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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전두환 장군의 질책으로부터 나를 구해낸 강 처장을 > 같은 건물(당시 한독맥주 사장 집을 개조했다함)에서 모시면서 > 매일 번역을 해올리며, 한달에 한두번 상관 1명과 야근을 하는 날이 아니면 > 이민용 선배 등을 따라가 저녁을 먹고, 또 술을 마시고, > 밤 늦게 경복궁 왼쪽의 BOQ(독신장교 숙소)로 돌아와 자고, > 아침은 굶거나 장교식당에서 떼우는 생활이 반복됐습니다. > 절약되는 하숙비를 술값에 보탠 거지요. > 당시는 통행금지가 있어 12시가 넘으면 > 같이 술마시던 선배들 집에 가 자기도 했습니다. > <초급장교>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생활이었지요. > > 매일 <긴장> 속에서 번역을 하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 일상이 계속되다가 어느 날 제2의 충정가가 선정됐다는 > 발표와 함께 매일 출퇴근 직전에 이 노래가 각 사무실에 > 구내 방송되었습니다. > 가사는 몇개월 전 경호실 전체에서 공모했는데, > 통신처 모 직원의 국문과 나온 부인이 응모한 것이 > 뽑혔고, 거기에 누군가가 곡을 붙인 것이었습니다. > > ---보아라 북악의 우람찬 짙푸름 > 우리의 슬기 모아 함께 뭉쳤네 > 너와 나 조국 앞에 두 주먹 쥐고 > 겨레와 님 위해 다져진 충정 >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쳐진 우리들 > 이 생명 이 목숨 님에게 바치리---- > > 대충 이런 가사에 사병들이 부르는 > 군가같은 곡조였습니다. > 그런데 방송 후 한달 쯤 지나자 > 차 실장이 모든 요원이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지 > 점검해 보라고 지시한 모양입니다. > > 매일 아침 사무실 정문 앞에서 > <조례>를 주재하던 강 처장이 > <우리 정보처에서 지금 당장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 사람이 있는가?>라고 물었고, 모두들 주눅이 들어 > 잠시 침묵이 흘렀을 때, > 내가 손을 들며, <처장님, 제가 한번 불러보겠습니다!> 하고 > 앞으로 나갔습니다. > 나는 악보는 잘 못 읽지만 몇번 귀로 들은 곡조는 > 그대로 따라할 수 있는 재주가 있습니다. > 새파란 초급 장교가 겁도 없이 자기 앞에 서니 > 강 처장도 약간은 당황하는 눈치였습니다. > > 나는 약 50명 선배 요원들 앞에서 약간 떨리기는 했지만 > 대학 다닐 때 연극 주연까지 해 본 끼를 발휘해 > 그냥 노래만 한 것이 아니라 > 노래 전후의 반주까지 악기 소리를 흉내내며 > 노래를 불러제꼈습니다. > > 그 경직된 분위기를 깨는 초급장교의 노래 소리에 > 선배들은 고개를 숙이고 킥킥댔고, > 노래와 반주 흉내까지 끝내자 > 강 처장은 씨-익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 <수고했어, 모두들 곽중위처럼 할 수 있도록 연습해!> 하고는 > 사무실로 들어갔고 선배들은 딱딱한 조례를 사상 처음으로 > 부드러운 분위기로 끝낸 나를 > 경이의 눈으로 바라봤습니다. > 그리고 평소 전혀 웃지않는 강 처장의 그 백만불짜리 미소는 > 정보처의 신화가 되었습니다. > > 몇달 전 나를 구출해 준 은인, 강 처장에 대한 > 나의 작은 보은이었다고나 할까요? > 그날 밤 나는 또, 내 노래를 들은 선배들이 사주는 술에 > 대취했습니다. > 당시 대학생들은 무교동에 있는 민속주점이나 낙지집에서, > 우리는 무교동의 <월드컵>, <양주의 집> 등에서 > 술을 마셨습니다. <산수갑산>이라는 집에서는 > 야심해지면 술 나르던 남녀종업원들이 무대로 나가 > <갑돌이와 갑순이> 등을 합창해주곤 했지요. > > 통금 시간인 12시가 다 되어 > 위병소를 지나 연병장을 가로질러 > BOQ 숙소로 걸어가면서 > 나는 또 노래를 흥얼댔습니다. > >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 이슬비 내리는 이 밤도 애닯구려...> > > 노래방도, 인터넷도 없는 시절이었지만 > 그래도 어딘가 낭만적이지 않습니까? > > 곽중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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