정도였으니까요. > > 분위기가 하도 경직돼 새벽에 청소원들이 경내를 빗질하다가 > 대통령이 산보를 나오는 것을 보고도 감히 인사를 못드리고 > 뒤로 돌아서 벽을 보고 서있을 정도여서 > <각하 조우시 행동 요령>이라는 지침이 하달될 정도였습니다. > > 저는 지금은 벌써 헐려버린 효자동 쪽 주택 건물에 차려진 > <경호실 정보처>에서 영어 주간지 등을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 당시에는 언론 검열이 극심해 타임 등 주간지의 한국 관련 기사는 > 모두 찢기거나 검은 색으로 지워져 배포되고 있었습니다. > 경호실에는 원문 그대로 배달돼 당일 중요기사를 > 저희가 번역을 해 경호실장 방에 올리면 > 실장은 시간이 나는 대로 그 번역을 읽고 > 국제 사회의 분위기를 파악해 > 대통령과의 회의나 면담에서 언급했답니다. > > 저는 직속상관이었던 외대 영어과 선배 이민용 씨께 > 번역을 참 많이 배웠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제가 > 통번역사가 되리라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 > 대통령이나 실장을 일절 볼 수 없고, > 서슬퍼런 경호실장이 만드는 공포 분위기가 싫어, > 매일 번역만 하는 일상이 지겨워, > 정보처장의 협박성 만류를 뿌리치고 > 군 복무 기간이 끝나는 1978년 6월말 > 저는 청와대를 떠났고, 그 것이 > 1979년 9월 설립된 외대 통역대학원 입학으로 > 연결되었습니다. > > 26살의 어린 나이에, 누구나 <출세>라고 생각하는 청와대를, > 만류를 뿌리치고 나온 것이 용기였을까, > 오기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반골 기질이었을까 > 아직도 모릅니다. 그 후 인생에서 나는 몇 번 더 > 주위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어 > <좋은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 만용을 부렸습니다. > > 통대와 ESIT 졸업 후 서울 올림픽으로 > 노태우 씨와 인연을 맺어 33살에 다시 청와대에, > 이번엔 경호실이 아닌 비서실의 공보비서관으로 > 근무하게 됐는데 물태우라는 지도자를 모신 경험과 > 현 노무현 대통령의 지도력을 보면서 > 자유는 없었지만 박정희라는 사심없는 강력한 지도자 밑에서 > 조국의 발전을 위해 뛰었던 >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 > 박통 시절의 수많은 얘기는 > 차차 보따리를 풀도록 하겠습니다. > > 곽중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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